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책 읽는 즐거움 – 테이줄 라오, 뉴욕 타임스

<뉴욕 타임스>에 실린 요리 전문 기자 테이줄 라오(Tejul Rao)의 짧은 글을 번역해 보았다. 원문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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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법은 그 무뚝뚝함으로 얼마나 친근할 수 있는지. 엄마나 친구가 이렇게만 툭 말하는 것이다. “닭 껍질 벗겨. 무슨 일인지 다 말해 봐. 마늘 으깨.” 나는 아홉 살에 이런 말에 끌렸다. 우리 가족이 런던에서 파리 동쪽 작은 마을로 이사한 해였다.

나는 프랑스어를 할 줄 몰랐고,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선생님들도 다른 학생들도. 나는 교실 뒤쪽에 앉아서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기만을 바랐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달콤하고 부정확하게 발음했는데, e에 강세를 주고 j는 부드럽게 누그러뜨렸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우리 반 선생님까지도, 내가 견디기 힘든 인내를 품고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꼭 아기인 것처럼, 사람들은 부드럽고 해독 불가능한 음절을 한 번에 하나씩 발음하면서 단어들을 내게 떠먹였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중함을 보여 줌으로써 내게 정중함을 가르쳤고, 격식 있는 태도로 내게 거리를 뒀다.

매일의 굴욕이었던 학교에서 집으로 오자마자 나는 부모님의 요리책을 읽었다. 우리 집에서 내가 아직 안 읽은 영어 책이 그것뿐이어서였는데, 선물로 받거나 공항에서 시간에 쫓겨 대충 구입한 잡다한 책들의 집합이었다. 이니드 블라이턴이나 로알드 달이 아니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나는 독자였고, 읽는 게 행복했다. 내게는 매 쪽이 새로웠고, 또한 소중했으며, 나는 레시피 서두마다 작게 삽입되어 있는 짧은 이야기들에, 쉽게 외워지는 독특한 표현이나 인용구에 매달렸다.

우리 가족 중에 오스트레일리아에 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집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여성 주간지>가 낸 <어린이 생일 케이크 책>이 있었다. 나는 자러 가기 전에 그 책을 탐독했고, 초콜릿 비스킷으로 겉을 두르고 잘게 다진 초록 젤리와 작고 흰 플라스틱 인형을 올린 바닐라 케이크를 구경하느라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머무적거렸는데, 그건 지상 수영장을 흉내 낸 거라고 했다. 그 책은 요리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미학에 관한 책이었다. 그리고 사탕으로 자판을 만든 타자기 레시피든 감자칩으로 입술을 만든 고무 오리 레시피든 늘 똑같은 말로, 기도문과도 같은 이 말로 시작했다. “아래에 적힌 지시에 따라 케이크를 만드십시오.”

배우이자 작가 매더 재프리가 쓴 요리책이 최소 두 권 있었다. 나는 그의 분명하고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대번 반했다. 분홍색과 파랑색으로 된 상자에 담긴 레시피 카드들도 있었다. 여러 사람의 손글씨로 씌어진 카드들에는 군데군데 더께가 앉고 얼룩이 져 있었다. 나는 상자를 뒤적이면서 내용물을 재정렬하는 척했고, 낡아서 흐릿해지고 나달나달해진 신문 기사 스크랩을 읽었고, 그 여백에 우리 할아버지가 묽은 파란 잉크로 끼적여 둔 메모를 읽었다.

아마도 나는 다음 사실을 다른 무엇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도 배울 수 있었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사실을 요리책을 읽으면서 배웠다. 단어들은 생각을 더 정확하게 만드는 데 쓰일 수도 있고 더 애매하게 만드는 데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무언가를 더 명료하게 만드는 데 쓰일 수도 있고 윤곽을 흐리는 데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떤 작가들은 자신과 꼭 같지는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상상하는 데 능하고, 어떤 작가들은 그런 능력이 없는 듯하다.

1986년 출간된 작은 복숭앗빛 책 <런던 리츠 애프터눈 티>는 위안이 필요할 때 읽는 책이 되었다. 그 책이 왜 집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책에는 에드워드 시대 런던에 대한 향수가 가득했고, 레시피들은 온갖 속물적인 규칙을 가차 없이 강요했는데, 가령 베이킹을 할 때는 “최고 품질의 초콜릿만” 써야 한다거나 티백은 “절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문장들이 좋았고, 책이 책가방에 쏙 들어갔기 때문에, 두 달 동안 나는 어디든 그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버스에서나 철자법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 티케이크 레시피나 머랭 레시피를 읽었다. 고급 호텔에서 핑거 샌드위치를 먹는 건 너무나 환상적인 일처럼 보였고, 그에 관한 글을 읽는 건 진정제처럼 즉시 효과를 발휘하여 나를 달래 주었다. 책은 말하기를 외국의 케이크들은 “짓궂은 전율”이 있지만 그 “맛있는 외국 방식으로” 영국인들의 마음을 얻었다고 했다.

내가 처음 시도한 레시피는 장미꽃 잼이었다. 더러운 양동이에 빗물을 일 리터 받은 뒤 우리 집과 이웃집 사이 돌담에 핀 장미를 싹둑싹둑 잘랐다. 낱낱이 뜯어 물에 씻은 꽃잎을 설탕에 하룻밤 재웠다. 하지만 나는 다음 단계로는 영영 넘어가지 않았다.

그해 말 무렵이면 나는 글씨체가 바뀌었고, 꿈에서 듣는 언어도, 다른 것도 모두 다 바뀌었다. 친구를 사귀었고, 프랑스 만화영화를 봤고, 프랑스 책과 만화책만 읽었다. 내 이름을 적을 때 e에 강세 표시를 해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며 미리 잘못 발음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내 제일 친한 친구는 마리엘이었는데, 그 아이는 수업을 한나절만 하는 수요일에는 젖은 머리카락에서 라벤더 향을 풍기며 학교에 왔다. 마리엘은 내가 뭘 틀리면 웃으면서 바로잡아 주었는데 – 보통 성별 단어가 든 글이었다 – 이제 그럴 일이 그다지 잦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마리엘네 집에서 대여섯 번 잔 뒤 마리엘의 어머니는 나만 보면 법석을 떠는 걸 그만두었고, 나더러 뭘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지 묻는 걸 그만두었고, 내가 마치 깨질지도 모르는 물건인 양 나한테 살살 말하는 걸 그만두었다. “내려와라.” 마리엘의 어머니는 저녁 식사가 준비되면 이렇게 소리쳤다. “손 씻고.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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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oughts on “요리책 읽는 즐거움 – 테이줄 라오, 뉴욕 타임스

  1. 안녕하세요. 글의 주제와 무관한 이야기라서 죄송하지만, 혹시 이 블로그의 테마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까요? 디자인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비슷한 테마를 찾아보다가 결국 찾지 못해 댓글로 질문드립니다.

  2. 안녕하세요^^ 저는 출판사 21세기북스의 편집자 김은찬이라고 합니다~ 역자님 연락처를 못 찾아서요;;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여기 문의 남겨도 될지요? ^^;;; 아니면 아래 이메일로 메일 하나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

  3. 안녕하세요, 저는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의 석사과정생인 홍성재 학생이라고 합니다. 동 대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로의 번역에 대한 강좌 및 이와 관련한 대화를 부탁드리고자 연락을 드리고 싶은데, 혹시 윗 댓글에 다신 이메일로 상세한 내용을 담은 메일을 보내도 괜찮을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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