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ine Knapp – Biceps Changed My Life

캐럴라인 냅(1959~2002)의 유고 에세이집 <The Merry Recluse(명랑한 은둔)>에 수록된 글을 한 편 번역해보았다. 냅이 죽기 일 년 반 전에 씌어진 글이다. 냅은 지금 나와 같은 나이에 죽었다. 요즘 냅이 남긴 것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내 인생을 바꾼 두갈래근
-캐럴라인 냅

41895인간의 팔을 보라. 아름다움과 역설이 내재되어 있는 그 기관을. 길고 가는 뼈의 선은 – 노뼈, 자뼈 – 봉긋하게 부푼 두갈래근과 어깨와 대비된다. 우아한 길이가 힘찬 근육과 대비된다. 팔의 움직임은 다양하고 유연하고 모순적이다. 팔은 굽고, 뻗고, 부풀고, 쪼그라들고, 흔들고, 들어올리고, 껴안고, 주먹을 날린다. 팔은 또,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 팔은 변형과 승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끔은 내면의 변화가 사람의 몸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내 팔은 강한 팔이다. 나는 체구가 아담하지만 – 키는 162센티미터이고 골격도 가늘다 – 팔씨름 대회에서 남자들을 때려 눕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사실은 내게 크나큰 즐거움이다. 한번은 내 몸무게와 똑같은 무게를 벤치프레스로 들어올렸는데, 그때는 꼭 내가 여전사가 된 것 같았다. 내 친구 하나는 반농담으로 나를 “라 브루티타”, 즉 “작은 짐승”이라고 부른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 따위야 별 대단한 성취가 못 되겠지만, 내게는 큰 성취다. 내 팔은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을 구현한 것, 내가 어렵게 얻은 자신감과 독립성을 구현한 것이며, 이것은 육체의 문제인 것 못지않게 내 개인의 문제다. 팔은 내가 내 몸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쁘게 여기는 유일한 부위다.

물론, 이것은 이 자체로 승리의 선언이다. 여성이 자신의 몸과 맺는 관계는 (그리고 내가 내 몸과 과거에 맺었던 관계는) 폭풍우와 싸움과 가차없는 자기 검열일 때가 너무 많으니까 말이다. 15년 전, 나는 두갈래근과 세갈래근을 구별할 줄도 몰랐고, 광배근이라는 말은 들어보 적도 없었으며, 내 육체적 자아에 대한 감각은 – 팔도 포함하여 – 거의 병적일 만큼 부정적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실제로 병적으로 부정적이었다. 20대 초에 나는 어렸고, 혼란스러웠고, 두려웠고, 화가 나 있었다. 그래서 어리고, 혼란스럽고, 두렵고, 화가 난 많은 젊은 여성이 하는 일을 했는데, 그것은 바로 섭식장애를 발달시키는 일이었다. 내 경우는 거식증이었다. 불행히도 거식증은 효과적인 기법이다.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감정이 살과 함께 깎여 나가고, 무언가를 – 무엇이든 좋으니 무언가라도 –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는 굶는 것으로 집중되며, 식욕을 부정하는 능력, 영양 섭취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초월하는 능력은 내가 힘을 갖고 있다는 몹시 유혹적인 환상을 안긴다. 몸무게가 제일 적게 나갔을 때 – 38킬로그램이었다 – 나는 깡말랐고, 굴뚝새처럼 가냘팠고, 윤곽선에 지나지 않는 몸이었지만, 그럼에도 망상에 사로잡힌 내 정신의 일부는 스스로 최고로 강하고 의지가 굳다고 느꼈으며, 지금도 나는 이런 뒤틀린 논리가 내가 내 팔을 바라보는 시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던지를 똑똑히 기억한다. 내 팔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 뼈만 앙상한 부속지, 살갗 아래 정맥이 훤히 보이는 팔, 심지어 작은 손가락뼈들까지 뼈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드러난 팔 – 그 모습에 내 마음은 어두운 기쁨으로, 무언가를 잘 장악하고 있다는 왜곡된 감각으로 차올랐다.

그 느낌은 그야 물론 현실과 괴리된 거짓 감각이었다. 그것은 내 영혼의 상태가 아니라 내 육체의 상태와 관련된 느낌이었고, 자기 수용이 아니라 자기 혐오에 뿌리를 내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 느낌이 내게 주는 쥐꼬리만 한 자부심에 의지하여 산다는 것은 크래커로 연명하는 것만큼이나 지속적이지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무수한 절망과 숱한 심리 치료와 많은 중단과 재시도 끝에, 나는 다시 먹기 시작했다. 내 몸과 함께 더 오래 살아갈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조금씩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노력에서 열쇠가 되어준 것이 내 팔이었고, 이 말은 문자 그대로의 뜻이다. 1985년, 나는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의 찰스 강에서 조정을 배우면서 신나는 가을을 보냈다. 조정은 만만한 운동이 아니다. 배 한 척을 온전히 조종한다는 것은 거대한 뜨개질바늘 위에서 똑바로 서 있으려고 애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배는 보통 길이가 8미터에 폭은 30센티미터도 안 된다. 길이가 2.7미터인 두 자루의 노는 균형을 도울 수도 있고 해칠 수도 있다. 조정은 꼭 물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은 스포츠로, 엄청난 정확성과 두둑한 배짱을 둘 다 요구한다. 나는 오랫동안 둘 다 끔찍하게 부족했고, 배를 띄워 나갈 때마다 매번 흔들거리고 근들거려서 거의 뒤집힐 뻔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는 또한 그 기예를 익히고 말겠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 노 젓기의 심미적 아름다움에 – 그 대칭성, 물이 배에 부딪히면서 내는 규칙적인 쉬익쉬익 소리, 힘과 우아함의 결합 –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고, 첫 번째 계절에는 마치 사랑에 달뜬 십 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내 몸매 말고도 무언가 다스릴 것을 발견했다는 사실, 어쩌면 나를 바꿀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랬다. 나는 노를 젓고 또 저었다. 비바람 부는 날에도 젓고 잔잔한 날에도 저었으며, 용을 써가면서도 어떻게든 간신히 강을 오르고 또 내렸다. 참을성이 늘었고, 그다음에는 (그보다 더 천천히) 자신감이 늘었으며, 그다음에는 (마침내) 기술도 좀 늘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또 강하고 유능한 팔을 길러냈다. 시간이 흐르자 내 아래팔은 단단한 근육질이 되었다. 위팔은 탄탄해졌고, 그다음에는 근육이 뚜렷이 드러났다. 어깨는 둥글어졌고, 강해졌다. 사실 노 젓기는 다리 운동이라고들 하지만 – 노를 젓는 힘은 주로 넙다리와 엉덩이의 큰 근육들에서 나온다 – 내 눈에 더 잘 띄는 데다가 많은 면에서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상체의 변화였다. 하나하나의 변화가 내 육체적 힘을 알리는 신호였고, 그 육체적 힘은 내 내면의 힘과 비례하는 동시에 내면의 힘을 새로이 감지하도록 북돋는 연료였다. 그 첫해 여름, 나는 회사에서 걸핏하면 화장실로 살짝 들어가서 남몰래 거울 앞에서 두갈래근으로 알통을 만들어보았다. 근육이라니! 세상에 근육이라니! 그 작은 스릴은 내가 한때 스스로를 쇠약하게 만들면서 느꼈던 스릴과는 전혀 달랐다. 자기를 보살피는 것과 자기를 망가뜨리는 것이 다른 만큼 달랐고, 선뜻 내주는 것과 참으며 억제하는 것이 다른 만큼 달랐다.

여느 많은 여성처럼, 그때까지 내가 육체적 변형에 기울인 노력은 주로 아름다움과 날씬함을 추구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내 곧은 머리카락을 물결치게 만들기 위해서 파마를 했고, 피부를 곱게 만들기 위해서 로션이며 물약이며 발랐고, 체중을 통제하기 위해서 기진맥진해지는 운동 처방을 (조깅, 스텝 에어로빅) 따랐다. 거식증조차도, 비록 역설적이고 뒤틀린 방식이기는 해도, 조금쯤은 이런 노력에서 비롯한 행위였다. 거식증은 우리를 둘러싼 미의 이상이 왜곡된 현상이고, 여성은 이 세상에서 아주 좁디좁은 공간만을 차지해야 한다는 명령에 일면 굴복하는 행위이면서도 다른 한편 저항하는 행위이기도 한 그로테스크한 과장 행동이다.

하지만 내 팔은, 근육질의 강한 내 팔은, 이런 패러다임에서 면제된 부위, 운 좋게도 면역이 있는 부위였다. 팔이 여성의 몸에서 대부분의 다른 부위에 비해 자기 수용의 측면에서 조금이나마 더 여지를 주는 부위라는 사실, 이것은 아마 많은 여성에게 공통된 일일 것이다. 세갈래근 수술을 받으려고 성형외과를 찾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탈의실에서 자신의 못생긴 아래팔을 한탄하거나 팔꿈치를 불평하는 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팔은 (최소한 아직까지는) 우리 몸에서 가장 덜 검열되는 부위이고, 가장 덜 성애화된 부위이며, 그 덕분에 우리는 팔을 사랑하기가 가령 엉덩이나 허벅지를 사랑하기보다는 약간 더 쉽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미지에서 벗어난 단순한 안도감 외에 또 다른 것들도 작용한다. 오늘 아침 일찍 나는 강에 배를 띄우고, 청명한 8월 말 하늘 아래 강을 거슬러 오르며, 배의 리듬에, 수면에 부딪혀 반짝이는 햇빛에, 노가 물을 가르는 느낌에 넋을 잃고 몰입했다. 나는 스스로 강하고 유능하다고 느꼈고, 내 몸이 내가 가르친 대로 움직인다고 느꼈다. 그리고 계속 노를 저으면서, 나는 내 팔을 생각했고, 힘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생각했고, 내가 여성의 몸매와 체형을 규정하는 표준 방정식을 거스르는 데 이 스포츠가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를 생각했다. 평소 내 팔은 스웨터나 긴팔 옷에 싸여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가려져 있다. 나는 팔을 내보이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내가 내 팔에서 느끼는 만족은 전적으로 사적인 것이고, 이 점이 그 만족감을 특히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몸매에 관한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열정과 어떤 일을 할 줄 아는 능력들에서 비롯한 미적 기쁨, 안에서 나와 밖으로 드러난 아름다움. 날개가 된 나의 팔, 이것이 바로 해방의 정의라고, 나는 믿는다.

(2000년 12월)

Advertisements

One thought on “Caroline Knapp – Biceps Changed My Lif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