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 –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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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W. 포드 지음, 김명남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양자 이론에 대한 과학자들의 발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자연의 근본 법칙이 확률적이고 불확실한 것임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양자 이론을 생각할 때 머리가 아프지 않다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는 닐스 보어의 말도 인용구로 인기가 좋다. 리처드 파인먼의 말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에 양자 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친 김에 몇 개 더 떠올려 본다. “양자 이론은 성공을 거두면 거둘수록 더욱 어처구니없어 보인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여러분이 관심을 끊어 버리는 걸 막는 게 내 일입니다. 내게 물리 수업을 받는 학생들도 이해를 못합니다. 나부터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겸손이 지나친 파인먼의 말이다. “나는 그것[양자역학]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그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 유감이다.” 에르빈 슈뢰딩거의 말이다. 노벨상 수상자 막스 폰 라우에는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물리를 그만두겠다.” 양자 이론 전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드브로이의 물질파 이론에 대해 했다는 말인데 어쨌든 라우에가 정말 물리를 그만두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째 하나같이 양자 이론을 믿지 못하겠노라, 혹은 이해하지 못하겠노라는 말뿐인데, 이 책의 저자도 한 수 거든다. 저자에 따르면 양자 이론은 ‘기괴한 이론’이다. 관측할 수 없는 물리량을 다루고, 자연의 근본 법칙은 확률적이라고 말하고, 입자가 저 혼자 간섭을 일으킨다고 하고,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얽혀 있다고 말하는 등 상식을 거스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더 알 수 없어지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제 손으로 양자 이론을 발전시켰던 과학자들조차 흔쾌히 이론(에 대한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현재의 과학자들이 이보다 더 깊은 차원의 근본 이론이 존재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다 그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양자 이론은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결정적 이론이다. 상대성이론이 ‘아주 빠른 것의 세계’에 적용되는 이론이라면, 양자 이론은 ‘아주 작은 것의 세계’에, 구체적으로 말해서 원자의 세계에 적용된다. 원자 속을 탐험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뉴턴의 고전역학을 접고 양자역학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전자를 활용한 전자 기기와 양자 중첩 및 얽힘 현상을 활용한 양자 컴퓨터의 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양자 이론을 여전히 신기하게 느낄 수는 있을지언정 믿지 않을 수는 없다. 아무리 괴상하게 느껴지더라도 양자 이론이 틀림없이 유효한 이론이라는 사실은 여러분과 내가 살아가는 21세기의 세상이 증명해준다.

***

자, 그러니 우리가 양자 이론을 배워볼 이유는 충분하다. 그리고 양자 이론이 그토록 어려운 것이라고 하니, 우리에게는 좋은 선생님이 필요하다. 물론 좋은 선생님도 가지가지다. 농담으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특기인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요점 정리가 뛰어난 선생님도, 최신 이론에 해박한 선생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지은이 케네스 포드는 어떨까?

포드는 한 마디로 정석적인 선생님이다. 다른 대개의 책들은 양자 이론을 그 발전 과정을 따라 연대순으로 서술한다. 보어와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에서 시작하여 플랑크의 양자, 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거쳐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 코펜하겐 해석을 나열하는 식이다. 대중 과학서들이 대개 과학사적 접근을 취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쉬운 내용부터 서서히 워밍업하는 편이 덜 부담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자칫 지나간 이론들이 현재의 이론보다 더 깊게 머리에 남는다. 이론의 현재적 의미에 상대적으로 소홀하기도 쉽다. 양자 이론을 소개한 책들이 하나같이 비슷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대신 거두절미하고 아원자 입자들을 중심으로 현재의 양자 세계를 묘사한다. 입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푸는 까닭은 양자 이론은 ‘가장 날랜 것과 가장 작은 것’을 다루는 이론이라서 입자들의 행태에 비추어 볼 때 그 활용과 의미가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양자 세계는 이렇게 생겼다’라고 정면으로 설명해 들어가는 방식이다.

먼저 전자와 중성미자 같은 렙톤들을, 다음으로 쿼크, 힘 운반자들, 양성자나 중성자 같은 합성 입자들을 소개한다(3장, 4장). 그러고서 이들의 행동을 통해 양자 이론의 주요 개념들을 설명한다. ‘양자’란 자연이 알갱이져 있다는 뜻이라는 것(5장), 양자 세계는 확률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6장), 입자들의 특이한 성질 때문에 이 세상에 물리와 화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7장), 입자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몇 가지 보존법칙이라는 것(8장), 입자가 곧 파동이라는 역설을 이해하는 방법(9장)을 말한다. 표준 모형이 아우르는 입자 물리학의 현재를 제시하고, 그 세계관이라 할 수 있는 양자 이론의 역할을 강조하는 셈이다.

이 책은 학생들의 수준을 얕잡아 보지 않는다. 좀 어려운 부분이라고 해서 그냥 외우라고 하는 일이 없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일도 없다. 파인먼 도표(4장)나 TCP 대칭(8장)에 대한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다. 복습 문제까지 딸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은이의 목표는 독자가 ‘양자 이론이 뭔지 대충 알 것도 같아’ 하는 막연한 기분과 만족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양자 이론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교과서에 가까운 책이기는 해도, 양자 이론의 역사적 내러티브와 철학적 의미를 짚어보는 일도 잊지는 않는다. 왜 과학자들은 양자 이론이 확률적 이론이라는 사실에 괴로워할까? 파울리의 배타원리가 왜 ‘물리학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경이로운 연결 고리’일까? 자연의 대칭성은 어째서 당연한 일이 아니라 깜짝 놀랄 만한 속성일까? 이런 질문들을 통해서 우리도 과학자들이 양자 이론에 대해 품는 경이로운 감정을 몸소 느껴 볼 수 있다. 왜 양자 이론이 기괴한 이론인지, 왜 존 휠러 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남은 시간은 양자에 대해 생각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양자가 과학자들을 사로잡는지 말이다.

***

이 책의 번역본 초판은 2008년 출간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십 년 동안 물리학이 이룬 발전 중 이 책에 첨가해야 할 것을 꼽자면, 2008년 가을 가동되기 시작한 유럽 입자물리 연구소(CERN)의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가 2012년 힉스 입자로 추정되는 입자를 확인함으로써 이제 입자 물리학의 표준 모형이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문제점을 여럿 품고는 있지만) 큰 틀에서 실험적으로 확인된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몇 가지 세부적인 점을 제외하고는, 이 책은 딱히 고칠 데 없이 여전히 좋은 양자 이론 교과서다. 과학책을 적잖이 번역해온 나는 간혹 친구들로부터 이런저런 과학적 주제로 괜찮은 책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데, 그때 양자 이론을 알려주는 책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아쉬워 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20세기 원자론과 양자역학의 발전 과정을 역사적으로 서술한 책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초끈 이론 등을 소개하기 위해서 필수 단계로 양자 이론을 소개한 책도 많다. 그러나 오히려 양자 이론의 내용만을 교과서처럼 소개한 책은 퍽 드물다. 상대성이론과 비교해보면 더 그렇다. 그 사정은 지난 십 년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케네스 포드 교수의 이 정석적인 양자 이론 책은 여전히 요긴한 안내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1월
김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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