고향으로 돌아온 스파이 #2 [뉴요커, 벤 타우브]

2018년 5월 7일 [뉴요커]에 실렸던 벤 타우브의 기사, ‘고향으로 돌아온 스파이 – 대테러 활동의 전문가는 왜 순경이 되었나’를 번역해보았다. 원래 기사는 여기.

(전반부는 이전 포스팅에.)

***

이튿날 밤은 호출이 뜸했다. 스키너는 조용한 거리를 슬슬 달리면서, 서배너의 뒤틀린 떡갈나무에 스페인이끼가 치렁치렁 늘어져 있고 안개가 자욱한 모습은 으스스하면서도 정말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다음 그는 날짜를 확인했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12월 30일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최악의 날이자 CIA 역사상 두 번째로 치명적인 사건이 있었던 날의 8주기였다.

9/11 이후, 부시 행정부는 CIA가 알카에다 조직원 용의자를 취조할 때 이른바 ‘강도 높은 심문’이라고 불린 학대 기법을 쓸 수 있도록 허가했다. CIA 요원들은 용의자를 납치해서 제3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인권 침해 전력이 화려한 외국 정보부에게 취조를 아웃소싱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CIA는 구체적인 고문 의혹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요르단 국가정보부(GID)는 미국이 중동내 대테러 활동에서 가장 긴밀하게 협력하는 파트너다. 미국은 GID의 작전에 자금과 지원을 대주고, CIA는 요르단 수도 암만 외곽에 있는 대테러 센터를 GID와 함께 쓴다.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2001년에서 2004년 사이에 CIA는 최소 14명의 테러 용의자를 – 종종 기저귀와 눈가리개만 채운 상태로 – GID 억류 시설로 인도했다. 용의자들은 그곳에서 고문을 당했고, 개중 몇 명은 끝내 범죄를 자백했다. 알리 알샤르카위라는 예멘인 억류자는 그곳에서 비밀 일기를 썼다. “심문자가 내게 어떤 정보에 대해서 묻고 내가 대답할 때마다 그는 그 내용을 미국인들에게도 말했느냐고 물었다.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면, 그는 펄쩍 뛰며 기뻐한 뒤 당장 나가서 상관에게 보고했다. 그러면 상관들도 기뻐했다.” 알샤르카위의 기록이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또 한 차례 근무를 마친 스키너는 요르단 암만의 CIA 기지에 배치되었다. 평화로운 나라로 아내와 함께 전출하게 되어 한숨 돌린 기분이었다. 그동안 CIA가 비밀 공작 장소, 용의자 타국 인도, 고문을 쓴다는 사실이 발각되어서 깐깐한 조사가 벌어졌고, 주로 청부 계약자들에게 의존하던 ‘강도 높은 심문’ 프로그램은 폐지되었다. CIA 감찰관은 고문이 유용한 첩보를 끌어내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대부분의 공작관처럼 스키너는 “신뢰 관계에 바탕을 둔 정보 수집”으로 성과를 올렸다. 그는 내게 말했다. “불쾌한 인간하고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가 있죠. 어느 테러 집단이든 내부에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보통은 질투가 있죠. 테러리스트들은 그 일을 직업으로 합니다. 정말로 봉급을 받거든요. 그러니까 자신이 조직에서 괄시 받는다고 느끼는 사람, 돈이 쪼들리는 사람을 찾아보면 됩니다.”

2008년, 미국국가안전보장국은 왕성하게 활동하는 어느 지하드 블로거를 추적하여 그가 암만의 노동자 동네에 있는 데스크톱 컴퓨터로 글을 올린다는 걸 알아냈다. 그 블로거는 이라크에서 죽어가는 미군 병사들의 모습이 담긴 끔찍한 영상을 올렸고, 빈라덴의 부관인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한 말을 번역해서 올렸는데, 그 점으로 보아 내부에 줄이 있는 듯했다. “그를 열렬히 따르는 온라인 독자들은 그가 사우디아라비아인이며 아마 알카에다 고위 관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조비 워릭은 이 사건을 꼼꼼하게 다룬 책 [삼중 간첩(The Triple Agent)]에서 이렇게 말했다. CIA는 블로거의 주소를 GID에게 알렸고, 스키너와 친하게 지내던 34세의 요르단 정보 대위 샤리프 알리 빈자이드가 사건을 맡았다.

컴퓨터 뒤의 남자는 – 후만 할릴 알발라위라는 이름의 젊은 요르단 의사였다 – 사람이 이럴 수도 있나 싶은 광신도 같았다. 낮에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여자들과 아이들을 치료했고, 저녁에는 아내와 딸들과 함께 지냈다. 독실하고 유순하고 내향적인 사람으로 현실에서 지하드 조직과 구체적인 관계는 맺지 않은 듯했지만, 온라인에서는 당장 자살 공격이라도 벌일 사람처럼 글을 썼다.

2009년 1월 어느 날 밤, GID가 발라위의 집을 급습하여 그를 데려와서 취조했다. 사흘 뒤 풀려난 그는, 워릭의 글에 따르면, “안절부절못하고 부루퉁하고 정신이 딴 데 팔려서” “딴사람처럼 바뀌어 있었다.” 다음 몇 주 동안 빈자이드는 발라위를 자주 불러내어 비싼 식사와 커피를 사주었다. 빈자이드는 발라위가 무르고 유약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가 온라인의 지하드 집단 내에서 갖고 있는 위상을 대테러 작전에 활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빈자이드는 발라위에게 만약 그의 협조로 알카에다 고위 멤버를 생포하거나 죽일 수 있다면 그에게 어마어마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자와히리를 붙잡게 해줄 정보에 2,500만 달러를 내건 터였다.

2월, 발라위는 빈자이드에게 자신이 파키스탄 부족 지역으로 가서 파키스탄 탈레반과 접촉한 뒤 병원 설립을 도와달라고 말하겠다고 제안했다. 그 구실로 탈레반 점령지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테니 빈자이드에게 정보를 보내겠다고 했다.

빈자이드는 발라위의 계획을 스키너에게 알렸고, 두 정보국은 철저히 토론해보았다. 발라위는 지하드로서 신뢰받는 사람이었지만 첩자로서 알아야 할 암호나 기술은 전혀 몰랐으니, 틀림없이 발각되어 처형될 것 같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이 젊은 의사가 알카에다를 공격하는 데 쓸 정보를 전해줄 수 있다면, CIA는 당장 드론을 띄워서 공습할 수 있었다. 근년 들어 CIA가 쓰는 말들은 뜻이 변한 게 많았다. 예전에는 “표적”이 공작자산으로 끌어들일 사람을 뜻했지만, 이제는 추적하거나 납치하거나 인도하거나 죽일 사람을 뜻했다.

3월 18일, 발라위는 암만을 나섰다. 두 달 뒤, 그는 빈자이드에게 이메일을 보내어 탈레반이 자신을 받아들였고 자신은 앞으로 탈레반 지도부의 전속 의사로 일할 것이라고 알렸다. 6월, CIA는 스키너를 바그다드 미 대사관으로 발령했다. 발라위의 파일은 스키너의 친구이자 동료인 대런 라본테에게 인계되었다.

8월 말, 발라위가 몇 달의 침묵을 깨고 암호화된 동영상 파일을 보내왔다. 영상에는 그가 빈라덴의 최측근 중 한 명과 한방에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정보국 분석가들은 깜짝 놀랐다. 빈자이드는 발라위에게 “당신 덕분에 우리가 미국인들에게 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적어 보냈다. CIA가 알카에다에 침투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라위는 자와히리가 당뇨를 치료해달라고 자신을 불렀다는 소식을 이메일로 빈자이드에게 전했다. 빈라덴은 은신한 지 오래였고, CIA는 자와히리나 알카에다 재정 총 책임자인 셰이크 사이드 알마스리가 빈라덴 대신 조직을 굴리고 있으리라고 보았다. 하지만 자와히리는 2002년 이래 한 번도 확실히 목격된 적 없었다. 리언 파네타 CIA 국장은 발라위의 일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CIA는 발라위를 아프가니스탄 호스트에 있는 미군 기지의 CIA 부속동으로 불러서 직접 보고 받기로 결정했다.

180507_r32019.jpg
“내가 암만에서 정보원 두어 명한테 매년 식사와 여흥을 제공하는 데 썼던 돈이 서배너 경찰서가 차량에 쓰는 돈보다 많았습니다.” 스키너는 말했다.

12월 초, 라본테와 빈자이드는 호스트로 가서 그곳에 있는 CIA 요원 경력 20년차 베테랑 제니퍼 매슈스와 다른 요원 열한 명과 계약직 보안 요원들을 만났다. 라본테는 보통 하는 것처럼 이를테면 이동 중인 차 뒷좌석에서 일대일로 면담하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매슈스와 랭글리 본부의 상관들은 모두가 나서서 발라위를 따뜻하게 맞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만날 날이 마침 발라위의 생일 며칠 뒤였기 때문에, 매슈스는 기지 요리사에게 케이크를 굽게 시켰다. 여느 때 기지는 아프가니스탄 군인들이 경호했지만, 매슈스는 그들이 탈레반에게 발라위가 나타난 사실을 알릴까 봐 걱정하여 모두 물렸다.

라본테는 만남 직전에 바그다드의 스키너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라본테는 CIA가 정례적인 절차를 무시하는 걸 달갑지 않게 여겼다. 라본테는 매슈스와 언쟁했고 암만 기지에 전보도 보내보았지만 묵살당했다고 했다. 요르단 정보관 한 명도 CIA에게 빈자이드가 자신의 자산에게 너무 밀착한 나머지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라고 경고했지만 역시 무시당했다고 했다. 이미 대통령에게 발라위를 만난다고 보고한 터였다. 그렇게 만나서는 안 된다는 소리는 아무도 듣고 싶지 않아 했다.

발라위가 탄 차가 기지로 다가오자, 라본테는 스키너에게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스키너는 이렇게 답장했다. “즐겁게 만나셔, 등신아.”

지키는 사람 없는 세 방벽을 통과하여 차가 CIA 부속동으로 다가왔다. 매슈스와 라본테와 일당은 발라위에게 줄 케이크를 들고 밖에서 기다렸다. 발라위는 약간 불편해하는 움직임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는 환영하는 사람들을 향해 절룩절룩 걸어왔고, 중얼중얼 기도를 읊은 뒤, 손목에 달린 기폭 장치에 손을 가져다 댔다. 모두가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했지만, 달아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폭발로 운전자, 빈자이드, 일곱 명의 CIA 요원과 계약직 직원이 죽었다. 라본테와 매슈스도 죽었다. 이후 공개된 순교 동영상에서 발라위는 탈레반과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자신에게 독점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건네주어 CIA의 신뢰를 얻도록 꾸몄다고 말했다.

CIA는 알카에다 표적들을 죽이려는 의욕이 넘친 나머지 첩보 활동의 기본 원칙을 간과했다. 이데올로그는 전향시킬 수 없다는 원칙이다. 발라위가 한 동영상에서 한 말을 빌리자면 “설령 한 손에는 태양을 다른 손에는 달을 쥐여주겠다고 약속하더라도.” 강압이 통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원한이 싹튼다. 몇 달 뒤 발표된 CIA 내부 조사 보고서는 그 공격이 정보국 “전반의 시스템적 오류” 탓이었다고 분석했다.

“우리는 놓치기 아까운 미끼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수배자였던 자와히리에게 실제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뻥이 아니었어요. 그의 정보가 진짜였기 때문에 우리가 넘어갔던 겁니다.” 스키너는 내게 말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 곳에서 살아 나온 나 같은 사람은 능력이 더 뛰어났던 게 아니라 운이 더 좋았던 것뿐입니다.”

***

바그다드에서 스키너는 정치와 폭력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이라크 군대를 해산시킨 일이 전면적인 반란으로 이어진 지가 벌써 6년째였다. 스키너는 암만에 있을 때도 이라크 부족장들과 함께 조니 워커 블랙을 마시면서 보낸 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은 이라크의 돈을 몽땅 빼돌려서 전쟁에서 피신한 이들이었습니다.” 스키너는 내게 설명했다. “우리는 이후 ‘대대적 증파’라고 불릴 조치를 앞두고 그들을 공작자산으로 확보하려고 애썼죠.” 2007년,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반군을 진압하고자 추가로 2만 명의 병력을 더 보냈다. 하지만 2년 뒤, 바드다드에서는 차량 폭탄 사고로 매달 민간인 수백 명이 죽어나갔다. 시아파인 이라크 총리 누리 알말리키는 보안대를 충성분자로 채워서 종파주의적 학살을 자행했다. “우리는 알카에다에 집중했고, 그는 수니파에 집중했죠.” 스키너는 말했다.

스키너는 홀로 고립된 기분이었다. 그동안 아내 테레사는 계속 암만에 있었다. 그러다가 스키너가 휴가를 받았을 때, 부부는 서배너 외곽의 타이비아일랜드에서 해변가 집을 빌렸다. 반가운 휴식 중에도 스트레스가 아주 없진 않았다. “나는 휴가 중이라도,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정보를 알아내려고 하고 있죠.” 스키너는 내게 말했다. “내가 일을 그르치면 그들이 죽습니다. 공작관이라면 누구나 살해당한 자산을 한 명씩은 갖고 있어요.”

2010년 6월, 스키너는 이라크 근무를 마쳤다. 부부는 서배너에서도 스키너가 자란 곳 근처에서 작은 마당이 딸린 집을 샀다. 그 집으로 이사했고, 폭찹이라는 이름의 유기견을 입양했다. 스키너의 부모와 누이 중 한 명은 서배너를 떠나서 살고 있었지만, 스키너는 그들을 꾸준히 설득하여 그들도 돌아오게 만들었다. “온 가족이 고향에 돌아오도록 만드는 것은 내 최후의 모집 공작이었죠.”

스키너는 CIA에 장기 휴가를 냈고, 결국 사표를 냈다. 2011년, 그는 미국과 영국의 은퇴한 보안 공무원과 스파이를 고용하여 민간 부문에 정보 분석을 해주는 사기업인 수판 그룹에 취직했다. 그 후 특수 프로젝트 책임자로서 여러 나라 정부와 기업에게 지정학과 위험에 관련된 문제들을 조언했고, 기자들과 인터뷰했다. 2014년 상원정보위원회가 CIA의 ‘강도 높은 심문’ 사용에 관한 조사 결과를 공개했을 때, 스키너는 [타임]에 기고문을 써서 고문은 “선전 목적으로 거짓 자백을 끌어내기 위한” 전술이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같은 해, ISIS가 이라크 모술 시를 점령하고 국제 구호원들과 기자들을 카메라 앞에서 참수했다. 온 미국이 ISIS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스키너는 자기 역할이 갈수록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기자들은 그의 답변 내용보다는 전직 CIA 요원의 말을 인용하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어떤 기자는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기사 마감이 십 분 남아서 그러는데, ISIS는 나쁜 놈이죠?’” 스키너는 회상했다.

2016년 3월,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사는 이모를 찾아간 김에 그곳 국제문제협의회 지부에서 테러에 관해 강연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취약한 초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는 청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카에다는 그들이 스스로 쓰는 표현대로 “끝내주는 공격”을 저지르는 게 목적인 데 비해 ISIS는 말하자면 “끝내주는 반응”을 일으키는 게 목적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그 예로 텍사스 주 갈란드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들었다. 지하드가 되고 싶어 했던 두 남자가 어느 도발적인 반이슬람 집회를 급습하려고 시도했다가 살해된 사건이었다. 두 남자는 ISIS와 뚜렷한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ISIS의 지령에 따라서 – 그 지령은 미국 매체들이 널리 보도한 내용이었다 – 자신들이 ISIS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선언을 온라인에 올려둔 것뿐이었다. “‘테러’라는 말을 지운다면, 웬 바보 둘이 애리조나에서 멀리 차를 몰고 가서 주차장에서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일 뿐이죠.” 스키너는 말했다. 미국인의 삶에 진짜 위협이 되는 것은 반응이었다. “우리는 도시를 봉쇄합니다. 법을 바꿉니다. 사회를 바꿉니다. 그들이 할 일을 우리가 대신 해주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서배너에서 ISIS에게 살해될 확률은 소행성에서 떨어진 피아노에 깔려 죽을 확률과 비슷할 겁니다.” 그는 말했다. “완전 정신 나간 생각이에요. 이곳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괴롭히는 것은 집에 쳐들어와서 차를 훔쳐가는 도둑들이라고요.”

스키너는 자신의 말과 행동의 불일치에 지쳐갔다. 자신이 “사기꾼”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해외의 반란은 지역 차원의 치안 실패 탓이라고 설교하고 다녔지만 자기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활동하는 갱들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으니까. “우리 사회의 균열된 틈으로 떨어져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들을 도우려면 한 사람 한 사람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다음에는 지원을 동네 전체로 넓히는 거죠. 그다음에는 도시 전체로.”

지방 경찰서의 급여는 박하다. “그래서 이 일에 가장 알맞은 사람들이 이 일을 결코 하지 않죠.” 스키너는 말했다. 브라운 대학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2001년 이래 미국의 평균적인 납세자는 퇴역 군인 복지, 국토안보부 활동, 시리아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벌어지는 미군 작전에 23,000달러 이상 돈을 댔다. 스키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암만에서 정보원 두어 명한테 매년 식사와 여흥을 제공하는 데 썼던 돈이 서배너 경찰서가 차량에 쓰는 돈보다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암만에서 샀던 식사가 미국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이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미치는 영향보다 훨씬 적었죠.”

2016년 10월, CIA에서 스키너와 가장 절친한 친구 중 하나였던 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ISIS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스키너는 절망했다. 몇 달 뒤, 그는 수판 그룹을 그만두고 지방 경찰이 되었다. 10만 달러가 넘는 연봉 삭감액을 감수하고.

***

서배너 경찰이 지역 사회의 신뢰를 얻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도시의 역사다. 서배너는 인구의 55퍼센트가 흑인인데, 조지아 주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도 인종 분리 정책을 따랐다. 스키너가 경찰 훈련을 마친 뒤 가장 놀랐던 점은 나이 지긋한 흑인 주민들이 그를 마주치기만 하면 일단 반사적으로 두 손을 번쩍 들고 본다는 점이었다.

조지아 주에서 흑인이 처음 경찰관이 된 것은 1947년 3월 3일이었다. 그날 존 앨리스턴 화이트는 다른 흑인 경찰관 여덟 명과 함께 서배너 경찰에 합류했다. 흑인에게 우호적이었던 부서장 트루먼 워드의 감독하에 진행된 그 시도를 지역 신문들은 “실험”이라고 명명했다. “다른 백인 경찰관들은 워드 부서장을 ‘깜둥이 예수’라고 불렀죠.” 화이트가 내게 말해주었다.

올해 아흔세 살의 화이트는 아홉 명의 원년 멤버 중 유일한 생존자다. 나는 어느 날 오후 그의 집을 찾아가서, 함께 빛바랜 사진, 누렇게 변색된 신문 기사 스크랩, 거실 장식장과 벽을 메운 각종 기념품을 들여다보았다.

화이트는 카일러-브라운즈빌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카일러-브라운즈빌은 서배너에서 노예 해방 뒤 흑인 가정들의 주거지로 할당된 동네였다. 짐 크로 법이 시행되는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가 되면 그 동네에는 교육받은 흑인 중산층 공동체가 번성하게 되었다. 주로 의사, 변호사, 교사, 나중에는 인권운동가 들이었다.

화이트를 비롯한 흑인 경찰관들에게는 백인을 체포할 권한도, 경찰 막사의 음수대에서 물을 먹을 자격도 십 년 넘게 주어지지 않았다. 백인 동료들 중 몇 명은 화이트를 괴롭혔는데, 그들은 가끔 청소부를 고용해서 그가 몬 경찰차 내부를 청소하곤 했다. “우리가 더러워서 그런다고 말했죠.” 화이트는 내게 말했다. 경찰이 된 뒤 첫 몇 년 동안 겪은 일로 그는 자살 일보 직전까지 몰렸다. “우리는 지옥을 겪었습니다.”

화이트에 따르면, 1960년대에 새로 부임한 서장이 이전과는 달리 경찰관들에게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했다. “우리 흑인 경찰들은 공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백인 경찰관들 중 몇몇은 글을 쓸 줄 몰랐고, 유달리 심한 인종차별주의자들 중 많은 수가 경찰을 떠났다. 화이트는 형사가 되었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서배너에 왔을 때 그를 경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킹이 암살된 뒤 주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을 때, 화이트는 “시위자 807명을 체포하는 일을 책임지고 맡아야 했다.” 상관들은 백인 경찰관이 나서지 않는 게 나을 것이라고 여겼다.

서배나 주립 대학 교수 자말 투레에 따르면, 1970년대가 되자 많은 흑인 중산층 가정들이 카일러-브라운즈빌을 떠났다. 인종 분리 정책이 폐지되자 흑인들은 ‘아, 이제 우리도 다른 동네로 가서 살아도 되는구나’ 하고 말하기 시작했죠.” 투레의 말이다. 그래서 카일러-브라운즈빌에는 가난한 노동자들만 남았다. 빈 집이 늘었고, 노골적인 인종차별 법 대신 흑인 남성을 마구 잡아들여서 교도소에 가두는 정책이 시행되자 지역 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범죄학자 데이비드 M. 케네디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흑인들이 역사적으로 정부에 대해서, 그리고 경찰 같은 정부의 권력 기관에 대해서 경험한 바는 넓게 보면 철저한 백인 우월주의였습니다. 법은 흑인들을 통제하고 괴롭히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죠.” 좌절과 쇠퇴에 시달리는 카일러-브라운즈빌에는 금세 갱들의 폭력이 판치게 되었다.

존 화이트는 1984년 은퇴했다. 그는 자신의 경력 내내 경찰 내부에는 부패가 들끓었다고 말했다. 1980년대 초에 마약상들은 남미에서 오는 새우잡이 어선에 마리화나와 코카인을 실어서 서배너 동쪽 섬들로 들여왔는데, 그러면 마약단속반 경찰관들이 마약상들에게 통행세를 받고 눈감아주었다.

1990년대 초, 서배나는 미국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였다. 2013년 서배너 경찰 내의 비리와 착복과 성희롱 스캔들이 곪고 있을 때, 경찰서장 윌리 러벳이 갑자기 사직했다. 이후 그는 불법 도박 조직들과 공모하여 갈취, 도박, 법 집행 방해를 일삼은 죄로 체포되어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현재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러벳의 후임은 조지아 주 경찰로 48년을 일해온 잭 럼프킨이었다. 흑인인 그는 풋내기 신입이었을 때 백인 경찰관들의 차를 대신 관리해주어야 했다. 이제 관리자로만 30년 넘게 일해온 그는 부하들의 거짓말을 두 번도 봐주지 않는 무관용 정책으로 조지아 내에서 유명했다. 그는 당장 많은 경찰관들을 해고했다. 자진하여 그만둔 사람들도 있었다. “거짓말이 중죄라는 사실을 그들이 언제 깨달을지 모르겠습니다.” 럼프킨은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대신 경찰서는 신입을 적극 모집했다. 럼프킨은 그들이 “주민들과 더 떳떳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경찰서는 또 케네디가 이끄는 ‘안전한 지역 사회를 위한 전국 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을 맺고 주거 지역의 집단 총격 사건을 줄이려는 노력에 나섰다.

케네디에 따르면, 서배너의 총격 사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거 지역 집단 폭력을 낳는 원인은 소집단들의 역학 관계, 손쉽게 무기를 구할 수 있다는 점, 복수에 대한 집착만이 아니다. 공권력과 단절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케네디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적 계약이 근본적으로 망가진 겁니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해야 하죠. 경찰에게 도움을 구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또 다시 총격이 발생하는 겁니다.” 범죄율이 높은 동네에서는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이 사실상 같은 사람들입니다.”

서배너에서는 인구 구성과 범죄율이 천양지차로 다른 동네들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다. 포사이스 공원에 선 남부연합 기념비 북쪽의 역사지구에서는 관광객들이 길에 늘어선 카페들, 골동품 가게들, 전쟁 전에 지어진 대저택들을 한가롭게 구경하고 다닌다.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 극심한 가난이 있다는 걸 모르는 채. 내가 묵은 마셜하우스는 1851년에 지어진 건물로, 계단참에 로버트 E. 리 장군의 초상화가 환한 조명을 받으며 걸려 있었고 근처에는 액자에 든 조지아 주의 분리 선언서 사본이 걸려 있었다. 역사지구 관광 가이드들은 아름다운 건축물들 이면에 숨은 폭력과 압제를 거론하는 것은 실례이기라도 한 양, 노예제에 대해서는 보통 말을 얼버무린다. 구도심 바로 서쪽의 – 가난한 아프리카계 주민들을 위해서 조성된 공영 주택 단지 – 야마크로빌리지에 있는 단지 관리소 건물은 서배너 근처에 있었던 허미티지 노예 농장의 노예주 저택을 복제하여 지어졌다.

지난가을 어느 날 밤, 누군가 카일러-브라운즈빌 중심의 45번가와 플로런스가 교차점에서 강간이 벌어지고 있다고 신고했다. 스키너가 급히 달려가 보니, 웬 젊은 백인 남녀가 잔디밭에 앉아서 바지 단추를 채우고 있었다. 둘 다 만취해서 거의 인사불성이었다. 여자는 스키너에게 그들이 시내 술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아즐리 파크의 자기 집으로 가달라고 했는데 택시가 대신 여기 내려줬다고 말했다. 아즐리 파크는 부자 동네다. 스키너는 껄껄 웃으면서 물었다. “여기가 아즐리 파크로 보입니까?”

여자는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저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지만요…”

“하지만 어쨌든 인종차별적인 말을 할 거죠?”

“여기는 흑인이 많네요.”

경찰차 불빛 때문에 주변 주민들이 잠에서 깼다. 스키너는 다른 택시를 불렀다. 남녀가 모퉁이에서 기다리는 동안, 한 중년 흑인 여성이 잠옷 차림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와서 눈썹을 치키면서 말했다. “그럼 그렇지. 우리는 당신네 동네를 돌아다닐 수 없지만 당신들은 우리 앞마당에서 떡을 칠 수 있다 이거지.”

***

12월 말 어느 날 밤 새벽 3시 30분쯤, 카일러-브라운즈빌에서 남쪽으로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웬 젊은 흑인 남성이 도로로 달려들어 스키너의 차를 불러 세웠다. 남자는 자신이 어떤 여자애 집에서 “좀 노닥거리다가” 나왔는데 나오고 보니 여자가 자기 시계를 훔쳤거나 아니면 자신이 놔두고 왔거나 했다고 말했다.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했다. 남자에게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남자는 여자의 이름도 주소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몇 블록 떨어진 공영 주택 단지 쪽을 가리켰다. 스키너는 남자에게 발부된 미집행 영장이 있나 확인해볼 생각으로 남자에게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었다. “앤서니…”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린”이라고 덧붙이고 생년월일도 말했다.

180507_r32020
“가끔 경찰들이 시민들을 ‘민간인’이라고 부르는데, 정말 헛소립니다.” 스키너는 말했다. “우리는 군인이 아니에요. 우리가 안전을 살피는 사람들은 우리 이웃입니다.

스키너는 블록을 한 바퀴 돌았다. “남자가 알려준 성은 분명 가짜일 겁니다.” 스키너가 내게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이름은 거짓말을 안 하죠.” 스키너는 차를 세운 뒤 차에 비치된 노트북으로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앤서니 그린”을 입력했다. 아무 기록이 없었다. 스키너는 “앤서니”만 입력하고 남자가 불러준 생년월일을 입력해보았다. 그랬더니 “앤서니 잭슨”이라는 사람이 나왔는데, 경찰에게 신분을 거짓말한 것을 비롯하여 수십 건의 범죄로 고발되고 징역형도 최소 서른 번 산 남자였다. 모니터에 뜬 사진을 보니 우리가 방금 만난 남자였다. 모니터 구석에 작게 이런 말이 떠 있었다. “가명: 앤서니 그린.” 잭슨은 보호관찰 중이었지만 미집행 영장은 없는 상태였고, 스키너에게 거짓말을 한 것 같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스키너는 남자가 기다리는 모퉁이로 돌아가서 그에게 여자의 주소를 모르고는 시계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스키너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스키너가 말했다. “이봐요, 친구. 다음번에는 나한테 가짜 이름을 대지 마세요. 알겠습니까?”

“안 그랬어요!” 남자가 외쳤다. “신분증도 있다고요.” 남자는 도로로 대뜸 내려서서 스키너에게 자기 운전면허증을 내밀었고, 자기 사회보장번호를 크게 외쳤다.

“망할. 그냥 참을 것이지.” 스키너는 중얼거렸다. 만약 남자가 보여준 면허증이 가짜라면, 스키너는 남자를 체포해야 했다. 하지만 다른 데이터베이스로 조회했더니 면허증은 진짜라고 나왔다. 그리고 진짜 앤서니 그린의 면허증이라고 나왔다. 하지만 남자가 불러준 사회보장번호를 검색했더니 그건 앤서니 잭슨의 것이라고 나왔다.

“자기가 자기의 합법적인 도플갱어라는 거야?!” 스키너는 외쳤다. “저 남자는 두 사람이고, 둘 다 수배자가 아니라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요. 왜냐하면 이 동네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수배자니까.” 스키너는 몇 분 더 데이터베이스들을 상호 조회한 뒤 결국 남자에게로 걸어가서 면허증을 돌려주고 사과했다.

이후 며칠 동안 스키너는 수시로 그 사건을 입에 올렸다. “만약 그 남자가 공격적인 인간이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세요. 아니면 그에게 발행된 영장이 있었다거나.” 그는 내게 말했다. “그때 우리에게는 시간이라면 썩어 문드러지게 많았죠. 하지만 방대한 정보를 갖춘 데이터베이스들을 갖고도 결국 그와의 대화에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잖습니까. 오히려 아는 게 마이너스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죠.” 스키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는 이보다 더 빈약한 정보를 갖고서도 다른 나라들을 침공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CIA에서 배운 게 있다면, 그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이 쌔고 쌨다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

새해 전야, 주민들은 공터에서 불꽃을 쏘아 올렸다. 카일러-브라운즈빌은 또 여기저기서 터지는 축포의 총성으로 시끄러워졌다. “방아쇠 조작이 좋은데.” 스키너는 약 10미터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40인치 탄환을 권총으로 쏘는 듯한 소리를 들으면서 말했다. “방아쇠 조작이 싸움의 절반이죠.”

하늘로 쏘아 올려진 총알이 땅에 떨어지는 데는 약 45초가 걸린다. 2018년이 된 지 10분도 안 된 무렵,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차를 세워두고 있던 다른 두 경찰관은 하늘에서 떨어진 총알들이 머리 위 가로등을 박살내자 허둥지둥 카일러-브라운즈빌을 벗어났다. 온 동네의 보도와 현관 앞이 황동 탄피로 번쩍거렸다. 우리가 들은 총성만 수백 건이었다. 산탄총도 있었고, 온갖 크기의 권총이 있었고, 칼라슈니코프도 하나 있었다. 일주일 전에 사건이 벌어졌던 40번가와 플로런스가 교차점에는 범죄 현장 차단용 테이프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밤 0시 11분, 스키너는 차량에 화재가 발생한 현장으로 파견되었다. 하지만 그가 채 도착하기도 전에 또 다른 호출이 들어왔는데, 라이브오크로 가서 발포를 좀 더 조사하라는 지시였다. “누구나 총기로 흉악 범죄를 저질러서 15분은 주목받을 수 있죠.” 스키너는 농담으로 말했다. 서배너 시는 돈이 많이 들지만 발포 지점을 가려내게 해주는 탐지망인 숏스포터를 범죄율이 높은 동네에 구축해두었다. 그러나 이날 밤, 숏스포터는 부하가 너무 많이 걸린 나머지 5시간쯤 시차를 두고 작동되었다.

경찰관들은 곧잘 스키너가 “최후에 의지할 곳을 제공하는 사회 복지 업무”라고 일컫는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기온이 영하 6도 아래로 떨어진 날 밤, 스키너는 빈 주차장을 웬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이 슬그머니 지나가는 걸 목격했다. 일전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강도 사건이 벌어진 현장이었다. 스키너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니 헤드라이트에 비친 사람은 나이 많은 흑인 여성이었다. 야위어 움푹 파인 얼굴에 산타 모자를 쓰고 표범 무늬 재킷을 입은 여자였다. “괜찮습니까?” 스키너는 물었다.

“월그린스에 가려고요.” 여자는 땅을 내려다보는 채로 쉰 듯 잠긴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사람들은 다들 나한테 화내요.”

“에이, 많이 화내진 않잖아요?” 스키너는 말했다.

“사람들은 나를 골칫덩어리라고 불러요.”

“골칫덩어리 아니에요. 이름이 뭡니까?”

“노마 진.” 여자는 월그린스까지 가기에는 너무 춥다고 말했다. 스키너는 차에 타라고 말했다. 그가 창을 올리고 히터를 켜자, 노마 진의 얼굴이 밝아졌다. “부모님이 메릴린 먼로를 따서 지어준 이름이죠. 나는 스타가 될 거예요.”

여자는 자기 과거를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이 아마도 여자의 실제 인생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에도 느닷없이 들어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여자는 어릴 때 카일러-브라운즈빌 바로 북쪽의 메이 거리에 있는 교회로 “남동생들을 데리고 가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이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라고 묻기에 나는 ‘두 분 다 알코올 중독자예요’라고 대답했어요.” 나머지는 오십 년에 걸친 고생, 말다툼, 빈곤, 폭력이 대충 연대기순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월그린스에 다 왔을 때, 여자의 시선이 바로 옆 맥도날드에 꽂혔다.

스키너는 여자에게 배고프냐고 물었고, 여자는 팬케이크와 소시지를 사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했다. 스키너는 드라이브스루 주문대로 진입했다. 노마 진은 말했다. “나는 앉아 있으면 아파요. 아무래도 소아마비에 걸린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걸어다니는 거예요. 잘 걸을 줄 알고, 무섭지도 않아요. 무서운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다섯 살 때부터 거리를 걸어다녔는걸.”

노마 진이 언젠가 누가 자기에게 삼색 고양이(캘리코)를 한 마리 줬다고 말하자, 스키너는 고양이 이름을 물었다.

“캘리코라는 이름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노마 진은 말했다.

“멋진 이름인데요. 나한테는 오렌지라는 이름의 오렌지색 고양이가 있습니다.” 스키너는 대답했다. “하지만 진짜 못된 녀석이에요. 그래서 보통은 그냥 ‘못된 고양이’라고 부르죠.”

“세상에! 나는 고양이가 좋아요! 나는 고양이를 개로 변신시킨답니다.” 노마 진이 말했다.

노마 진은 나무 지팡이와 까만 핸드백을 지니고 있었다. 핸드백 속에는 성경책, 지갑으로 쓰는 빈 피클병, 배터리가 없고 깨진 휴대전화, 돋보기, 오래된 세로켈 한 통이 들어 있었다. 세로켈은 양극성 장애와 조현병(정신분열증) 치료에 쓰이는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여자는 약을 먹으면 졸리기 때문에 안 먹은 지 오래되었다고 말했다. 당뇨도 있지만 의료보험을 낼 돈도 치료받을 돈도 없다고 했다. “인슐린을 안 먹은 지 3년 됐어요.”

노마 진의 음식이 나왔다. 6달러 남짓 들었다. 스키너는 20달러 지폐로 치르고 잔돈은 노마 진의 피클병에 넣었다. “딜 피클을 먹고 싶지만, 이제 이가 없어요. 핫마마 피클도 좋고 사우어 피클도 좋고…” 여자의 말끝이 흐려졌다.

“오늘 밤은 어디서 보낼 겁니까?” 스키너가 물었다.

“괜찮아요. 몇 시죠?”

“새벽 두 시 사십일 분입니다.”

“생각 중이에요.” 여자는 말했다. “깨끗한 데로 갈 거예요. 내가 갈 만한 데 아세요?” 서배너는 최남부의 따뜻한 도시이다 보니 노숙인들이 많이 몰려든다. 하지만 늘 붐비는 쉼터들은 해 질 무렵 문을 닫는다. “와플하우스로 가야겠어요.” 여자는 결정했다. “이십사 시간 열려 있거든요. 거기 가서 주크박스를 해야지.”

스키너는 관할서에 계획을 통지한 뒤 애버콘 거리에 있는 와플하우스 주차장으로 갔다. 노마 진은 한구석에 있는 부스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산타 모자를 벗고 손으로 머리를 엉클어서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치게 만들었다. “이러면 사람들이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아무도 나한테 안 다가오죠. 아무도 나를 안 해치죠.”

차로 돌아온 스키너는 자신이 노마 진을 도운 데는 세 시간 뒤 웬 여성 노숙인이 얼어 죽어가고 있다는 긴급 호출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이 나라는 대체 어디가 얼마나 잘못되었기에 노마 진이 우리와 함께 경찰차에 앉아 있게 되었을까요.” 미국의 조현병 환자 수는 전체 인구의 1퍼센트를 약간 넘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경찰이 받는 신고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다. 그 몇 시간 전에도 스키너는 하룻밤에도 몇 번씩 경찰서로 전화해서 조현병에 의한 편집증적 환각 상태에서 목격한 장면을 신고하는 어느 남자를 확인한 터였다. 경찰은 그의 신호 전화를 무시할 수가 없다. 남자가 .357인치 매그넘 리볼버를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경찰관들에게 들으니 남자가 한번은 자기 집 앞마당에 들어온 침입자를 죽이려고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스키너는 가끔 경찰관의 역할은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망가진 무언가를” 뒷수습하는 일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경찰이 실제로 하는 일 중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일은 사람들을 돕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겁니다.” 데이비드 M. 케네디는 내게 말했다. “그런 활동이 대부분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도 앞뒤가 완전히 바뀐 상황 중 하나죠.” 경찰관들은 점점 더 망가진 국가의 빈틈을 메우고 있다. “경찰관들은 그 일을 사실상 자력으로 해냅니다. 보통 적절한 훈련도 준비도, 필요한 기술도 갖추지 못한 상태로. 그런 일을 잘해내는 데 필요한 자원도 제도적 뒷받침도 갖추지 못한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노마 진을 와플하우스에 내려준 때로부터 27시간 뒤, 다른 경찰관이 무전으로 구급차를 호출했다. 산타 모자를 쓰고 표범 무늬 재킷을 입은 쉰아홉 살 여성 노숙인이 얼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

2월부터 스키너는 매일 오후 2시 30분에서 11시까지 고정된 시간에 순찰을 돌게 되었다. 주민들은 그의 모습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3월에 그가 카일러-브라운즈빌에서 뛰어서 용의자를 추격할 때, 집 앞 현관에 나와 있던 두 여자가 – 둘 중 한 명은 스키너가 바로 전 주에 수갑을 채웠던 사람이었다 – “달려라 달려, 스키너!” 하고 외치면서 그를 응원했다. 그는 하필이면 그 시점에 용의자를 시야에서 놓쳤고, 그래서 여자들에게 방금 웬 젊은 남자가 달려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경찰에게 절대로 협조하지 않는 동네였지만, 여자들은 스키너가 수색 방향을 좁히도록 도와주었다.

얼마 전 토요일 밤, 얼근하게 취해서 공원에 나와 앉아 있던 남자 두 명이 스키너를 손짓하여 불렀다. 한 남자가 말하기를, 또 다른 남자인 자기 친구 케네스가 여자친구에게 쫓겨나고 자동차 키도 빼앗긴 걸 위로하는 자리라고 했다. 그때 갑자기 케네스가 일어나서 스키너를 껴안으려고 다가들었다. 스키너는 흔쾌히 포옹했다.

몇 분 뒤, 스키너는 수습 경찰관에게 그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수습은 기겁했다. 경찰 학교에서는 경찰관들에게 일반인과 접촉할 때는 늘 한쪽 어깨를 내밀어서 반대쪽 엉덩이에 매달린 총을 상대가 잡아채지 못하도록 하는 자세를 취하라고 가르친다.

“나도 알아요. 전술적으로 불리한 위치가 되었죠.” 스키너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요!” 수습은 말했다.

스키너는 미소 짓고 말했다. “나는 전술이 아니라 전략을 추구하거든요.”

Advertisements

고향으로 돌아온 스파이 #1 [뉴요커, 벤 타우브]

2018년 5월 7일 [뉴요커]에 실렸던 벤 타우브의 기사, ‘고향으로 돌아온 스파이 – 대테러 활동의 전문가는 왜 순경이 되었나’를 번역해보았다. 원래 기사는 여기.

(기사가 길어서 전반부만. 후반부는 다음 포스팅에.)

180507_r31992
“여기가 팔루자인 것처럼 사람들을 대하는 걸 그만둬야 합니다.” 패트릭 스키너는 말했다. “그래서 팔루자가 어떻게 됐나 보세요.”

저녁에 잠깐 눈을 붙인 뒤, 패트릭 스키너는 몸에 잘 맞지 않는 보호복을 걸쳐 입고 조지아 주 서배너의 3분서 경찰서로 차를 몰았다. 12월 말이었고, 지독히 추웠다. 그는 날씨 때문에 총격 사건은 적겠지만 가정폭력 사건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인의 계절은 여름이죠.” 그가 말했다. 그는 걸쇠가 부러진 보디카메라를 테이프로 붙이기 위해서 일터에 일찍 도착했다.

당직 감독이 – 키가 크고 배가 살짝 나온 경장이다 – 연단에 서서 말했다. “굿모닝, 굿모닝, 굿모닝.” 밤 10시 31분이었다. 당직은 담배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그날 발생한 범죄를 간략히 브리핑했고, 그다음 도난 신고된 차량 목록을 읽었다. “늪거북 색깔 트럭을 잘 찾아봐.” 그가 말했다.

브리핑룸 벽은 별 장식이 없었다. 3분서 내 모든 순찰 구역이 표시된 지도가 붙어 있고 – 3분서 담당 구역은 맨해튼 면적의 절반이 넘는 데다가 서배너 시에서도 가장 폭력적인 동네들을 포함한다 – 다양한 종류의 마약 샘플, 사용 불가 상태인 경찰차 목록을 적어둔 화이트보드가 있을 뿐이다. 한 차는 과열되었고, 두 대는 사고로 망가졌고, 또 다른 두 대는 헤드라이트가 망가졌다. 여섯 번째는 “도로 주행에 위험함”이라고 적혀 있다.

“‘도로 주행에 위험함’이 대체 무슨 뜻이야?” 한 경찰관이 물었다.

“우리 차들은 전부 그런데.” 다른 경찰관이 말했다.

대부분의 순찰 경관은 오래된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를 몬다. 주행기록계가 20만 마일에 육박하는 차도 더러 있다. “게다가 경찰 마일이죠. 최소한 한 시간에 두 번은 끝까지 밟게 되는.” 스키너가 내게 말했다. 순경들은 헌 타이어, 불안한 브레이크, 총이나 곤봉에 쓸려서 구멍 난 좌석을 불평한다. 많은 차가 하루 24시간 운행된다.

마흔일곱 살인 스키너는 키가 작고, 머리가 벗어졌고, 짧게 다듬은 턱수염을 길렀고, 새파란 눈동자를 지녔으며,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사교성을 갖고 있다. 그는 유머와 외향성을 갑옷처럼 두른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자신들을 만나기 전에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거의 모른다.

새벽 3시경, 신고가 들어왔다. 서머사이드 동네의 어느 집 진입로에 “이상한 차량”이 서 있다는 신고였다. 신고자는 집 주소도 차량 생김새도 알려주지 않았다.

스키너는 경찰 훈련을 마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3분서 구역의 모든 도로를 안다. 한가한 밤에는 서배너의 어디어디에 신호등이나 정지 표지가 있는지 위치를 외운다. 어떤 호출을 받더라도 최단 경로를 떠올릴 수 있도록. 스키너와 함께 훈련 받았던 대런 브래들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경찰 신호와 암호가 적힌 종이를 받았는데” – 200개 가까이 되는 무전 호출 신호가 나열되어 있었다 – “이 친구는 한번 척 보더니 몽땅 머릿속에 담았더라고요.”

스키너가 서머사이드에 다 왔을 때, 선팅된 흰 카마로 한 대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스키너 쪽으로 다가왔다. 조지아 주에 등록된 차들은 앞쪽에는 번호판이 붙어 있지 않다. 하지만 스키너는 카마로가 스쳐 지나간 뒤 사이드미러로 슬쩍 그 뒤꽁무니를 보고 거울에 비친 번호판 숫자를 외웠다가 조회를 요청했다.

그는 카마로가 어느 길로 도망칠지 예상하며, 자신이 앞지르려면 어떻게 가야 할지 궁리하면서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저 남자가 바보라면, 52번가에서 우회전해서 다음 신호등에서 내 뒤에 설 겁니다.” 2분 뒤, 카마로가 커브를 돌아 스키너 뒤에 와 섰다. 스키너는 씩 웃었다.

서배너에서는 차량 도난이 하룻밤에도 여러 건 발생한다. 다른 범죄에 쓰려고 훔치는 경우가 많다. 카마로 운전자가 수상쩍은 회피 행동을 보이긴 했지만, 스키너가 보기에 그것만으로는 차량 검문을 실시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출동관리자가 카마로의 차량 번호를 조회한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스키너는 순찰을 계속했다.

조지아 주의 경찰 훈련 프로그램에서는 지원자들에게 백미러로 번호판을 보고 차량 번호를 외우는 기술 같은 건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른 많은 기술처럼 이 기술도 스키너는 CIA(미국중앙정보국)에서 익혔다. 그는 CIA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로 꼽히는 시기이기도 한 ‘테러와의 전쟁’ 초기에 CIA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후 의원들, CIA 국장들, 요르단 왕, 카타르 왕, 싱가포르 총리,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눴다. 그는 자신이 “대테러 활동 및 법 집행 분야의 포레스트 검프”처럼 역사적인 순간에 슬쩍슬쩍 드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대테러 활동이 문제를 풀기보다는 일으키기만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반자유주의와 히스테리를 부추기고, 해외 공동체를 망가뜨리고, 미국 국내의 중요한 문제에 쏟아야 할 관심과 자원을 딴 데로 돌릴 뿐이라고.

한편 미국 경찰은 그동안 군사적 전술을 하나둘 채택했다. 스키너는 그런 전술이 해외에서 결국 반란으로 이어지는 걸 목격했다. “여기가 팔루자인 것처럼 시민들을 다루는 걸 그만둬야 합니다.” 스키너는 내게 말했다. “그래봤자 소용없어요. 팔루자가 어떻게 됐나 보세요.” 그는 결국 자신의 기술과 전문성을 가장 의미 있게 쓰는 방법은 – 그가 생각하기에 국내외에서 미국인의 안전을 보장할 조치로서 유효한 조치를 실천할 유일한 방법은 – 고향 서배너의 순경이 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수니파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라.’ 이런 말이 담긴 전략 백서를 작성하곤 하죠. 좋아요. 그럽시다. 하지만 만약 ‘38번가와 불록 지구 주민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라’ 하고 말한다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알 수 있죠. 참나, 존나 어려운 일이잖아, 하고요. 도시의 한 블록에 불과한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해외에서 쓰는 말을 여기로 가져와서 적용해보면 진짜 얼마나 한심한 소린지 알 수 있습니다. 라이브오크에 사는 백인 주민들의 지도자는 누굴까요? 가난한 동네에서는?” 스키너는 고개를 저였다. “‘이라크 사람들의 지도자.’ 그게 대체 무슨 뜻입니까?”

소방관이 화재가 안 나게 만들 수는 없고 경찰관이 범죄가 안 나게 만들 수는 없는 것처럼, 어떤 군대도 테러가 없어지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회복력을 갖춘 사회를 만들 수는 있다. “‘육개월 내로 이런이런 결과를 보여라’ 하고 요구하는 정부 지시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나는 여기 산다, 이건 내 평생의 일이다’ 하고 말하는 게 되어야 합니다.” 스키너는 자신의 상황을 볼테르의 캉디드에 비교했다. 캉디드는 광신주의와 무능이 판치는 세상에서 온갖 어리석고 공포스러운 일을 겪은 뒤 결국 유일하게 가치 있는 일은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일이라고 결론 내린다. “3분서가 내 정원인 겁니다.” 스키너는 말했다.

***

“나는 한 번도 선임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스키너가 말했다. “늘 신입이었죠.” 1991년, 열아홉 살의 스키너는 연안경비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2년 동안 수색구조 활동을 했고 이후 3년은 허드슨 강의 쇄빙선에서 일했다.

아내 테레사를 만난 것이 연안경비대에서였다. 1999년에 아내가 워싱턴 DC의 연안경비대 본부로 발령 받자, 이전 몇 년 동안 웨이터와 항공기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대학 공부를 해온 스키너도 수도로 옮겨서 국회경비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대학 졸업식은 2001년 9월 11일 벌어진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으로 중단되었다. 재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스키너는 팩스로 CIA에 요원 지원서를 보냈다. 이후 몇 주 동안 CIA에는 지원서가 십만 장 넘게 들어왔고, 산더미 같은 지원서를 정리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고 한다.

국회경비대는 스키너를 상원의 사복경찰로 임시 배정했다. 2002년 1월 29일, 그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을 경호하는 자격으로 그와 함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첫 연두교서 발표장에 갔다. 둘은 나란히 앉아서 부시가 불량 국가들과 “그들의 테러리스트 동맹”으로 구성된 “악의 축”을 비난하며 이라크 침공의 발판을 닦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해 중순, 스키너는 국회경비대를 떠나서 여객기 보안 요원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공개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건 사람은 물었다. “정부 일에 지원했습니까?”

“저는 이미 정부 일을 하고 있는데요.” 스키너는 대답했다.

“압니다. 하지만 다른 정부 말입니다.”

CIA 충원 담당자였다. “그는 질문 몇 개를 속사포처럼 던졌습니다. ‘인더스 강은 카슈미르 북쪽입니까, 남쪽입니까?’ ‘팔레스타인 분할 날짜는?’ ‘서안 점령 지역에 있는 도시 이름을 다섯 개만 대보세요.’ 사실상 나를 목록에서 제하기 위해서 던진 질문들이었죠.” 스키너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답을 다 알았습니다. 이전 육개월 동안 한 일이라고는 비행기에 앉아서 신문이랑 [이코노미스트]를 읽는 것뿐이었거든요.”

2003년 여름, 스키너는 9/11 이후 세 번째 CIA 요원 선발 과정에 외교관 신분을 가장하고 일하는 공작관 지망생으로 들어갔다. 그는 훈련 과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 CIA는 훈련 프로그램의 존재를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 우리는 옛 공작관들이 펴낸 회고록에서 많은 걸 알 수 있다.

CIA 요원의 훈련은 버지니아 주 랭글리에 있는 본부에서 시작된다. 공작관 지망생들은 그곳에서 해외 비밀 작업시 사용할 가장 신분을 만든다. 몇 달 뒤에는 ‘농장’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옮긴다. 버지니아 주 남동부 녹지에 널찍하게 자리 잡은 그곳에서 지망생들은 약 9개월 동안 갈수록 정교해지는 역할극을 수행한다. ‘농장’은 가상의 적국이 되고, 교관들은 선생, 전술가, 정보원, 국경감시원, 적국 정보국 요원 등으로 행세한다. 공작관은 보통 기밀을 직접 훔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알맞은 외국인을 공작원(자산)으로 끌어들여서 정보를 넘겨받는다.

지망생들은 가짜 대사관 파티에서 공작원 모집 기술을 연습한다. 각자 해당 국가 사람 중 한 명을 표적으로 배정 받고, 표적의 관심사와 취미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라는 임무를 받는다. 파티가 끝날 무렵, 지망생은 자신의 공작자산이 될 사람의 연락처를 캐내는 데 성공해야 한다. 나중에 그 연락처를 활용해서 몇 달에 걸친 세심한 모집 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이튿날, 지망생들은 각자의 행동에 대한 평가를 듣는다. 맥주를 병째 마신 것 같은 사소한 행동으로도 점수가 깎일 수 있다. 외교관들은 보통 잔으로 마시기 때문이다.

지망생들은 결코 쓸 일이 없었으면 싶은 전술 기술도 배운다. ‘크래시 앤드 번(망하다)’이라고 불리는 운전 교습에서는 고속으로 달려서 장애물을 피하는 법, 검문소에서 행동하는 법, 바리케이드를 들이받고 지나가는 법을 배운다. 방향 찾는 법과 육탄전 벌이는 법을 배우고, 무장 교관들에게 쫓기면서 진흙탕 늪지에서 며칠씩 숨어 지낸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법, 폭발물 다루는 법, 외국 무기 다루는 법, 비밀 통신용 장비 다루는 법을 배운다.

캠퍼스 밖에서도 수백 시간을 보낸다. 도보로 혹은 렌트카로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시골을 살금살금 돌아다니면서 미행이 따라붙었는지 알아낼 수 있는 이동 경로를 짜낸다. 지망생은 각자 대사관 파티에서 사귀었던 공작자산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를 살핀 뒤, 그곳까지 가는 90분짜리 경로를 고안해야 한다. 경로는 막히는 길과 호젓한 길을 두루 통과해야 하고, 가끔 주유소나 가게에 들러야 하는데, 미행하는 이들을 드러낸다는 진짜 목적을 감추기 위해서다. 정보국은 매년 렌트카를 여러 대 망가뜨린다. 지망생들은 노상 백미러를 보고 다니다 보니 가끔 전방을 주시하는 걸 잊는다.

180507_r31993
경찰들은 긴장 완화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상황이 아주아주 나빠지는 겁니다. 하지만 경찰 입장에서는 정당하고 합법적이죠.” 스키너는 말했다.

***

이처럼 활동 영역을 숙지할 것을 강조하는 CIA의 원칙은 스키너의 순찰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매일 교대 임무를 시작할 때 순찰 구역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차를 몰아 안쪽으로 들어간다. 가끔 일방통행로를 반대 방향으로 달릴 때도 있다. 낯익은 풍경에만 고착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한가한 밤에는 미해결 강도 사건이 몇 주 전 발생했던 현장에 차를 세우고 도둑이 어느 길로 도망쳤을지 상상해본다. 다음에 또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강도의 뒤를 곧장 밟기 위해서다.

3분서에서 자정 넘어서까지 영업하는 시설들은 일 년에 몇 번씩 총 든 강도에게 털린다. “주민들은 경찰에게 고마워하지만, 사실은 맥도날드 직원들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스키너는 말했다. “누가 얼굴에 총을 들이대는 일을 겪을 확률은 우리보다 그들이 훨씬 높거든요. 강도를 당하지 않는 곳이 한 군데 있긴 하죠. 심야에 여는 주류 판매점. ‘이 가게가 닫으면 우리가 술 취해서 싸울 수가 없잖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죠.”

어느 날 밤, 스키너와 나는 순찰 구역 남쪽 끝에 있는 캔들러 병원 근처에서 희한한 차량 파괴 사건이 발생했다는 호출을 받고 달려갔다. 누군가 주차장에서 포드 타우루스를 몰고 나가려다가 차를 급발진시켜서 높이가 6미터가 넘는 둔덕으로 치달아 병원 간판에 들이박았다. 앞좌석에 피가 묻어 있었지만, 근처에 사람은 없었다. 스키너가 뒷좌석을 보니 기저귀들, 아편제인 하이드로코돈 빈 통, 여분의 번호판들, 갈색 머리카락이 부스스하고 여윈 이십 대 후반 백인 남성의 사진이 실린 운전면허증이 있었다.

“그놈은 멀리 안 가도 됐겠네요.” 한 경찰관이 농담조로 말했다. 병원 응급실 입구가 주차장에서 지척에 있기 때문이다.

“벌써 확인해봤어요. 병원에는 없어요.” 젊은 순경 브래들리 매클렐런이 말했다.

캔들러 병원은 쇼핑가와 주거 지역에 둘러싸인 붐비는 도로에 있다. 스키너는 추운 날씨와 운전자의 예상 부상 수준을 고려하여 수색 후보지를 세 군데로 좁혔다. 그는 두 블록을 운전해서 먼저 맥도날드로 갔고, 그다음 바로 옆 월그린스로도 가서 종업원들에게 “‘스쿠비두’ 만화에 나오는 사람처럼 머리가 텁수룩하고 취한 데다가 피를 흘리는 남자”가 있는지 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남자는 운전 실력이 형편없는 게 창피해서 내뺀 게 아닙니다. 음주운전이 들킬까 봐 내뺀 거죠.” 술이 깬 다음 자수하면 음주운전 관련 처벌은 면할 수 있을 테니까.

스키너의 세 번째 직감은 남자가 북쪽 해버셤 거리로 갔으리라는 것이었다. 다시 시내로 향해서 친구에게 태워달라고 하려고. 새벽 2시 41분, 캔들러 병원 직원이 경찰에 전화했다. 술 취한 채 피 흘리는 텁수룩한 남자가 해버셤 거리 주유소에서 얼쩡거리다가 실려왔는데 이제 응급실에서 욕설을 내뱉으면서 의료진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남자의 등이 부러진 것 같다고 보고 강제로 남자의 몸을 고정시켜두었다. 병원이 이미 남자의 피도 뽑았으니, 경찰이 할 일은 영장을 받아서 법정에서 음주운전을 증명할 혈액 샘플을 확보하는 것뿐이었다.

***

2004년 여름, 스키너는 CIA 훈련 과정을 마치고 파키스탄 국경에 인접한 아프가니스탄 도시 칸다하르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CIA는 아프간 탈레반 지도자인 외눈박이 물라 오마르가 살던 집을 몰수하여 쓰고 있었다. 카불이 함락된 지 삼 년째였지만, 알카에다 지도부는 국경 인근 산악 지대로 피신해 있었고 파키스탄 정보부가 은밀히 탈레반을 지원했다. 활동 영역이 아프가니스탄에 국한된 CIA 공작관들은 무법 지대인 파키스탄의 부족 지역에 구축된 지하드 조직망에 침투할 수 있는 공작자원을 모집하려고 애썼다. CIA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접근성만이 아니었다. 정보국이 아프가니스탄 다른 지역에서 쓰는 지도는 1960년대에 나온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로, 거기 표시된 지형지물이나 마을 이름은 현지인들이 부르는 이름과 하나도 맞지 않았다.

칸다하르 주민들은 비밀 정보를 들려주고 보상금을 받을 생각으로 스키너를 종종 찾아왔다. “공작관은 임시직이었고, 주민들은 우리가 순환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았죠.” 스키너는 내게 설명했다. “주민들은 [파키스탄 국경 바로 너머의] 퀘타에서 빈라덴을 봤다, 자와히리를 봤다, 캡틴 마블을 봤다, 온갖 사람을 다 봤다 하는 이야기를 갖고 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끝내주네, 난 미국 역사상 최고의 공작관이야!’ 싶죠. 그래서 제보자에게 500달러를 쥐여주고, 당장 랭글리 본부로 보고를 올립니다.” 순환 근무를 마칠 때까지, 스키너는 하나같이 신빙성 없는 그런 이야기를 수십 번씩 들었다.

인디애나 출신의 공작관 더글러스 루는 2010년 칸다하르에 배치되기 전에 아프가니스탄 남부 공용어인 파슈토어를 배워두었다. 여러 주민들이 제 발로 찾아와서 똑같은 탈레반 전사의 이름을 제보하자, 루는 개중 한 명에게 어떻게 갑자기 모두들 그 이름을 알게 된 거냐고 물었다. “그는 내게 그 지역 아프간 라디오 방송국이 미군이 정보를 얻기를 원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정기적으로 방송해준다고 대답했다.” 루는 CIA에게 심하게 편집 당한 회고록 [폭발의 왼쪽(Left of Boom)]에서 그렇게 말했다. 미군은 그 사실을 진작부터 알았지만 CIA에게도 알려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많은 제보자가 계속 보상금을 타갔다.

첩보 활동은 인간 관계에 의존한다. “내가 관리했던 최고의 자산들은 돈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스키너는 말했다. “그들에게는 뭔가 더 큰 일에 끼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애국심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팀에 자신도 끼고 싶다는 욕구였죠.” 하지만 대부분의 공작자산은 극도로 협소한 맥락에서만 믿을 수 있었고, 현지인들은 힘 있는 미국인이 개인이나 부족간 분쟁에서 자신의 뒤를 봐주기를 바랐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기 조국을 위해서 그 일을 한다고 말하겠지만 – 우리가 그런 말을 좋아한다는 걸 알거든요 – 실제로는 복수심 때문입니다.” 스키너는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탈레반을 물리치고 새 정부를 세우려고 애썼다면, CIA는 알카에다 조직원을 죽이는 데 집중했다. 특수작전부대와 정보국 요원들이 협력하여 효과적인 급습 작전을 치러내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전략이 없다면 전술적 성공은 무의미하다. 스키너를 비롯한 CIA 요원들은 아프가니스탄 마을을 습격하는 일이 어떻게 미국 민간인들을 더 안전하게 만든다는 건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지쳐갔다.

그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한 일이 또 있었다. 미국 지도부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상주함으로써 망가진 아프가니스탄을 고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듯하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요즘 내가 경찰 점호에서 얻는 정보보다 부족한 정보를 갖고서 국가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스키너는 말했다. 미군의 침공 두 달 뒤,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가 작성한 한 메모 때문에 그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무슨 언어를 쓰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들통났다. 미군의 공습이 반복될수록 그 나라는 조금씩 망가져갔다. “그래서 우리는 더 애썼고, 그러면 사태는 더 나빠졌죠.” 스키너는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더 애썼고, 그러면 사태는 더욱더 나빠졌죠.”

워싱턴의 관료들은 현장 요원들의 상황 평가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계속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인이 너무 많이 죽었기 때문에 그냥 손 뗄 수는 없네. 하지만 탈레반에게 언제까지라고 기한을 정해두고 싶지도 않아.’ 그러면, 영원히 하겠다는 겁니까? 그게 당신들 계획입니까? 이봐요, 그 사람들은 여기 사는 사람들이라고요.”

스키너는 종종 탈레반 진지로부터 쏟아지는 포화를 경험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일 년을 보냈고, 이후에도 십 년에 걸쳐 여러 차례 돌아갔다. 그는 이런 말을 적은 쪽지를 방탄조끼에 꽂아두고 지냈다. ‘내 아내에게 모두 무의미한 일이었다고 전해주십시오.’

***

탈레반이 – 그리고 전 세계 대부분의 반란 조직이 – 선호하는 무기는 소련에서 개발된 공격용 라이플, 칼라슈니코프다. 칼라슈니코프는 반 마일 거리에서도 목표물의 상체를 관통할 수 있다. 지난해, 브래들리 매클렐런은 서배너의 두 미성년 마약상에게서 칼라슈니코프 한 정과 권총 여러 정을 압수했다. 경찰이 지급하는 방탄조끼는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막아주지만 공격용 라이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꼬마들이 그런 무기를 구할 수 있다는 걸 안 뒤, 나는 당장 하드플레이트를 구입했습니다.” 매클렐런은 내게 말했다. 하드플레이트가 삽입된 방탄조끼는 교전 지역에서 쓰도록 만들어진 물건이다. 하드플레이트를 구입하는 데는 500달러가 들었다. 일주일치 급여다.

미국에서 고성능 무기가 판치다 보니, 시민들과 당국 사이에서 무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매년 경찰 수십 명이 총에 맞아 죽고, 경찰은 매년 약 천 명의 시민을 죽인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무해한 물건을 무기로 착각하거나 사람들의 겁에 질린 행동을 위협 행동으로 착각해서 벌어지는 일일 때가 많다. 평화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도 저격수, 장갑차, 최루가스를 점점 더 많이 만난다. 지난 20년 동안 50억 달러어치가 넘는 군사 장비가 군대에서 주 혹은 지방 경찰에게 넘어갔다. 야간 투시경, 보트, 비행기, 유탄 발사기, 총검까지. 스키너는 내게 말했다. “경찰이 [군인을 매복병이나 지뢰에서 보호하기 위한 방호 차량인] MRAP을 갖고 싶다면, 연방정부에 신청서를 내기만 하면 됩니다.”

미국의 선도적 범죄학자인 데이비드 M. 케네디는 미국 경찰의 치안 활동이 직업 행위라기보다는 각자 발휘하는 기술처럼 수행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내게 말했다.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하는 틀을 설정하고 가다듬는 데 필요한 고민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경찰관들은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공동체 역학, 지역 역사, 심지어 범죄학조차 배우지 않은 상태로 법 집행관으로 배치된다. 무력이 다른 선택지들보다 우선시된다. 스키너가 경찰에 들어왔을 때, 그와 함께 훈련받은 동료들 모두가 권총을 하나씩 받았지만 테이저는 받지 않았다. 경찰서가 보유한 테이저가 바닥나서였다.

스키너에 따르면, 조지아 주 경찰 훈련소는 “전술과 법만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경찰관들은 “일단 경찰이 합법적 명령을 내렸다면 시민은 당장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현실에서 “합법적 명령”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왜 그런 명령을 받는지 모를 수 있고, 자신이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경찰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를 수 있다. 훈련소에서는 긴장된 상황이기는 해도 범죄는 저질러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관이 어떻게 하면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경찰관이 받는 호출의 대부분은 저런 범주에 속하는 상황인데도. 그런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경찰관의 재량에 달렸고, 가장 단순한 선택지는 호전적인 사람들에게 땅에 엎드리라고 명령한 뒤 그들이 따르지 않으면 대뜸 덤벼들어 수갑을 채우는 방법이다.

“그렇다 보니 상황이 아주아주 나빠지는 겁니다. 하지만 경찰 입장에서는 정당하고 합법적이죠.” 스키너는 말했다. 경찰관이 만나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을 겪고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스키너는 그런 경우 말썽을 해결함으로써 그들이 “범죄에 가까운 상황”에서 “진짜 범죄 상황”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막는 것 또한 경찰관으로서 자신의 임무라고 믿는다. 그는 “국가의 위력보다 인간적 접촉의 힘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내 경우에는 긴장을 해소하는 일이 그냥 용의자를 잡아들이는 일보다 훨씬 더 진 빠지는 일입니다.” 스키너는 말했다. “호출을 받고 달려가는 동안 머릿속이 미친 듯이 돌아가죠. 정보국에서 했던 사전 작업하고 똑같은 일이에요. 정말 똑같습니다. 상대와의 접촉이 내가 이끄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준비하는 일이죠.” 공작관이었을 때 스키너는 상대와의 대화가 어떤 방향으로 펼쳐질지 미리 예상해서 모든 가능성을 다 담은 플로차트를 그렸다.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만남에 앞서서 준비 기간이 일주일 있었지만, 이제는 호출을 받고 달려가는 동안 해야 하죠.”

스키너는 운전할 때 늘 창을 내려둔다. 시민들이 경찰이 자신을 유심히 뜯어보거나 의심스럽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지 않은 채 경찰과 접촉할 기회를 가급적 늘리려는 생각이다. “가끔 경찰들이 시민들을 ‘민간인’이라고 부르는데, 정말 헛소립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군인이 아니에요. 우리가 안전을 살피는 사람들은 우리 이웃입니다. 이건 단순히 말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꾸 그렇게 말하다 보면 사고방식이 그렇게 굳습니다.” 그는 비번일 때는 집에서 정원을 가꾸고, 반려동물들을 돌보고, 철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수도꼭지에 기대어 세워둔 아이패드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면서 사람의 표정과 어조가 어떻게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는지 연구한다. “간간이 살짝 찡그리거나 어깨를 으쓱하는 것만으로도 큰 차이가 빚어진다.” 얼마 전 스키너는 리키 저베이스가 고아들과 암에 대한 음울한 농담을 하는 영상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이렇게 적었다.

몇 번의 수색과 한 번의 가택 급습을 함께하면서, 나는 스키너가 경찰관 중 유일하게 총을 권총집에 꽂아두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느 날은 새벽 4시에 스키너의 어머니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경보가 울렸다. 경찰관들이 가 보니 출입문이 열려 있었다. 세 경찰관은 권총을 꺼내 들고 구내로 살그머니 진입했다. 하지만 스키너는 손전등을 썼다. 그는 내게 말하기를, 경찰관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을 살펴보기 때문에 총을 꺼내 들고 있으면 실수로 서로를 쏠 위험만 높아진다고 했다.

폭력이 이미 저질러진 현장으로 출동하는 경우도 있다. 주유소에서 살인이 벌어졌고, 갱들이 총격전을 벌여서 사상자가 여럿 났고, 또 한 번은 가정폭력 사건이었는데 남자가 자신에게도 생활비를 보태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여자친구를 초주검이 될 지경으로 때린 사건이었다. 우리는 여자가 실려간 병원으로 갔다. 여자를 보살피는 간호사 곁에서 스키너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여자는 얼굴뼈가 부러졌고, 특히 왼쪽은 어찌나 부었는지 반으로 가른 자몽이 얼굴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여자는 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네” “아니요”라고만 대답했고, 그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내가 잘못한 것 같아요” “저는 임신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to be continued)

질의 응답 – 옮긴이의 말

8954655157_1질의 응답 – 우리가 궁금했던 여성 성기의 모든 것
니나 브로크만, 엘렌 스퇴켄 달 지음, 김명남 옮김, 윤정원 감수, 열린책들 펴냄

이 책을 옮기면서 몇 번이나 생각했다.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를테면 이런 때. 초경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중학생 시절에 생리를 한 주기 완전히 걸렀다. 그때 느꼈던 공황이 지금도 생생하다. 성 경험이 없었으니 임신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 외에는 생리가 멎는 이유를 아는 게 없었기에 우스꽝스럽도록 비합리적인 공포에 한 달 내내 시달렸다. 그 나이에는 누구에게 물어볼 주변머리도 없었다.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초경 후 몇 년은 몸이 호르몬 변화에 적응하느라 생리 불규칙을 비롯한 불순이 흔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또 이런 때. 탐폰을 처음 시도한 날, 삽입 방법을 잘 몰라서 그만 애플리케이터까지 다 넣었고 그 불편한 상태로 두어 시간을 견뎠다. 안내문을 제대로 읽지 않은 탓이었지만, 그 무지와는 대조적으로 탐폰에 대한 나쁜 소문은 (독성 쇼크 증후군이 흔하다더라, 어려서부터 쓰면 안 된다더라) 익히 들었던 터라 역시 쓸데없는 걱정으로 내내 초조했다.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 책에 탐폰 이야기가 간략하게만 나오는 것은 이제 탐폰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알려진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탐폰을 더 자신감 있게 쓰는 건 물론이고 자궁 내 피임 장치 같은 다른 대안도 일찌감치 적극 고려해 보았을 것이다.

또 이런 때. 정기 건강 검진에서 부인과 검사를 받다가 의사로부터 대뜸 “아직 출산도 안 한 분이 이러면 어떡해요. 약 드릴 테니 꼬박꼬박 복용하세요” 하는 핀잔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서 한마디도 못 했다. 냉이 좀 많아졌다는 것 외에 스스로 아무 이상을 느끼지 않았는데 갑자기 질에 문제가 있다니 놀라기도 했지만, (남자 의사로부터) 면박을 받으니 창피해서 무슨 질병인지, 왜 생기는 문제인지 묻지 못했다.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 칸디다 질염이었던 것 같은 증상에 관하여 궁금한 것을 또박또박 물을 수 있었을 텐데. 어떤 문제이든 내가 생식기 청결을 소홀히 해서 겪는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고(질은 오히려 지나치게 씻으면 해롭다), 평소에도 팬티라이너를 써야겠다는 잘못된 결심도 하지 않았을 텐데(팬티라이너로 인한 통풍 부족이 더 문제다).

이런 말 못 할 기억들은 생식기 문제가 아니었어도 마찬가지였을까? 아닐 것이다. 가령 발가락이나 소화관 문제였다면, 무지외반증이나 역류성 식도염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혼자 앓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거보다 의학 정보를 얻기가 쉽고 어린 여성들도 부인과 진료를 편하게 받는 요즘도 여성 생식기는 여전히 다른 인체 부위보다 쉬쉬하며 이야기된다. 틀림없이 많은 여성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했거나 할 것이다.

[질의 응답]은 (이 책을 소화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어린 나이라도 좋은) 청소년 여성부터 중년 여성까지 거의 모든 여성들에게 여성 생식기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알려주는 책이다. ‘거의 모든’ 정보라고 한 것은 폐경기 무렵과 이후의 생식기에 관한 설명은 적기 때문인데, 이것은 두 저자가 원래 주로 청소년과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성교육 강사로 활동하다가 이 책을 쓰게 되었던 탓이다. 그 점을 제외하고는 정말 모든 정보가 다 있다.

[질의 응답]의 가장 큰 장점이 그것이다. 여성 생식기의 구조와 생리학적 기능 같은 과학 정보부터 각자에게 맞는 피임법과 제모법을 찾는 기준 같은 실용적 정보, 흔한 생식기 질환의 증상과 대처법 같은 의료 정보까지 포함되었다는 것. 심지어 오르가슴을 잘 느끼는 방법에 대한 조언까지 있다! 여성 생식기는 우리가 생식할 때 쓰는 기관이지만 생식과 무관한 섹스를 할 때 쓰는 기관이기도 하니까 사실은 이처럼 성기로서의 사용법과 관리법도 함께 이야기하는 게 당연하다. 또 여성의 경우 요도구와 항문이 생식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가까운 관계를 (위치로나 기능으로나) 맺고 있으니까, 그 상호 작용도 살펴보는 게 당연하다. 이 책에 가령 요실금에 관한 설명까지 나오는 건 여느 책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점이다.

두 번째 장점은 두 저자가 여성이자 의대생 혹은 의사라는 것이다. 모든 주제가 그렇겠지만 특히 생식기에 관해서는 직접 겪지 않으면 질문 자체를 떠올리지 못할 듯한 질문이 많다. 여행 갈 때 생리를 건너뛸 방법이 있나요? 하필 섹스하려는 순간에 생리가 터지는 경우가 잦은 건 왜죠? 피임약을 복용한 후 살찐 것 같은데 괜찮나요? 두 저자 중 니나 브로크만은 이 책을 쓰던 중 출산도 겪었다. 한편 두 저자가 관록 있는 의사나 의학자가 아니라는 점이 도리어 장점인 대목도 많다. 저자들이 그 덕분에 ‘멍청한’ 질문도 스스럼없이 던질 수 있었고 그 사실이 독자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탐폰이 질에서 사라질 수도 있나요? 피임약으로 배란을 막으면 난자가 저장되어서 더 늦게까지 임신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나만 저런 생각을 떠올렸던 게 아니었다.

세 번째 장점은 저자들의 산뜻한 태도다. 성차별적, 보수적 여성관이나 종교적 세계관이 반영된 발언은 전혀 없다. 두 저자는 여성 생식기를 가진 이들이 스스로를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게 여기기를 바란다는 주장을 펼칠 때도 철저히 의학적이다. 인간의 몸과 생식기는 개개인마다 형태와 능력이 다른 게 당연하고 그 모든 변이가 대부분 정상이니 부끄러워할 것 없다고 말하고,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몸은 각자 이미 가진 몸 하나뿐이니 흠 잡지 말고 너그럽게 대해 주자고 말한다. 성 매개 감염병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경우는 약간의 부주의와 불운 탓이므로 도덕적 판단을 끼워 넣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실용적인 태도가 독자의 마음을 얼마나 편하게 해주는지 모른다.

이 책이 너무 실용적이고 솔직한 점에 도리어 놀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애널 섹스할 때의 주의점에 대해서도 꼭 읽어야 한단 말이야?’ ‘아이들에게 첫 경험 순조롭게 하는 방법을 읽혀도 되나?’ 그런 이야기는 좀 지나치다고 여기는 독자에게 저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그런 섹스를 하고 실제로 그런 궁금증을 품는데도 말하지 않는다는 건, 모래에 머리를 처박고는 문제가 자기 눈에 안 보이니까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타조 같은 짓이에요.” 저자들이 임신 중단을 다룬 장에서 실제로 한 말을 빌려왔다.

노르웨이 저자들이 쓴 책이라 우리나라와는 다른 의료 관행이 소개된 점은 감안해야 한다. 이를테면 저자들이 여성의 당연한 권리로 이야기하는 응급 피임약과 임신 중단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사정은 크게 다르다. 하지만 역시 저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나라의 사정이 어떻든 다른 나라의 의료 체계 내에서 여성 생식기에 관한 문제들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알아 둬서 나쁠 건 없다. 현재의 현실적 한계와 무관하게 우리에게 어떤 선택지가 더 있는지를 알아 두는 건 더 나은 정책과 관행을 요구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이 책에 다뤄진 많은 의문들은 두 저자가 성교육 현장에서 실제 여성들에게 받았던 질문이다. 그리고 저자들이 말했듯이, 성에 개방적이기로 유명한 스칸디나비아 여성들에게 그런 질문들이 있다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초경보다 폐경에 훨씬 가까운 나이가 된 나도 새롭게 배우고 얻은 게 많았다. 앞으로는 자궁 경부암 검진을 비롯하여 부인과 진료를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질문도 더 잘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역시 아쉽다. 이 책을 훨씬, 훨씬 더 일찍 읽었어야 했다.

주기율표 – 옮긴이의 말

8954655157_1주기율표 –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31
에릭 셰리 지음, 김명남 옮김, 교유서가 펴냄

2019년 올해는 유네스코와 유엔이 정한 국제주기율표의 해다. 러시아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최초의 현대적 주기율표를 발표한 해가 꼭 150년 전인 1869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주기율표에 관한 학회, 교육 행사, 강연 등이 많이 열릴 예정이다.

그러니 첫단추 시리즈 중에서도 [주기율표]를 올해 번역하여 내게 된 게 공교롭게도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혹 국제주기율표의 해라니까 주기율표에 관한 책을 한 권 읽고 싶다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은 좋은 선택이다. 2011년에 출간된 책이기는 하지만 수정해야 할 부분이 없고, 저자 에릭 셰리는 주기율표의 역사와 의미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손꼽히는 학자다. 셰리가 펴낸 모든 논문과 책의 주제가 주기율표이고, 올해 그는 국제주기율표의 해 관련 주요 학술 행사에서도 조직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더구나, 주기율표를 이루는 화학원소들에 관한 책은 제법 많아도 주기율표 자체를 다루는 책은 거의 없다. 과학을 발견의 역사로만 이야기하는 관행 탓도 있을 텐데,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멘델레예프가 어느 날 꿈에서 원소들의 표를 보고는 주기율표를 떠올렸다더라 하는 탄생 설화 정도만 배웠을 것이고 그 이상은 어디서도 별로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멘델레예프는 꿈에서 주기율표를 본 게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 비록 우리가 그의 첫 주기율표 작성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서 국제주기율표의 해를 기념하기는 해도 – 멘델레예프가 최초의 발견자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보다는 독일 화학자 율리우스 로타어 마이어의 주기율표가 더 일렀다고 한다. 멘델레예프가 처음으로 주기율표에서 빈칸을 남겨두고 그곳에 들어갈 원소의 성질을 예측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원소표를 통해서 그런 예측을 감행했던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주기율표에 우리가 익히 아는 2차원 직사각형 형태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은 또 어떤가. 주기율표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3차원도 있고, 타원형도 있다. 2차원 직사각형 형태라도 원소들의 위치를 다르게 배열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가장 중요한 원소인 수소의 위치조차 아직 토론이 이어지고 있는 문제다.

주기율표가 ‘다 완성된 프로젝트’인 것도 아니다. 이제 과학자들이 원소번호 118번 너머의 원소들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려고 애쓰고 있으니 앞으로 주기율표에는 새 주기가 생길 것이다. 주기율표의 주기성을 양자역학으로 환원적으로 설명해내려는 시도도 완성되지 않았다. 물리학이 아직 주기율표를 온전히 설명해내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고, 그것이 현재 물리학의 한계인지 주기율표의 한계인지는 우리가 미래에야 알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이 얇은 책에 잘 간추려져 있다. 그리고 이 책 다음으로 읽을 책을 찾는 독자에게는 우선 셰리의 또 다른 책 [일곱 원소 이야기]를 권한다. 주기율표에서 우라늄 아래 원소들 중 맨 마지막으로 발견된 일곱 원소를 중심으로 원소 발견의 우선권 문제를 살펴본 책이다. 좀더 재미난 일화 중심의 주기율표 이야기를 찾는 독자에게는 샘 킨의 [사라진 스푼]을 권한다. 주기율표 자체와 그 속의 원소들을 둘러싼 인간 드라마를 흥미진진하게 엮었다. 휴 앨더시 윌리엄스의 [원소의 세계사]도 비슷한 책인데, 샘 킨과 휴 앨더시 윌리엄스의 책에 관해서는 에릭 셰리도 이 책의 1장에서 언급했다.

역시 셰리가 언급한 책 중 올리버 색스의 [엉클 텅스텐],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도 번역서로 구할 수 있다. [엉클 텅스텐]은 신경의학자였던 색스가 어린 시절 화학원소들과 실험에 매료되었던 일을 회상한 이야기이고, [주기율표]는 화학자이자 아우슈비츠 생존자였던 레비가 원소들에서 떠오르는 연상을 토대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한 에세이집이다. 둘 다 과학책은 아니지만, 셰리도 이 책에서 언급했을 만큼 좋은 글들이니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화학적 자서전’이라 부를 만한 두 책은 주기율표에 관한 가장 문학적인 글들일 것이다.

‘미시즈 스토너’ 입을 열다

2019 2 20 [파리 리뷰]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번역해보았다.

***

‘미시즈 스토너’ 입을 열다: 낸시 가드너 윌리엄스와의 대화 – 퍼트리샤 레이먼

작고한 작가 존 윌리엄스의 부인, 낸시 가드너 윌리엄스는 콜로라도 주 푸에블로에 있는 작은 단층집, 사막에 가까운 곳에서 산다. 로키산맥 가까이 있는 마을은 한때 철강 산업이 유명한 곳이었다. 낸시는 키가 크고 자세가 곧다. 주의 깊게 듣고 살피며, 친근하지만 좀 조심스럽다. 말이 많지 않지만, 몇 마디만 들어보아도 낸시와 그 남편이 동등한 관계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허세도, 유행도, 과시도 모르는 사람.” 댄 웨이크필드는 존 윌리엄스를 그렇게 묘사한 적 있다. 저 말은 낸시에게도 모두 들어맞는 듯하다. 낸시는 덴버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때 교수 중 한 명이 존 윌리엄스였다.

stoner-night-1024x824

질문: 윌리엄스 부인, 남편을 1959년에 덴버에서 만났죠. 그는 당신을 가르친 교수였습니다. 그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답변: 그는 늘 애스콧타이를 맸고, 늘 담배를 피웠습니다. 강의할 때도. 그가 애스콧타이를 매지 않고 가르치러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군요. 좋은 선생이었습니다. 뭐든 단정한 걸 좋아했고, 태도도 단정하고 깔끔했습니다.

질문: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죠.

답변: , 그의 가족은 가난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로맨스 잡지 읽기를 좋아하는 분이었어요. 그가 열두 살 때 마을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 주인이 그를 눈여겨보았다고 합니다. 가끔 존은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곤 했어요. 하지만 다들 힘든 시기였으니까요. 입에 풀칠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걱정과 압박은 함부로 상상하기 어렵죠. 가족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먹을 건 있었습니다. 존이 언젠가 내게 그 땅을 보여줬어요. 아주 작더군요. 집도 작고 땅도 작고.

 

질문: 그는 어떻게 대학에 갔나요?

답변: 정말로 그는 진학할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돈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당시 2차대전에서 복무했던 사람은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었죠. 정부가 돈을 대줬으니까. 그에겐 행운이었습니다. 정말로 멋진 일이었죠.

 

질문: 그가 작가로 처음 주목 받은 건 [부처스 크로싱(Butcher’s Crossing)] 덕분이었습니다. 그의 소설들은 배경이 다양하고, 장르도 다양합니다. 그래도 [부처스 크로싱]은 당시 그가 처한 상황이었던 젊은 교수라는 현실과는 거리가 아주 멀어 보입니다. 그가 왜 서부극을 썼는지 아십니까?

답변: 그가 서부에 살았으니까요. 산과 강과 기타 등등이 주변에 있었으니까요. [부처스 크로싱]을 쓸 때 그는 종종 숲에서, 산에서 야영했습니다. 내 생각에 그는 자연은 무해하다고 말했던 에머슨에게 동의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처스 크로싱]이 그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 존의 경험이 많이 담긴 건 사실입니다. 계속되는 죽음이라든가.

 

질문: 전쟁에 대한 비유였을까요?

답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그는 전쟁 중에 무얼 했습니까?

답변: 그는 목소리가 컸어요. 그래서 고등학생 때 방송원 일을 맡았죠. 그러다가 무선 방송에 대한 공부를 좀 했고요. 그래서 육군항공대에 배치되자마자 통신 훈련을 더 받게 되었고, 결국 수송 겸 정찰용인 C-45 비행기의 무선 통신원이 되었습니다. 전쟁 중 중국, 버마, 인도에서 그 일을 했죠. 그러다 격추 당했습니다. 비행기가 나무 꼭대기를 스치면서 아주 낮게 날다가 결국 추락했죠. 존은 갑자기 자기가 비행기 밖에 앉아 있더랍니다. 자기가 스스로 빠져나왔는지 비행기에서 튕겨 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고 했죠. 아무튼 비행기 앞쪽에 앉았던 자신과 다른 두 남자는 살았고 뒤쪽에 앉았던 다섯 명은 죽었다는 사실밖에는. 그 일은 평생 그를 괴롭혔습니다. 왜 나는 살고 그들은 죽었지?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악몽을 많이 꿨습니다. 말라리아도 수시로 재발했죠. 전쟁이 끝나고 15년이 지난 뒤였는데도. 세월이 흐르자 악몽은 줄었지만, 그래도 이따금 다시 나타났습니다.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2년 반 동안 죽이고, 죽이고, 죽였으니까요.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질문: 첫 소설 [그날 밤에 생긴 일(Nothing but the Night)]은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안고 있고 현재 아버지와 소원한 아들이 중심 인물입니다. 그 책에서는 글쓰기에 대한 존의 욕구와 재능이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신산한 일을 겪어본 사람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지죠. 저는 그 점에 감탄하다가, 문득 그가 그 소설을 전쟁 중에 버마에서 썼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겨우 스물두 살에.

답변: 맞습니다.

 

질문: 그는 왜 그 소설 이후 오래 안 썼습니까?

답변: 음,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오기 전에 그 책을 다시 읽어둘 걸 그랬군요. 그랬다면 더 잘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요. 아무튼 그는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회복하던 중 [그날 밤에 생긴 일]을 썼습니다. 규칙상 귀향해야 했지만, 당장에는 그럴 방법이 없었죠. 그래도 임무는 맡지 않았습니다. 부상자에게는 아무 임무도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죠. 그는 대체 어디서 종이를 구했을까요. 생각해보세요. 그는 텐트에서 지냈습니다. 하루에 두어 번 찾아오는 몽구스가 있었다고 해요. 정글에 있는 공터에 텐트가 여러 채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영화도, 라디오도, 도서관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정글 속 작은 공터에 있었고, 지루함을 잊기 위해서 글을 썼습니다.

몸이 나았을 때, 회복했을 때, 그는 어느 추락한 비행기의 조종사를 찾아내어 그의 인식표를 가져오는 임무에 자원했습니다. 조종사가 죽었다는 건 이미 알았지만, 그의 인식표를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의 가족은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영영 모르겠죠. 그래서 그와 다른 군인 둘이 정글을 뚫고, 칼로 앞을 헤치면서, 그 나름대로 모험에 나섰습니다. 아무튼 그는 할 일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소설을 썼고, 동료의 인식표를 찾아오는 일도 했고요.

 

질문: 그가 당신을 글쓰기에 참여시켰습니까?

답변: 아니요. 딱 한 번 예외는 있었습니다. 그가 [아우구스투스]의 결말을 가지고 아래층으로 내려왔죠. 저는 대번에 파악하고 말했습니다. 너무 길게 썼다고. 더 일찍 끝냈어야 했다고. 하지만 내가 그의 글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던 건 그때가 유일했습니다.

 

질문: 그는 당신의 조언을 따랐습니까?

답변: , 따랐습니다.

 

질문: 그는 매일 썼습니까?

답변: , 쓸 수 있을 때는. 하지만 여름에만 썼습니다. 다른 때는 학생들을 가르쳤죠. 그는 극도로 체계적인 방식으로 썼습니다. 모든 것을 세심하게 얼개를 짜두는 데 대단히 공들였습니다. 왜냐하면 한 줄도 다시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아침 일찍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곱 시 반이나 여덟 시쯤. 그 전에 커피를 좀 마시기도 했고요. 아침은 안 먹었습니다. 커피를 마신 뒤 위층 작업실로 올라갔죠. 그러고는 점심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밖을 보면 그가 텃밭에 있곤 했죠. 그는 농부였고, 텃밭의 채소를 돌봤습니다. 텃밭을 사랑했어요. 그 모습을 보면 나는 생각했죠. , 저이가 글이 막혀서 잠시 쉬는구나. 그는 잠시 그러다가 다시 올라가서 글을 썼습니다. 그다음 점심을 먹으러 내려왔죠. 우리는 자주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다음 그는 우편물을 확인하거나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려고 학교에 갔습니다. 오후에는 두세 시간쯤 다시 작업실로 올라가서 이튿날 할 일을 계획했습니다. 자리에 앉았을 때 무엇을 써야 할지 확실히 알고 있기 위해서.

 

질문: 1973년에 그는 [아우구스투스]로 전미도서상을 받았습니다. 존 바스와 공동 수상이었고, 상금도 나눠 가졌죠. 애초에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요. “상관없습니다. 내 글로 돈을 벌 거라고는 한 번도 기대한 적 없으니까.” 그런 태도는 어디서 왔나요? 듣기로 그는 또 자신에게 독자가 천 명이 있든 십만 명이 있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고요.

답변: 그는 철두철미하게 독립적이고 의지가 굳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그날 하루를 어떻게 살겠다 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글을 남들이 인정하는가 마는가에 대한 불안 같은 건 없었습니다.

 

질문: 존은 인류를, 이성의 힘을 신뢰했습니까?

답변: 내 생각에 그는 그런 질문에는 흥미가 없었을 겁니다. 그는 추상에는 흥미가 없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다루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학생들에게 20세기 시를 가르치던 걸 떠올리면서 하는 말인데요. 그는 그 자체를 사랑했습니다. 시를 사랑했습니다. 아마 시인들도 사랑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무슨 근사한 철학적 의미로 바꿔놓는 것에는 흥미가 없었습니다. 전혀.

 

질문: 그렇지만 [스토너]뿐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에는 이 질문이 깔려 있죠.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답변: , 그렇습니다. 하지만 좋은 삶이란 직접적인 것입니다. 좋은 삶이란 어떤 철학적 영역에 있는 게 아닙니다. 좋은 삶이란 당신과 내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질문: 그는 사실상 모든 작품을, 대표작인 두꺼운 세 소설을 1960년에서 1972년 사이에 썼습니다. 냉전, 쿠바 위기, 베트남 전쟁, 블랙 팬더 운동의 시기였죠. 그는 작가에게 정치적 혹은 사회적 기능이 있다고 여겼습니까?

답변: 아니요. 아닙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개인적인 일이었습니다. 자기 글에 직접적인 정치적 의무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우구스투스]에는 그런 면이 좀 들어갔죠. 전쟁이라는 문제를 다루다보니 우리 세상을, 현실을 기록하거나 최소한 그와 어느 정도 연관된 세계를 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토너]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직접적 의무라면, 가령 텔레비전에 나가서 발언한다거나 하는 것이라면, 아니요, 그런 건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질문: [아우구스투스]에 대충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남을 판단하기는 너무 쉽고, 자신의 지식을 늘리기는 너무 어렵다.’

답변: 그건 존 자신의 생각입니다. 그는 남을 쉽게 판단하는 것이 사람이 저지르는 가장 나쁜 짓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질문: 그때가 1972년이었죠. 13년 뒤인 1985년에 그는 대학에서 은퇴했습니다. 1972년 이후의 글쓰기는 어땠습니까?

답변: 그는 상태가 나빴습니다. 아주 나빴습니다. [아우구스투스]를 쓴 뒤에는 에너지가 없었습니다. 또 다른 소설, [이성의 잠(Sleep of Reason)]을 쓰기 시작했죠. , 멋진 글인데요.

 

질문: 상태가 나빴다는 게, 폐질환을 말하는 겁니까 술 말입니까?

답변: 둘 다입니다.

 

질문: 그가 알코올 중독에 빠진 계기가 있었습니까?

답변: 아니요. 그는 텍사스 출신입니다. 자연히 술 마시는 것을 아주 어른스럽고 세련된 일로 보았죠. 고등학교 때부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한테 그렇게 말한 적 있습니다.

 

질문: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음주가 통제 불능이 되지 않았습니까?

답변: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술에 의존했던 건 맞습니다. 그는 매일 마셨습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서 함구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기분이 안 좋아지곤 했지만, 한 번도늘 이튿날 잘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매일. 주로 가르치는 일을.

 

질문: 그 문제가 그의 자긍심에 영향을 미쳤습니까?

답변: 아니요. 그는 자아가 아주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도 그의 자긍심을 해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그를 괴롭히는 악마가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가 맥주를 마시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나는 그의 악몽을 보았고, 전쟁에서 가져온 슬픔을 보았고, 말라리아도 보았으니까요. 그 모든 것을 보았고, 그래서 그가 술을 마실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질문: [스토너]에서 그는 자아를 정글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자아 속에서 사는 것은 꼭 추방 당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답변: 맞습니다. 우리가 가진 건 그게 전부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자아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말은 존이 생각했던 방식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아를 정글이라고 본 것. 헤쳐 나올 수 없는 것, 숨 막히는 것, 뜨거운 것, 야생의 것. 그는 정글을 잘 알았죠. 마음은 정글입니다. 그의 경험상, 그것은 특별한 장소가 못 되었습니다.

 

질문: 그는 [스토너]에게 어떤 모토를 달아주길 원했습니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했던 말인데요. 결국에는 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만, 대충 이런 말이었습니다. ‘영웅이란 자기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이 말이 존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였을까요?

답변: 정말 핵심을 잘 파악한 말 아닌가요?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고자 하는 길에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우리의 환경이 그렇죠. 존의 경우에는 가난이 장애물이습니다. 그 점에서 존은 내가 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성공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까요. 물론 삼십 대가 되어서야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틀림없이 썼습니다. 그러니 그는 내가 생각하는 한 자기 자신이 되는 데 가장 근접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 어떤 희생도 기꺼이 치르고 어떤 과제도 기꺼이 맞설 의향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냥 계속 해나갔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데는 흥미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혹은, 소설로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말은,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데는 흥미가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그는 재치 있는 말을 잘했고, 웃기기도 잘했고, 늘 무슨 일이든 했습니다. 자기가 기른 오이를 절여서 피클을 만든다거나. 아주 활동적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하기 싫어 했던 일은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질문: 그는 모순이 많은 사람이었습니까?

답변: 아니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일관된 사람이었습니다. 한결같았습니다. 모순적이지 않았고, 자기 자신을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주 즐겁군요. 내가 그를 제대로 말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좋은, 좋은 사람.

번역한 책 2005-2019

그동안 번역한 책 목록. 출간된 것만. 생각해보니 앞으로 또 100권을 추가했을 때는 예순을 바라보거나 넘긴 나이일 것이다. 그때까지 일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그런 날이 온다면 말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이 100권이 더 소중한 것 같기도 하고 인생과 더불어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니다. 사실 별 느낌은 없다. 그래도 그냥 적어둔다.

  1. 마음이 태어나는 곳 (개리 마커스 / 해나무 / 2005)
  2. 일렉트릭 유니버스 (데이비드 보더니스 / 생각의나무 / 2005)
  3. 세계를 삼킨 숫자 이야기 (I. 버나드 코헨 / 생각의나무 / 2005)
    rev. 수의 승리 (I. 버나드 코헨 / 생각의나무 / 2010)
  4. 도시, 인류 최후의 고향 (존 리더 / 지호 / 2006)
  5. 시크릿 하우스 (데이비드 보더니스 / 생각의나무 / 2006)
    rev. 시크릿 하우스 (데이비드 보더니스 / 웅진지식하우스 / 2014)
  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열 가지 (로버트 P. 크리스 / 지호 / 2006)
  7. 불편한 진실 (앨 고어 / 좋은생각 / 2006)
  8. 특이점이 온다 (레이 커즈와일 / 김영사 / 2007, 공역)
  9. 버자이너 문화사 (옐토 드렌스 / 동아시아 / 2007)
    rev. 마이 버자이너 (옐토 드렌스 / 동아시아 / 2017)
  10. 갈릴레오의 아이들 (어슐러 르 귄 외 / 시공사 / 2007, 공역)
  11. 마법 수학 (아서 벤저민 / 민음in / 2008)
  12. 이보디보 (션 B. 캐럴 / 지호 / 2007)
  13. 바이러스 도시 (스티븐 존슨 / 김영사 / 2008)
    rev. 감염 지도 (스티븐 존슨 / 김영사 / 2008)
  14. 양자 세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케네스 W. 포드 / 바다출판사 / 2008)
    rev. 케네스 포드의 양자 물리학 강의 (케네스 W. 포드 / 바다출판사 / 2018)
  15.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A. J. 제이콥스 / 김영사 / 2007, 공역)
  16. 지식의 책 (내셔널지오그래픽 / 북로드 / 2008, 공역)
  17. 위대한 발명 이야기 (애나 클레이본 외 / 시공주니어 / 2008)
  18. 맛있는 정크 푸드, 왜 몸에 나쁠까요? (케이트 나이턴 외 / 시공주니어 / 2008)
  19. 병들어 가는 지구, 어떻게 살릴까요? (수전 메러디스 외 / 시공주니어 / 2008)
  20. 다중인격의 심리학 (리타 카터 / 교양인 / 2008)
  21. 월드체인징 (알렉스 스테픈 외 / 바다 / 2009, 공역)
  22. 갈릴레오 (마이클 화이트 / 사이언스북스 / 2009)
  23. 놀라운 인체백과 (데이비드 맥컬레이 / 을파소 / 2009)
    rev. 놀라운 인체의 원리 (데이비드 맥컬레이 / 크래들 / 2018)
  24. 내 안의 물고기 (닐 슈빈 / 김영사 / 2009)
  25.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제임스 왓슨 / 이레 / 2009)
    rev.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제임스 왓슨 / 반니 / 2017)
  26. 인체 (스티브 파커 외 / 사이언스북스 / 2009, 공역)
  27. 식품 진단서 (조 슈워츠 / 바다출판사 / 2009)
    rev. 똑똑한 식품책 (조 슈워츠 / 바다출판사 / 2016)
  28. 지상 최대의 쇼 (리처드 도킨스 / 김영사 / 2009)
  29. 북극곰의 집이 녹고 있어요! (로버트 웰스 / 시공주니어 / 2010)
  30.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 문학동네 / 2010)
  31. 우리가 사는 지구, 왜 특별할까요? (로버트 웰스 / 시공주니어 / 2010)
  32. 물리와 함께하는 50일 (조앤 베이커 / 북로드 / 2010)
  33. 버스트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 동아시아 / 2010)
  34. 황금분할 (스콧 올슨 / 시스테마 / 2010)
  35. 마야력과 고대의 역법 (제프 스트레이 / 시스테마 / 2010)
  36. 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 1, 2 (존 엠슬리 / 사이언스북스 / 2010)
  37. 밈 (수전 블랙모더 / 바다출판사 / 2010)
  38. 자연자본주의 (에이머리 로빈스 외 / 공존 / 2010)
  39. 프랜시스 크릭 (매트 리들리 / 을유문화사 / 2011)
  40. 몸에 갇힌 사람들 (수지 오바크 / 창비 / 2011)
  41. 코끼리에게 태양이 왜 필요할까요? (로버트 웰스 / 시공주니어 / 2011)
  42. 신기한 수학 나라의 알렉스 (알렉스 벨로스 / 까치글방 / 2011)
  43. 지울 수 없는 흔적 (제리 코인 / 을유문화사 / 2011)
  44. 여덟 마리 새끼 돼지 (스티븐 제이 굴드 / 현암사 / 2012)
  45.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리처드 도킨스 / 김영사 / 2012)
  46. 블러디 머더 (줄리안 시먼스 / 을유문화사 / 2012)
  47. 다시 만들어진 신 (스튜어트 카우프먼 / 사이언스북스 / 2012)
  48. 3분 아인슈타인 (폴 파슨즈 / 열린책들 / 2012)
  49. 인체 완전판 (앨리스 로버츠 외 / 사이언스북스 / 2012, 공역)
    rev. 인체 완전판 개정2판 (앨리스 로버츠 외 / 사이언스북스 / 2017, 공역)
  50. 새로운 무의식 (레너드 믈로디노프 / 까치글방 / 2013)
  51. 우리 몸 (린다 칼라브레시 / 여원미디어 / 2013)
  52. 발명 (글렌 머피 / 여원미디어 / 2013)
  53.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진화 (제이 호슬러 외 / 궁리 / 2013)
  54. 쉽게 쓴 후성유전학 (리처드 C. 프랜시스 / 시공사 / 2013)
  55. 포크를 생각하다 (비 윌슨 / 까치글방 / 2013)
  56.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앨런 프랜시스 / 사이언스북스 / 2014)
  57. 아주 작은 친구들 (니콜라 데이비스 외 / 시공주니어 / 2014)
  58. 가지 – 형태학 3부작 (필립 볼 / 사이언스북스 / 2014)
  59. 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 (새뮤얼 C. 플러먼 / 유유 / 2014)
  60. 하늘을 나는 어린 왕자 (피터 시스 / 시공주니어 / 2014)
  61. 생명의 나무 (피터 시스 / 시공주니어 / 2014)
  62.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 사이언스북스 / 2014)
  63.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데이비드 실즈 / 책세상 / 2014)
  64. 젊은 과학도에게 보내는 편지 (에드워드 O. 윌슨 / 쌤앤파커스 / 2014)
  65. 지구에 생명이 태어났어요 (캐서린 바 외 / 시공주니어 / 2015)
  66.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 창비 / 2015)
  67. 문버드 (필립 후즈 / 돌베개 / 2015)
  68. 소름 (로스 맥도날드 / 엘릭시르 / 2015)
  69. 생명 그 자체 (프랜시스 크릭 / 김영사 / 2015)
  70. 미래의 건축 100 (마크 쿠시너 / 문학동네 / 2015)
  71.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 (필립 후즈 / 돌베개 / 2015)
  72. 아인슈타인이 말합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에이도스 / 2015)
  73. 생명에서 생명으로 (베른트 하인리히 / 궁리 / 2015)
  74. 지도 위의 인문학 (사이먼 가필드 / 다산북스 / 2015)
  75.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창비 / 2016)
  76. 틀리지 않는 법 (조던 엘렌버그 / 열린책들 / 2016)
  77. 고맙습니다 (올리버 색스 / 알마 / 2016)
  78. 암흑 물질과 공룡 (리사 랜들 / 사이언스북스 / 2016)
  79. 지구의 속삭임 (칼 세이건 외 / 사이언스북스 / 2016)
  80. 프랭크 아인슈타인과 반물질 모터 (존 셰스카 / 해나무 / 2016)
  81. 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 열린책들 / 2016)
  82.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2 (리처드 도킨스 / 김영사 / 2016)
  83. 칼 세이건의 말 (칼 세이건 / 마음산책 / 2016)
  84. 젭토스페이스 (잔 프란체스코 주디체 / 휴머니스트 / 2017)
  85. 로재나 –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셰발 & 발뢰 / 엘릭시르 / 2017)
  86.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 마르틴 베크 시리즈 2 (셰발 & 발뢰 / 엘릭시르 / 2017)
  87. 휴먼 에이지 (다이앤 애커먼 / 문학동네 / 2017)
  88. 멧돼지를 통째로 삼키는 법 (스티브 젠킨스 외 / 시공주니어 / 2017)
  89. 사라지는 동물 친구들 (이자벨라 버넬 / 그림책공작소 / 2017)
  90.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 창비 / 2017)
  91. 땅속 세상 물속 세상 (알렉산드라 미지엘린스카 외 / 길벗어린이 / 2017)
  92. 발코니에 선 남자 – 마르틴 베크 시리즈 3 (셰발 & 발뢰 / 엘릭시르 / 2017)
  93. 웃는 경관 – 마르틴 베크 시리즈 4 (셰발 & 발뢰 / 엘릭시르 / 2017)
  94. 일곱 원소 이야기 (에릭 셰리 / 궁리 / 2018)
  95.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DFW / 바다출판사 / 2018)
  96. 사라진 소방차 – 마르틴 베크 시리즈 5 (셰발 & 발뢰 / 엘릭시르 / 2018)
  97.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리베카 솔닛 / 창비 / 2018)
  98. 비커밍 (미셸 오바마 / 웅진 / 2018)
  99. 길 잃기 안내서 (리베카 솔닛 / 반비 / 2018)
  100. 경험 수집가의 여행 (앤드루 솔로몬 / 열린책들 / 2019)

 

100

앤드루 솔로몬의 ‘Far and Away’가 ‘경험 수집가의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내가 번역한 100번째 책이다. (출간된 것만 헤아려서.) 100번째 책이 앤드루 솔로몬의 책이라 기쁘다. 이 사실에 담긴 – 100번째 책이라는 사실, 앤드루 솔로몬의 책이라는 사실 둘 다 – 크나큰 행운과 내 약간의 집요함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와 세상 사이에 서리 끼어 뿌연 유리창이 가로놓인 것 같은 나날, 내가 나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이 납추처럼 발목에 매달려 나를 끌어내리는 것 같은 나날이지만 오슬오슬한 마음의 추위도 언젠가는 좀 걷힐 날이 있으리라고 –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