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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0 작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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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걸 왜 쓰나요?

 

저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출판 번역가입니다. 번역을 전업으로 한 지는 만 13년이 되어갑니다. 그 전에는 두 군데 직장에서 칠 년을 일했습니다. 둘 다 매일 출퇴근하여 여덟 시간씩 일하는 사무직이었습니다. 두 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 후 저녁과 주말에 번역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약 이 년간 여섯 권을 번역했지만, 두 일을 병행하기 어려워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이후 전업으로 110권의 책을 번역했습니다.

프리랜서가 된 뒤에는 줄곧 집에서 일했습니다. 집 밖에서 작업 공간을 얻어 일한 적이 딱 한 번 두 달 정도 있었지만, 타인과 공유하는 공간에서 일하는 것이 제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이후에는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혼자 쓰는 작업실은 비용 부담이 커서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집이 갑갑하면 카페에 나가서 일하지만, 그건 일이라기보다는 기분 전환 활동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 삽니다. 즉, 저는 침대에서 일어난 뒤 책상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13년 해왔습니다.

지금 소개하는 40+20 작업법은 제가 집에서 일하면서 쓰기 시작한 방법입니다. 전에는 회사를 다녔기에 스스로 일과를 100% 편성할 여지도 필요도 없었지만, 출퇴근도 동료도 없이 혼자 집에서 일하려니 스스로 규율을 정하고 지켜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처음 40+20 작업법을 궁리한 것은 ‘매일 일하는 시간을 확보하자’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회사 다닐 때 매일 여덟 시간 일했으니, 번역이 직업인 한 이 일도 매일 여덟 시간 하기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출판 번역은 여느 회사 일에 비해 리듬이 느립니다. 보통 월 단위로 마감이 있고, 매일 참석해야 할 회의 같은 것은 없고, 전화 통화처럼 실시간 처리해야 할 업무도 드뭅니다. 저는 물론 바로 그 이유에서 이 직업을 택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구속을 두고 일하지 않으면 여유만만하다는 생각에서 게으름을 부리다가 마감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하루 여덟 시간 작업법’이 아니라 ‘40+20 작업법’이 된 것은, 하루의 업무 일과 중에 휴식 시간을 편성해두지 않으면 금세 몸이 축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이라도 회사에서는 회의하러 가고, 동료와 커피 마시고, 옆 팀에 가고, 하여간 움직일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일할 때는, 원한다면, 여덟 시간 논스톱으로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곧 몸이 아픕니다. 허리 디스크와 목 디스크를 얻게 됩니다. 저는 척추관 협착증으로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습니다. 어깨도 아팠습니다. 밤에 자다가 통증 때문에 깰 정도였으니, 회사 다닐 때나 지금보다 훨씬 상태가 나빴습니다. 40+20 작업법은, 그래서, 일이 아무리 잘되더라도 간간이 잠시 일어나서 쉬지 않으면 난 머지않아 더는 책상에 앉지도 못하게 되겠구나 하는 위기감의 소산이었습니다. 닥친 일을 최대한 빨리 해내어 프리랜서로서 클라이언트의 신뢰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다 병을 키워서 아예 일을 못 하게 되면 그것도 안 된다는 생각. 한편으로는 거꾸로, 만성적으로 몸이 아파도 부득이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쉬엄쉬엄 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처음엔 집중 시간을 확보하려고 쓰기 시작했던 40+20 작업법은 곧 휴식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습니다.

서두가 길지요. 이 작업법이 제 사정에 맞춘 것임을 강조하고 싶어서, 굳이 배경을 시시콜콜 적었습니다. 프리랜서라도 출퇴근하는 분, 동료와 일하는 분, 도저히 40분 단위로 끊을 수 없는 작업을 하는 분, 아예 책상에 앉지 않는 분 등등 저와 사정이 다른 분에게는 이 방법이 무소용하고 무의미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꼭 쓸 것도 없잖아 싶기도 합니다만, 트위터에서 이 방법을 소개했을 때 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이셨던 게 동기입니다. 제 어떤 사정이 이 방법을 유용한 것으로 만들었는지 더 구체적으로 밝힌다면, 이 방법을 쓸 필요가 없는 분이든 한번 시도해보면 좋을 분이든 각자의 판단을 더 정확히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 서두에 비해 본론은 “애걔” 싶게 짧을 것입니다.

참, 저는 40+20의 한 주기를 ‘사이클’이라고 불렀지만, 어느 트친께서 그걸 ‘KMN’이라는 단위로 명명해주셨습니다. 그냥 ‘사이클’보다는 고유의 기호가 낫겠기에 쑥스럽지만 그걸 쓰겠습니다.

 

2. 40+20 작업법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1) 하루에 몇 KMN을 하겠다고 정한다(예: 8KMN)
2) 쪽지에 그 횟수만큼 숫자를 쓴다(예: ➀➁➂➃➄➅➆➇).
3) 몇 시든 좋으니 정각에 자리에 앉는다(예: 오전 10시).
4) 40분 후 알려주도록 설정된 타이머를 켠다.
5) 40분간 집중해서 작업한다.
6) 타이머가 울리면 무조건 일어난 뒤, 1KMN을 했다고 표시한다(예: ➊➁➂➃➄➅➆➇).
7) 20분 쉬면서 다른 일을 한다.
8) 다시 정각이 되면(예: 오전 11시) 무조건 자리에 앉는다.
9) 4)~8)을 목표 횟수만큼 반복한다(예: ➊➋➌➍➎➏➐➑).
10) 하루 일을 마감한다(예: 오후 6시).

 

3. 40+20 작업법에서 기억할 점

 

1) 일할 때 집중합니다.
2) 쉴 때 긴장을 풉니다.
3) 일할 때 다른 문제를 걱정하지 마세요.
4) 쉴 때 일을 걱정하지 마세요.
5) 가급적 정각에 시작하세요.
6) 앱에 의존하지 마세요.
7) 하루에 10KMN 이상 하지 마세요.

1) 일할 때 집중하기: 40분 동안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저는 전화가 와도 안 받고, 문자도 답신하지 않고,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기는 어렵더라도, 최대한 일만 하세요. 마지막 십 분은 머리가 안 돌아가도, 애초에 집중이 안 되어서 일어나고 싶어도, 그런 마음을 이겨보세요. 집중은 자리에 앉는다고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죠. 몸과 마음이 집중하는 데 길들도록, 한동안은 집중에 집중해야 합니다. 가령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앉았을 때 같은 상황에서는 이전보다 집중하기가 훨씬 어렵죠. 그래도 애써야 합니다.

2) 쉴 때 긴장 풀기: 20분 동안은 가급적 책상에서 멀어지세요. 한 자세로 40분 앉아 있느라 굳은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어주세요. 혹은 집안일을 하거나, 문자를 확인하거나,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세요. 중요한 건 반드시 휴식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일이 잘될수록 타이머가 울렸을 때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리듬 탔을 때 더 해야 하는데’ ‘쉬다가 다시 앉았을 때 갑자기 안 되면 어떡해’ 하는 걱정이 들죠. 그래도 쉬어야 합니다.

3) 일할 때 다른 문제를 걱정하지 말 것: 일할 때 문자나 메일이 오면 그걸 당장 보고 답해야 할 것 같죠. 하지만 세상에 겨우 몇십 분을 미룬다고 해서 큰일 날 일은 거의 없습니다. ‘도서관에 대출 연장하는 걸 깜박했네’ 하는 생각이 들면, 그걸 또 잊기 전에 당장 처리해야 할 것 같죠. 그럴 땐 옆에 둔 종이에 ‘도서관 대출 연장’이라고 메모하고 넘어가세요. 메모한 순간 머릿속에서는 비워질 테고, 그 일 자체는 쉬는 시간에 하면 됩니다. 다른 문제에 대한 생각이나 활동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집중이 되기 어렵습니다.

4) 쉴 때 일을 걱정하지 말 것: 어렵사리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더라도 머릿속에 일 생각이 가득할 때가 있죠. ‘아까 그 문장에서는 “자칫”이 아니라 “하마터면”을 쓰는 게 옳을 것 같아’ ‘이런 사례도 끼워 넣으면 더 좋은 글이 될 것 같아’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그래도 휴식 시간 중에 도로 앉지는 마세요. 떠오른 아이디어를 잊을 게 영 걱정되면, 차라리 20분간 스트레칭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그 아이디어를 계속 굴리세요. 번득 무슨 생각이 들었다고 매번 도로 앉아버리면 영영 못 쉽니다. 당장 쏟아내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쏟아낸 작업이 나중에 만족스러운 경우도 드뭅니다. 오히려 뭘 빼먹기 쉽습니다. 휴식도 애써야 합니다. 일을 했다 말았다 덜컹덜컹하는 게 아니라 고삐를 바투 쥐었다 슬쩍 풀었다 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5) 가급적 정각에 시작할 것: 물론 굳이 40+20이 아니라도 됩니다. 하지만 40+20으로 설정하는 것의 장점이 있습니다. 그 전에 우선, 40+20이나 50+10처럼 한 시간 단위로 주기를 설정하지 않고 가령 35+5이나 60+20으로 설정한다면, 시간을 계산하기가 좀 복잡해집니다. 한 시간 단위에서는 타이머가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40분짜리 타이머로 일어날 시각만 알면 될 뿐, 20분 휴식이 끝난 걸 알려주는 타이머는 없어도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아느냐고요? 감으로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집이든 시계가 곳곳에 있죠. 일어나서 다른 활동을 하다가 ‘슬슬 20분이 끝나갈 텐데’ 싶은 시점에 시계를 보세요. 그러면 아마 몇 분 남았거나 넘었을 거예요. 그때 앉을 준비를 하거나 바로 앉으면 됩니다. 정각에 시작하는 게 좋은 이유도 이것입니다. 정각이 아니라 가령 10시 30분에 시작해서 오후 6시 30분에 끝내도 되지만, 시계를 봤을 때 ‘정각이 되어가네’ 하고 깨닫는 편이 ‘45분이 되어가네, 근데 몇 분에 앉기로 했더라?’ 하고 생각하는 편보다 인지가 빠르고, 따라서 신경 쓸 일이 줍니다.

6) 앱에 의존하지 말 것: 위의 5)와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주기를 한 시간 단위로 설정하지 않거나 정각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추가로 인지하고 기억할 요소가 발생합니다. 혹은, 타이머가 하나 이상 필요합니다. 일어날 때를 알려주는 타이머와 앉을 때를 알려주는 타이머가 다 필요하죠. ‘포모도로’ 앱 같은 생산성 관리 도구가 필요한 게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일 좋은 방법은 아예 어떤 앱에도, 어떤 수단에도 꼭 필요한 것 이상은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기 작업에서는 가령 ‘포레스트’ 앱처럼 동기 부여를 통해 집중력을 키워주는 수단이 도움이 될 테지만, 장기적으로는? 아니요, 아닙니다. 집중하려고 도구를 쓰는 것인데, 그 도구가 조금이라도 번거로워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의 조작, 최소한의 인지적 부담이 좋습니다. 그냥 소리로 알려주는 타이머 하나만 써도 어떤 땐 얼마나 번거로운지 모릅니다. 게다가 타이머 소리를 못 듣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너무 집중해서 못 듣기도 하고, 소리를 듣긴 했지만 ‘오 분만 더 하고 일어나자’ 하다가 이내 잊기도 합니다. 그러니 ‘소리를 들으면 무조건 일어난다’ 이상으로 복잡한 인지나 조작을 요구하는 수단은 장기적으로 본말 전도가 되기 쉽습니다. 일단 리듬이 몸에 익으면, 타이머 하나만으로 작업해도 어렵지 않습니다.

7) 하루에 10KMN 이상 하지 말 것: 하루에 8KMN을 하면 실질 업무 시간은 5시간 20분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하루 8시간 근무하는 회사원의 실질 업무 시간은 보통 이보다 더 짧을 겁니다. 20분의 휴식도 일한 시간으로 헤아리세요. 이 작업법은 하루의 업무를 잘 계획하기 위한 방법인 동시에 그보다 더 장기적으로 한 달, 일 년, 십 년, 평생의 업무를 계획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 12KMN을 하면 내일은 4KMN밖에 못 하기 쉽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보다는 오늘 8KMN을 하고 내일도 8KMN을 하는 식으로 고르게 가는 편이 총 시간은 같더라도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리듬입니다. 집중력도 체력이고, 체력은 화수분이 아니니까요.

 

4. 40+20 작업법은 어떨 때 특히 유용한가요?

 

1)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때
2) 몸이나 마음이 아플 때
3) 일이 너무 지루할 때
4) 일의 진척이 더뎌서 조바심 날 때
5) 일의 진척이 빨라서 성급해질 때
6) 작업량을 기록하고 싶을 때
7) 가사 노동과 병행할 때

 

1)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때: 쓸 수 있는 시간이 적을수록 마음이 조급해져서 결국 그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쉽습니다. 그럴 때 이 방법을 쓰세요. 가령, 오후 1시에 점심 약속이 있어서 12시에 나가야 하는데 오전에 두 시간만 일하고 싶다고 하죠. 계획이 없다면, 십 분도 맘 편히 앉아 있기 어렵습니다. ‘선크림을 언제 바르지?’ ‘11시 30분에 일어나면 되겠지?’ ‘아직 여유 있나?’ 하고 끊임없이 조바심하며 시계를 보게 됩니다. 이때, ‘오전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딱 2KMN만 하자’ 하고 생각합시다. 그러면 최소한 80분은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은 11시 30분이 아니라 11시 10분에 일어나게 되지요. 따라서 외출을 준비할 시간이 넉넉하고, 일하는 동안에는 외출 준비에 대한 잡념을 떨칠 수 있고, 약속에도 늦지 않습니다.

2) 몸이나 마음이 아플 때: 몸이나 마음이 아파서 쉬고 싶지만 사정상 그럴 수 없을 때, 저는 ‘오늘 하루는 딱 4KMN만 하자’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을 수 있고, 일을 적게 해도 죄책감이 덜 듭니다. 어떻게 해서든 4KMN을 하는 것 자체가 애쓴 일이란 걸 저는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요. 사담이지만, 제가 우울증 때문에 엄청 무기력했던 시기가 몇 차례 있었어요. 아침에 침대에서 도저히 일어나질 못해서 하루에 16시간씩 울면서 누워만 있었죠. 그때도 매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딱 2KMN만 하자, 일은 전혀 못 해도 괜찮아, 그저 2KMN만 하면 돼.’ 그러다가 그 시간이 길어지고, 어느새 일이 되고, 그러면서 나아지더군요. 하루 종일 책상에 붙어 있으면서도 일을 거의 못 하는 것보다는 2KMN이라도 내가 쏟는 시간을 의식해서 앉아 있는 편이 집중력 회복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전자는 ‘내가 그래도 책상에 종일 붙어 있었잖아’ 하는 자기 변명을 낳지만, 후자는 ‘내가 오늘은 겨우 2KMN을 했지만 내일은 3KMN을 할 거고, 어차피 오늘은 이 정도밖에 못 하는 날이었어’ 하는 건강한 자기 위안을 줍니다.

3) 일이 너무 지루할 때: 집중이 문제가 아니라 일이 너무 지루해서 자꾸 일어나고 싶을 때, 혹은 머릿속이 너무 과열되어 터질 것 같을 때, 이때야말로 20분 휴식의 진가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40분 일하고 나면 ‘더는 못 해먹겠다, 오늘은 이만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그래도 아무튼 정해진 대로 일단 쉬면서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비우면 놀랍게도 20분이 흐른 뒤에는 ‘1KMN 정도는 꾸역꾸역 더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휴식이 너무 짧으면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하지만 20분은 충분히 깁니다.

4) 일의 진척이 더뎌서 조바심 날 때: 이것은 2)와 좀 비슷한 상황입니다. 일이 더뎌서 미칠 것 같아도 안달복달하며 앉아만 있는다고 해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 혐오만 깊어지죠. 휴식이 사치가 아닌가 싶어도, 이런 때일수록 이 작업법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8KMN을 했구나. 여전히 진척이 더뎌서 일이 밀렸지만, 아무튼 나는 오늘 할일을 마쳤어. 이 이상은 능력 밖이야. 애초에 내가 소요 시간이나 난이도를 오판한 것이니까, 오늘 쉬지 않고 집착한다고 해서 해결할 순 없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꾸준히 하는 것뿐이야.’ 이런 날이 며칠 쌓이면, 그만큼 진도도 나갑니다.

5) 일의 진척이 빨라서 성급해질 때: 가끔은 거꾸로인 때도 있죠. 지금 제가 이 글을 쓰면서 그렇습니다. ‘40+20 작업법을 설명하는 글은 4KMN이면 쓰겠지?’ 저는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쓸 말이 쉼 없이 떠올라서 쉬고 싶지 않았고, 안 쉬어도 될 것 같았고, 쉬지 않는다면 3KMN 만에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리 없죠. 어쨌든 쉬면서 생각해보니, 빠뜨린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아니요, 모든 일은 예상 시간의 두 배가 들기 마련입니다. 저는 지금 4KMN이 아니라 6KMN째 쓰고 있습니다. 애초에 이만큼 소요될 일을 한순간 속도가 난다고 해서 3KMN으로 줄이려고 해봐야 허리만 아픕니다. 속도가 날 때 내처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정말 소요 시간을 줄여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나중에 가서 ‘어차피 이만큼 시간을 쏟을 바에야 쉬엄쉬엄 할걸’ 해봐야 이미 허리는 아픕니다.

6) 작업량을 기록하고 싶을 때: ‘대충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 책상에 붙어 있으면서 이 일을 해냈다’는 것과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 8KMN으로 이 일을 끝냈다’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의 방법으로 가늠한 작업량은 오류가 있기 쉽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방법을 쓰면, 몇 가지 메모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금세 시간별 세부 작업 기록을 얻을 수 있습니다.

7) 가사 노동과 병행할 때: 프리랜서라도 집 밖에서 일하는 분, 집에서 일하더라도 가사 노동을 나눌 동거인이 있거나 해서 혼자 맘대로 해버릴 수는 없는 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항목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집에서 일하는 데다가 가사 노동도 전담하는 분이라면, 이 작업법으로 일과 가사 노동을 얼마간 병행할 수 있습니다. 가사 노동을 저녁으로 미뤄본들 어차피 저녁에 내가 해야 할 뿐이라면, 가능한 한 낮에 짬짬이 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일한 뒤 지친 몸으로는 더 하기 싫을 테니까요. 그리고 20분은 꽤 길어서, 정리 정돈 수준의 가사 노동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깨끗해진 집은 업무 공간이기도 하므로, 휴식과 업무의 질이 둘 다 좋아집니다.

 

부록 1. 20분 쉴 때 뭘 하나요?

 

1) 노래 듣기
2) 스트레칭
3) 맨손 운동
4) 간식 먹기
5) 집안일
6) 전화 통화나 문자나 메신저
7) 책 몇 쪽 읽기

 

1) 노래 듣기: 저는 약 5~10분짜리 곡을 하나 골라서 브라우저의 유튜브 탭이나 플레이어에 늘 열어둡니다. 40분 경과를 알리는 타이머가 울리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곡을 재생합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스트레칭을 하죠. 그러면 휴식 시간의 경과를 가늠하기가 쉽고, 긴장이 잘 풀리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2) 스트레칭: 저는 거실에 늘 요가 매트를 펼쳐둡니다. 그랬다가 휴식 시간이 되면 무조건 그리로 가고 봅니다. 20분 휴식이 늘 반가운 건 아닙니다. 내처 쉴 수 있다면 모를까, 조만간 다시 책상에 앉아야 하는 걸 아니까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칭도 ‘해야 하는 일’이니, 하기 싫을 때가 많습니다. 사실 늘 하기 싫습니다. 스트레칭을 해줘야 몸이 아프지 않고 일도 더 잘된다는 걸 아니까 하려고 애쓸 뿐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몸을 풀까 궁리하는 단계를 아예 없애도록 스트레칭에도 루틴이 있으면 좋습니다. 십 분쯤 이어지는 스트레칭 동작을 정해두면 좋겠죠. 저는 요가를 배운 걸 요긴하게 씁니다. 요가에는 ‘플로우’가 있죠. 한편, 눕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힘들면 자연히 벌렁 눕고 싶지만, 실제로 저는 자주 그러지만, 그냥 누워 있는 건 스트레칭보다 피로를 푸는 데 좋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나기도 너무 어렵습니다.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 건 좋지만, 가급적 안 눕고 눈을 풀어주려고 애씁니다.

3) 맨손 운동: 늘 매트가 펼쳐져 있으면 그 위에서 팔벌려뛰기나 플랭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안 합니다.

4) 간식 먹기: 사과처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걸 서서 먹으면서 창밖도 구경하고 그럽니다.

5) 집안일: 설거지, 방 하나 청소기로 돌리기, 서랍 하나 정리하기, 저녁에 내버릴 재활용품 정리하기, 세탁기 돌리기, 빨래 널기, 빨래 개기, 저녁에 먹을 채소 씻기, 커피 내리기.

6) 전화 통화나 문자나 메신저: 반면 책상에 계속 앉아서 이메일을 쓰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7) 책 몇 쪽 읽기: 일이 머리를 과열시키지 않는 것이라면, 이때 서서 책을 몇 쪽 읽을 수도 있습니다. 쉬는 동안 추리소설을 한 챕터씩 읽으면 정말 감질나고 재밌습니다.

 

부록 2. 40+20 작업법을 매일 어떻게 기록하나요?

 

저는 이 사진과 같이 이면지에 기록합니다. 사생활이 덜 드러난 메모로 골라보았지만 그래도 부끄럽네요. 6월 17일 월요일에는 일이 잘되었는지 10KMN을 했습니다. 6월 19일 수요일에는 8KMN을 하겠다고 계획했지만 4KMN밖에 못 했네요. 빨간 가위표나 줄표는 처리했다는 뜻입니다.

제가 손으로 기록하는 건 이게 편하기 때문입니다. 메모 앱 등도 시도해봤지만, 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메모 또한 작업을 돕는 수단일 뿐이니, 수단 자체에 들이는 품은 가급적 줄여야 좋습니다. 만약에 매일의 작업 시간을 기록했다가 나중에 통계를 내고 싶다면, 그때는 손으로 쓰지 말고 앱이나 스프레드시트를 활용하는 편이 좋겠죠. 하지만 저는 이 메모를 그냥 버립니다. 굳이 ‘발전된’ 생산성 관리 도구를 쓰는 데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손으로 쓰는 것도 기술입니다. 오래되고 검증된 기술입니다. 그보다 더 세련된 기술을 써야 할 필요가 생기면 그때 배우면 됩니다. 제 생각이지만, 수단에 필요 이상 공을 들이면 일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청소기’ ‘택배 받기’ 등 사적인 일정도 적혀 있는 건, 그날 잊지 말고 처리해야 할 집안일이나 여타 활동을 함께 적어두면 역시 머릿속이 한결 정돈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청소기를 어제 돌렸던가?’ ‘오늘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이 있었는데 그게 뭐지?’ 하는 잡념이 사라집니다. 메모 작성이 강박이나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하면 됩니다.

 

부록 3. 장기적으로 작업을 어떻게 기록하나요?

 

이면지에 기록했다가 나중에 버려도 되는 항목, 심지어 버리고 깡그리 잊어야 머릿속이 깨끗해진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항목, 그런 게 아닌 것도 물론 있습니다. 그런 건 따로 작업 노트에 기록합니다. 저는 작업 노트를 이 사진과 같은 방식으로 씁니다. 얼마 전 [미스테리아 24호]에 싣기 위해서 ‘발란데르의 첫 번째 사건’이라는 단편 소설을 번역했을 때의 기록입니다.

‘참고 자료 읽기’ ‘일독’ ‘재독’ ‘타임 테이블 작성’ ‘번역’ ‘퇴고’ ‘메일로 송고’로 단계를 나눠서 적었네요. 번역 중에는 하루에 원서로 몇 쪽(p.)을 옮겼는지도 적었습니다. 퇴고도 하루에 몇 쪽을 했는지 적었습니다. 작업을 다 끝낸 뒤에는 원서가 몇 쪽이었는지, 그걸 번역하니 원고지로는 몇 매였고 A4로는 몇 매였는지도 적었습니다. 이렇게 적어두면, 나중에 또 이와 비슷한 글을 번역하게 되었을 때 이 기록을 바탕으로 소요 시간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일정표 외에도 작업하는 도중에 중간중간 떠올린 생각, 편집자에게 추후 전달할 사항, 옮긴이 후기에 적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 등도 적어둡니다. 필요하다면 매일 몇 KMN씩 했는지도 적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것까진 필요하지 않아서 안 적습니다.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지는 일의 성격마다 다르겠죠. 저는 이런 작업 노트를 12권째 쓰고 있습니다.

 

부록 4. 어떤 타이머를 쓰나요?

 

저는 개를 좋아하는지라, 늑대 짖는 소리로 “아우우우우우 월월월!” 하고 시간을 알려주는 ‘하울러 타이머 Howler Timer’ 앱을 씁니다. 엄청 단순한 타이머라 더 좋습니다. 저는 스크린샷처럼 바탕화면에 늘 이 타이머를 띄워두고, 꼭 일할 때가 아니라도 컴퓨터 앞에 앉으면 무조건 시작 버튼을 누릅니다. 웹서핑이나 인터넷 쇼핑을 하더라도 아무튼 40분 뒤에는 반드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그럴 때는 일할 때보다 훨씬 자주 일어나는 데 실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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