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ine Knapp – Time Alone

캐럴라인 냅의 유고 에세이집 [명랑한 은둔(The Merry Recluse)]에서 한 편을 더 번역해보았다.

혼자 있는 시간
-고독과 고립의 경계에서 잘 살아가기

***

속삭임은 두 주째, 혹은 세 주째쯤에 시작된다.

처음에는 이렇게 지적한다. ‘너 요즘 혼자 보내는 시간이 엄청 많구나. 안 그래?’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맘 편한 일이야. 그렇지? 보호받는 느낌, 안전한 느낌이 들잖아.’
마지막으로 이렇게 유혹한다. ‘더, 이 편안하고 고독한 상태를 더 이어가자. 바깥 세상은 무섭고 위험이 가득해. 그러니까 그냥 여기 있자. 혼자. 안전한 곳에.’

이것은 고립의 목소리, 설득력 있고 음흉한 목소리다.
나는 이 목소리를 많이 듣는다.

전화가 울린다. 받을까 말까 망설인다. 으,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건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단 말이야. 자동응답기가 받게 내버려두자. 저녁 약속이 일주일 뒤로 다가온다. 마음 한구석에선 가고 싶으면서도, 빠져나갈 계획을 짠다. 어떻게 하지? 아픈 척할까? 느닷없이 집에 손님이 오게 되었다고 할까? 어떻게 빠져나가지?

아무런 사교 활동 계획이 없는 또 한 번의 고독한 밤. 그 전망에 나는 안도감에 막연한 압박감이 섞인 기분으로 마음이 흔들린다. 내가 은둔의 밤을 하루 더 견딜 수 있을까?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약속을 잡아야 하나? 다섯 번 중 네 번은 – 다섯 밤 중 네 밤은 – 고립의 목소리가 이긴다. 집에 머무는 것이 더 쉬우니까. 외롭겠지, 하지만 더 안심된다. 훨씬 더 안심된다.

우리는 고립을 지리와 상황의 결과로 여기곤 한다. 혼자가 된 과부, 남편은 죽고 아이들은 다 자란 여자, 그녀는 고립된 사람이다. 늙고 쇠약한 사람, 아예 물리적으로 바깥 세상에 나갈 수 없는 사람, 그들은 고립된 사람이다. 하지만 고립은 또한 마음의 상태일 수 있고, 실제로 종종 그렇다. 칩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선택을 결정 짓는 상태인 것이다. 마치 심연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나는 고립으로 추락한다. 어둡고 비자발적인 추락은 가속이 붙어, 저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나는 혼자 있기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연속 열 번이나 열다섯 번이나 스무 번쯤 하고 나면, 더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

c26ff321dd425cbbe7cf560e2078c836--cool-stuff-lauren얼마 전, 오랜 친구 하나가 내가 사는 도시로 와서 우리 집에서 커피를 한 잔 했다. 친구는 내 상황을 보고는 “사치”니 “편안함”이니 하는 말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산다. 모든 가구를 내가 고르고, 모든 그림을 내가 걸고, 모든 잡동사니를 정확히 내가 원하는 위치에 두는 집에서. 친구는 둘러보고는 말했다. 정말 사치스러운 일이야! 친구는 내가 혼자 일하는 작고 단정한 작업실을 들여다보았다. 나 한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설 여지도 없는 방이지만, 그곳에는 일하는 동안 내 소매를 잡아당길 사람이 없고, 방해할 사람도, 모임이나 회의에 가자고 끌어낼 사람도 없다. 얼마나 편할까! 친구는 결혼했고, 풀타임으로 일하고, 어린 두 아이의 엄마다. 마지막으로 혼자 밤을 보낸 게 언제였던지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나로 말하면, 혼자 밤을 보낼 수 없었던 게 언제였던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친구는 중얼거렸다. “늘 혼자 있다니. 얼마나 즐거울까.”

글쎄,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내가 누리는 이런 수준의 고독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사치와 안도감이 있다는 것도, 엄청난 자유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잠시 벗어난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을, 쉴 시간과 빈 시간을, 고독과 고립을 헷갈리고 있다는 것도 안다. 마치 내가 일하지 않는 동안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집 안을 어슬렁거리며, 빵을 굽고, 끝도 없이 거품 목욕을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친구는 이 시간에서 끝없는 평온과 고요만을 보았다. 나로 말하면, 이 시간에서 그보다 좀더 걱정스러운 것, 그보다 분명 더 어려운 것을 본다. 내가 이렇게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은 그 시간을 늘 혹은 틀림없이 즐기기 때문이 아니다. 내게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기 때문이다.

고립은 – 고립되고 싶은 충동은 – 두려움과 자기 보호에 관련된 일이다. 고립은 고치를 만드는 것, 매혹적으로 편한 나머지 벗어나기 어려워지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고립은 고독과는 무관하다. 물론 고독한 시간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사회적 의무로 꽉꽉 채워진 한 주의 중간에 참석한 파티에서, 방 안 가득한 25명의 사람들 속에서도 고립될 수 있다. 고립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도망치고 싶은 기분, 거리를 두고 싶은 기분, 내가 겉모습 너머에서는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혹은 문제투성이인지 아무도 모르게 하기 위해서 장벽을 세우고 그 뒤에 숨고 싶은 강박과 관계된 느낌이다. ‘날 여기서 꺼내줘.’ 그런 기분이다. ‘나는 불편해. 혼자 있고 싶어.’

고립은 또한 음흉하다. 우울증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것은 잡초처럼 슬금슬금 자라나서 당신을 붙들고는 다시는 놓아주지 않는 마음 상태다. 당신은 한동안 혼자 지내며, 그저 고독할 뿐인데… 그러다 어느새 고립된다. 당신은 만족하고 있는데… 그러다 어느새 외롭다. 당신은 스스로 잘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데… 그러다 어느새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상태에 갇힌다.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은 무척 가늘고 모호하며, 우리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이기에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다.

내 친구 그레이스는 한때 고립되었지만 지금은 그냥 고독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레이스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지만 그것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깊이 이해하고 선택한 행동이라는 뜻이다. 5년 전, 10년 전만 해도 그레이스는 자기 집에 숨어 살았다. 친구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관계가 광적이고 복잡해서 만나고 나면 진이 빠지고, 뭔가 다친 것 같고, 이해받지 못한 기분이었다. 그레이스는 이 친구 아니면 저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먹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문을 꼭 닫은 후 그 속에서 안도감을 느꼈으며, 품고 있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느꼈다. 너무 힘들어! 너무 화나거나, 실망스럽거나, 지쳐! 혼자 있는 게 훨씬 더 쉬워! 그래서 그레이스는 고립되었다. 전화를 거의 받지 않았고, 초대는 극히 드물게만 받아들였으며 그럴 때도 늘 두려웠다. 그렇게 자신의 세상을 깎아서 줄여나갔다. 그러면서 걱정했다. “금요일 밤에 집에 앉아서 맛있는 닭 요리와 샐러드를 저녁으로 먹고 TV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지. ‘이게 삶일까? 나는 앞으로 40년 동안 계속 이렇게 살까?’”

지금 46세인 그레이스는 여전히 금요일 밤에 혼자 닭 요리로 저녁을 먹고 TV를 보면서 보내는 날이 많다. 하지만 걱정은 누그러졌다. 그녀를 은둔으로 몰아넣었던 두려움,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예전보다 더 바람직하고 더 풍요로운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데다가 생계가 되어주는 일을 갖고 있다. 좋은 심리치료사 덕분에 자신을 훨씬 더 잘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에게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자신이 그 시간을 즐긴다는 사실도 더 또렷하게 느끼게 되었으며, 그 시간에서 공허함이 아니라 뿌듯함을 느끼는 능력도 더 기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고독과 고립의 차이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가 늘 분명하거나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두 상태가 늘 배타적인 것도 아니다. 고독은, 내 경험상, 자칫하면 미끄러지는 경사로다. 처음에는 안락하게 느껴지지만, 종종 아무런 경고도 자각도 없이 훨씬 더 어두운 것으로 변신할 수 있는 상태다.

얼마 전 7월 말의 화창한 일요일, 나는 집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인 자연보호구역으로 가서 개와 단둘이 달렸다. 이전 몇 주 동안 혼자 보낸 시간이 아주 많았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만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마침 다들 휴가를 가거나 출장을 간 터였다. 나는 내 시각이 바뀌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고독하게 보내는 시간과 나날과 활동이 너무 많이 쌓이면서 내 정신에 뭔지 모를 침식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내가 약간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늘 이런 식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좀 되다 보면 – 며칠 밤을 연속으로 혼자 보내거나, 며칠 동안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연속으로 일하거나 – 한동안은 기분이 괜찮고, 편안하고, 만족스럽다. 그러나 그러다가 무언가 변하고, 이상한 자의식이 스멀스멀 마음에 깃든다. 자신이 완전한 문장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난 이렇게 혼자 저녁 식사를 만들고 있네. 난 이렇게 혼자 이를 닦고 있네. 혼자 있는 집이 안식처가 아니라 감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하지만 사교 생활이란 낯설고 혼란스러운 것으로 느껴진다. 어떻게 하는 건지 까맣게 잊어버린 활동처럼 느껴진다.

고독은 우리를 보호해주는 오빠, 아니면 연상의 친한 친구와 같다. 너무 잘 알기에 침묵조차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고독은 기분 좋은 메시지를 속삭이며 우리를 달랜다. ‘여기 앉아, 긴장 풀어, 정신없는 일에서 잠시 벗어나렴. 넌 그래도 돼.’ 고립은 고독의 사악한 쌍둥이, 아니면 못된 친척이다. 그것은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서 우리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넌 바깥 세상을 제대로 다룰 수 없어. 넌 무능하고, 열등하고, 달라. 맨날 그렇게 혼자 지내는 것도 당연하지.’ 혹은 더 나쁘게도 우리에게 거짓말을, 그 유혹적인 속삭임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네 삶에 다른 사람은 별로 필요없어, 너도 알잖아. 넌 혼자로도 완벽하게 괜찮아.’ 이것은 자족감으로 가장한 두려움의 목소리, 독립성으로 가장한 고립의 충동이다. 사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친구 그레이스가 한때 압도당했던 것과 같은 불안이 담겨 있다. 바깥 세상은 무섭고 위험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느낌, 다른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도록 허락하면 그들이 반드시 나를 실망시키거나 다치게 할 것이라는 확신, 스스로가 취약해지는 것이 너무 싫다는 생각. 이것은 모두 지극히 인간적인 두려움들이고, 더구나 지극히 강력한 두려움들이라, 내가 너무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기 시작하면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리기 시작한다. ‘혼자 있도록 해. 집에 있도록 해. 안전한 곳에.’ 이 목소리들에 이끌려 나는 저녁 초대를 거절하고, 친구들에게 전화할까 하다가 그만두고, 서서히 아래를 향해 추락한다. 고독은 외로움이 되고, 외로움은 의기소침이 되고, 의기소침은 무기력과 절망이 된다. 나는 문득 고개를 든다. 이미 나는 고립되어 있다.

나는 달리면서 골똘히 이런 생각을 했다. 고독이 얼마나 쉽게 고립으로 변하는지, 마음을 달래던 자족감이 얼마나 쉽게 소격감으로 대체되는지, 일단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고 나면 도로 돌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마치 어쩌다 외계의 궤도에 진입해버렸는데 아무리 해도 정상적인 궤도로, 인간의 궤도로 다시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고독은 평화와 고요를 키우는 일이다. 하지만 고립은 두려움에 굴복하는 일이고, 우리가 두려움에 더 많이 굴복할수록 우리를 붙잡은 그것의 손아귀 힘은 더 세진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지극히 간단한 사회 활동마저 – 다른 사람을 만나서 커피를 마시거나, 외출해서 저녁을 먹거나 – 엄두가 안 나고 무섭고 지치는 일로, 꼭 프랑스까지 헤엄쳐서 가는 일이나 다름없는 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 물러나고, 혼자라도 완벽하게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그날 달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봤지? 난 이렇게 개와 함께 숲을 달리고 있어. 즐겁고 건전한 활동, 내가 행복하게 독립적인 상태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야.’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엔도르핀의 도시를. 그러다 속도를 줄여 느긋하게 걸으며 호숫가에서 어슬렁거렸다. 나는 작대기를 집어서 던졌고, 개가 그것을 물고 헤엄쳐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기분이 밝아지고, 빛이 돌아왔다. 차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난 할 수 있어. 이렇게 내내 혼자 지내면서도 이 시간을 즐길 수 있어.’ 그리고 손을 내려다본 순간, 어디선가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인간의 궤도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면 꼭 이렇다. 시각이 왜곡되고, 방향을 잃은 듯한 느낌, 내 나름의 방식으로 살짝 미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는 달리는 동안 손에 열쇠들을 쥐고 있었는데, 멍하니 넋이 나간 상태에서, 슬금슬금 의기소침해지는 상태에서, 그것들을 그냥 떨어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차 열쇠, 집 열쇠, 모든 열쇠를. 열쇠를 찾는 걸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벌 열쇠를 갖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거기 혼자 있었다.

고독의 즐거움과 고립의 절망감. 이 이미지는 며칠 동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

60세 이후의 삶에 관한 에세이를 모은 [시간의 마지막 선물(The Last Gift of Time)]에서, 작가 캐럴린 하일브런은 자신이 삶에서 달성하고자 평생 애써온 이상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적인 공간이 충분하되 지속적인 교유가 있는” 상태다. 하일브런에게 사적인 공간은 시골의 작은 집이라는 형태로 실현되었고, 교유는 가족과 소규모의 친밀한 친구들로 충족되었다. 하지만 하일브런의 글을 읽다 보면, 이 조합은 – 우정으로 조절된 프라이버시 –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넘어선 일이라는 느낌, 그 조합을 키워내는 일은 오히려 주로 감정적인 작업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에게는 시골의 작은 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집을 찾아내는 일, 또한 공감해주는 남편과 친밀한 친구들과 심장과 영혼을 모두 사로잡는 일을 찾아내는 일, 이것은 가공할 만한 작업이고, 종종 평생 추구해야만 하는 작업이며, 하일브런도 60세를 훌쩍 넘기고서야 비로소 적절한 균형을, 혼자 있는 시간과 남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적절한 혼합을 달성했던 것이다.

그 적절한 혼합을 발견하는 것은 대단히 사적인 문제다. 혼자 있는 시간은 얼마쯤이면 충분할까? 얼마나 많으면 지나칠까? 안전하게 자신을 보호하는 상태는 언제 자신을 제약하는 상태로 변할까? 당신의 경우, 고독한 행복이 언제 변질하기 시작하여 고립된 절망으로 변형되는가? 하루가 지나면? 열흘? 한 달? 세상을 차단해버리고 싶은 충동은 언제 닥치며, 그 진정한 동기는 무엇인가? 당신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낫기 위해서인가, 숨기 위해서인가?

내가 고립되고자 하는 충동에 본격적으로 굴복하기 시작한 것은 약 2년 전 술을 끊은 뒤였다. 이전까지 내가 너무 오랫동안 술로 무디게 누그러뜨려왔던 감정들이 – 두려움, 오래된 상처와 실망, 너무 오래되거나 갓 생겨난 터라 그 근원을 확인하기도 어려웠던 슬픔 – 그때 온 기세로 돌아와 들이닥쳤다. 그러니 내가 고분고분 웅크리기 시작한 것은, 고립의 목소리가 너무나 유혹적으로 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종종 그 충동에 탐닉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일인지, 아니면 자기 파괴적인 일인지 헷갈린다. 한동안 숨어 있어도 괜찮은 걸까? 이 안전한 공간에 매일 밤 안락하게 웅크리고 있어도 괜찮을까? 아니면 더 활기차게 사교 생활에 몸을 던져야 하나? 성장이 저지된 사회 생활을 살아가면서도 다른 종류의 성장은 저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혼자 있는다는 것, 그 모든 다양한 형태는 – 혼자 살거나, 싱글이거나, 배우자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갖거나 –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교적인 생활을 가꾸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기꺼이 취약해질 줄 알아야 한다. 캐럴린 하일브런이 그 쌍둥이 기술을 터득하는 데는 60년이 걸렸다. 내 친구 그레이스는 40대 중반인 지금 그 목표에 다가가고 있다. 20년 동안 혼자 살아온 그녀는 이제 프라이버시와 교유의 균형을 예전보다 더 자주 달성할 줄 안다. 나로 말하면,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

-1997년

Advertisements

2 thoughts on “Caroline Knapp – Time Alon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