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 클린턴 – By the Book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 연재되는 ‘By the Book’ 코너 중 첼시 클린턴의 문답을 번역해보았다. 원문은 여기. 전부 다 번역하진 않았고, 어릴 때 읽었던 책에 관한 질문은 몇 개 뺐다. 중간에 세계 보건 문제에 관한 질문이 있는 건, 첼시 클린턴이 (이 문답을 했던) 2017년 2월 그 주제에 관한 책을 공저로 펴냈기 때문이다.

언급되는 책들 중 번역본이 있는 것은 번역본 제목만 적었고, 번역본이 없는 건 영어 원제만 적었다. 번역본이 한 권도 없는 작가는 영어 이름을 병기했고, 번역본이 한 권이라도 있는 작가는 한글명만 적었다.

누가 무슨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만, 이 문답을 읽고 첼시 클린턴이 좋아진 게 사실이다. 무척 지적일뿐더러 아주 사랑스러운 사람인 것 같다.

***

0226-BKS-ByTheBook-superJumbo-v4Q: 요즘 침대 옆 탁자에는 무슨 책이 있나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세컨드핸드 타임>, 데이비드 모렐 David Morrell의 토머스 & 에밀리 드 퀸시 삼부작, 메건 마셜 Megan Marshall의 “Margaret Fuller”, 조지 손더스의 <12월 10일>, 메리 비어드의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첫 책과 마지막 책은 소설이나 긴 잡지 기사를 읽는 사이사이 짬짬이 읽고 있어요.

알렉시예비치를 읽는 건 에너지를 엄청 소비하는 일이에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배경 속으로 내가 빠져드는 기분이 들 만큼 철저히 그 시공간을 환기시키는 글이에요. 단순히 그녀가 그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다고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힘이 솟으면서도 에너지가 소진되는 일이기도 해서, 그 책의 압도적인 힘에 마비되지 않도록 조금씩 나눠 읽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메건 마셜의 책으로 마거릿 풀러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고 싶어요. 풀러가 감옥과 정신병원을 더 인간적인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운동을 어떻게 벌였는지에 대해서.

머리맡 탁자에 쌓아둔 물리적 책은 이 정도고요, 킨들 속에는 훨씬 더 많이 쌓아두고 있죠. 황당할 만큼 많이.

Q: 최근 읽은 책 중 제일 좋았던 것은?

제이디 스미스의 “Swing Time”과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작년 추수감사절 직전에 읽었어요. 그 뒤로도 책을 많이 읽었지만, 저 두 권이 계속 머리에 떠올라요. 그 인간적인 면 때문에요. 인생의 크고 작은 행동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도덕적 노력, 자기 가족과 친구와 자신과 세상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 때문에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떠날 것인가. 영속적인 의미에서도 그렇고, 우리의 정체성이 시간과 공간과 선택에 따라서 달라지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Q: 최근 처음 읽은 고전 중 좋았던 것은?

아이들이 태어난 뒤로는, 미처 못 읽었던 고전을 처음 읽을 기회는 없었어요. 대신 다시 읽은 고전은 있어요. 최근에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과 하인리히 뵐의 <9시 반의 당구>를 다시 읽었어요. <화씨 451>을 처음 읽은 건 호러스만 중학교에 다니던 7학년 영어 수업에서였어요. 어찌나 공상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이야기 같으면서도 동시에 어찌나 현실적이던지, 마음이 너무 불편해졌죠. 수십 년 뒤 다시 읽어도 불편하더군요. 심지어 예전보다 더. 오싹한 순간과 이미지가 넘치는 책이지만, 이번에 가장 심란하게 와 닿은 건 벤저민 프랭클린을 최초의 방화수로, 책 태우는 사람으로 캐스팅한 점이었어요. 그래서 프랭클린이 표현의 자유를 누구보다 옹호했던 사람, 과학자, 신문 발행인, 나중에 미국이 될 나라에서 최초의 소방서를 지었을 뿐 아니라 최초의 병원도 세웠던 사람이었다는 역사를 지워버린 점이요. 현재 우리는 인권, 여성의 권리, LGBT의 권리, 경제적 권리 등에서의 발전을 보호하려고 싸우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와 동시에 사실, 과학, 과학적 기법, 그리고 우리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도 싸워야 해요. 미래를 위한 싸움은 현재와 과거로 이어져 있죠. 브레드버리는 그 사실을 알았어요. 그리고 뵐은, 우리가 사회적 차원에서 그런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가정 내에서도 그런 싸움을 벌여서 이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요.

Q: 요즘 활동하는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이 답변에서 언급한 여러 작가들 외에도 콜슨 화이트헤드 Colson Whitehead, 힐러리 맨틀, 마샤 게센, 무라카미 하루키, 안드레이 마킨, 마거릿 애트우드, 에릭 라슨, 린-마누엘 미란다 Lin-Manuel Miranda, 메릴린 로빈슨, 엘레나 페란테, 줄리언 반스, 이언 매큐언, 앤 애플바움, 티모시 이건 Timothy Egan 등을 아주 좋아해요. 그리고 지타 메타 Gita Mehta가 다시 글을 썼으면 좋겠어요.

Q: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안 읽는 책은?

역사소설, 특히 추리소설을 좋아해요. 요즘 추리소설도 좋아하지만 뉴욕이 무대인 건 싫어요. 아마 아무리 가짜 이야기라도 내가 사는 일상을 침범하는 건 싫은 마음 때문이겠죠. 그렇긴 하지만, 루이즈 페니의 근사한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의 무대인 스리 파인스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은 들어요. 바버라 네이들 Barbara Nadel의 이크멘 형사 시리즈, 돈나 레온의 브루네티 형사 시리즈,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알라트리스테 시리즈를 아주 좋아해요. 그리고 모자母子 팀인 찰스 토드 Charles Todd가 쓴 책은 뭐든 좋아요! 루틀리지 형사 시리즈도 좋고 베스 크로포드 시리즈도 좋아해요. 재클린 윈스피어 Jacqueline Winspear의 메이시 돕스 시리즈도 저한테는 특별해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삼인조 북클럽(엄마까지 셋이에요)이 마지막으로 함께 읽은 책이었거든요. 제일 최근에 읽은 건 데보라 크롬비 Deborah Crombie의 덩컨 킨케이드/젬마 제임스 시리즈 중 최신작인 “Garden of Lamentations”였어요. 어찌나 재밌었던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들 에이던에게 젖을 먹여야 하는 사람치고는 너무 밤늦게까지 읽었죠. 그만큼 재밌었거든요. 줄리아 스펜서-플레밍 Julia Spencer-Fleming이 클레어 퍼거슨/루스 반 알스타인 시리즈를 어서 더 써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P. D. 제임스의 형사 달글리시 시리즈를 누가 좀 내줬으면 좋겠어요. 안 읽는 책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이 다치거나 심각하게 위험해지는 소설은 대체로 피해요.

Q: 세계 보건에 관해서 읽은 책 중 최고는?

스티븐 존슨의 <감염 지도>는 19세기 런던에서 콜레라를 추적하여 역학과 과학을 혁신했던 존 스노 이야기를 엄청 재밌게 다룬 책이에요. 윌리엄 페이지 William Foege의 “House on Fire”는 – 시어의 노래 제목을 말하는 건 아니고요 – 세상이 천연두를 몇십 년 만에 어떻게 근절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에요. 세계 보건 활동의 대표적인 성공 중 하나였죠. 폴 파머, 피터 피오트, 로리 개럿 Laurie Garrett, 래리 고스틴 Larry Gostin이 쓴 책은 뭐가 되었든 오늘날 세계 보건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결핵 같은 오래된 위협에 맞서는 데, 그리고 지카 같은 새로운 위협을 통제하는 데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도. 나이젤 크리스프 nigel Crisp의 “Turning the World Upside Down”은 우리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로부터 공공 보건과 의료 서비스 측면에서 무슨 교훈을 배울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에요. 2000년 책이지만, 그의 분석과 권고는 현재 우리의 문제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봐요. 마지막으로 랜디 실츠 Randy Shilts의 “And the Band Played On”은 탁월하면서도 읽기에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책이지만, 미국이 초기에 HIV-에이즈에 어떻게 맞섰는가를 알려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죠. 특히 우리가 요즘 HIV-에이즈 예방과 치료 활동을 뒤로 물리려는 움직임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더 그래요. 우리는 태만과 무지가 많은 인명을 대가로 치른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권력자들에게도 상기시켜야 하고요. 우리가 이미 효과가 있다는 걸 아는 공공 보건 조치를 시행하지 않는 건 궁극적으로 도덕적 실패에 해당한다는 사실도.

Q: 책을 어떻게 읽나요? 종이책을 읽나요, 전자책을 읽나요? 한 번에 한 권씩 읽나요, 동시에 여러 권 읽나요? 아침에 읽나요, 밤에 읽나요?

가족과 함께 있을 때나 일할 때가 아니면 계속 읽어요. 가끔은 가족과 함께 있을 때도 읽고요. 남편이 일찍 잠들었을 때(지금 그래요, 쉿), 아니면 아들에게 젖을 물리면서 조용히 있고 싶을 때. 내가 소리를 내거나 움직이면 아이가 정신이 팔려서 나랑 말하고 싶어할까 봐(그래요, 정확히 말하면 옹알이지만). 하지만 가끔은 아이가 젖을 빨면서 내 눈을 가만히 쳐다보는데, 그럴 때는 어떤 책보다도 그 순간을 택하죠. 책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라도. 종이책도 읽고 전자책도 읽어요. 하지만 요즘은 두 살 딸과 팔 개월 아들을 안고 다니니까, 심지어 가끔은 동시에 둘 다 안아야 하니까, 짐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전자책을 더 많이 읽게 되는 편이에요.

Q: 사람들이 당신의 책장에서 보고 놀랄 것 같은 책은?

남편 마크는 SF를 좋아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좋아한다”는 건 너무 약한 표현일 정도죠. 나도 25년 전에 처음 <시간의 주름>을 읽은 뒤 지금까지도 제일 좋아하는 책으로 여기지만, 요즘은 주로 현대소설이나 역사소설이나 논픽션, 그리고 약간의 희곡이나 시를 읽으니까, 친구들이 우리 책장이나 킨들에서 SF를 보면 놀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문답을 읽은 뒤라면 안 놀라겠죠! 그리고 이걸 쓰고 있자니, 내가 어렸을 때 SF에 대해서 품었던 사랑을 다시 깨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크한테 추천을 좀 해달라고 해야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새벽 2시니까, 깨우지 말고 일단 그냥 자는 게 좋겠죠.

Q: 대통령에게 한 권의 책을 읽게 할 수 있다면 어떤 책을?

페레스 레베르테의 알라트리스테 시리즈 중 한 권에서, 등장인물이 이런 말을 해요. “책을 한 권만 읽는 사람은 믿지 말라.” 내가 언제 어디에서 저 문장을 읽었는지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소설 속에서는 저 말이 종교재판과 광신적 신앙의 독재를 경고하는 뜻이었지만, 저는 저 말이 스스로 진리와 진리의 원천을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뜻이라고 받아들였어요. 호기심, 비전, 감사, 겸손은 모든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세상 모든 곳의 모든 지도자에게. 그리고 독서는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꼭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비전을 형성하고 채택하는 데도 꼭 필요하고, 감사와 겸손을 수양하는 데도 꼭 필요한 활동이죠. 권력과 권위를 지닌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권력이 클수록 책을 읽을 의무도 더 크다고 생각해요. 남들의 말을 들을 의무도.

Q: 다음에 읽을 책은?

지금 침대맡에 놓인 책들, 거기 더해서 한강의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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