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에 관하여 – 옮긴이의 말

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2000년, 미국 정부는 홍역이 미국에서 사실상 근절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인 2014년 말,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홍역 감염자가 150여 명이나 발생하여 보건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공기에 의해 전염되는 홍역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매우 높고, 아이의 경우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역학 조사 결과, 대개의 환자들은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에 놀러 갔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많은 환자는 홍역 백신을 맞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4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백신으로 싹 퇴치한 줄 알았던 감염병이 도로 활개 치게 되었을까?

이야기의 시작은 1998년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그해, 영국의 소화기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는 저명 의학지 <랜싯>에 MMR(홍역, 볼거리, 풍진) 혼합 백신이 아이에게 자폐증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논문을 실었다. 웨이크필드의 연구는 표본이 12명에 불과했고 연구 기법에도 문제가 있어 금세 반박되었고, <랜싯>은 10년 후 아예 게재를 취소했다. 심지어 그가 뒷돈을 받았다는 것이 드러나 결국 의사 자격까지 박탈당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사람들이 백신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유효한 이론인 것처럼 인지하게 된 뒤였다.

이후 미국에서는 배우 제니 매카시 등의 유명인이 가담한 백신 반대 운동 단체들이 더욱더 조직적으로 홍보를 벌였고, 그 결과 MMR 백신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종류의 유년기 권장 백신에 대한 접종률이 갈수록 낮아졌다. 여기에 현대 주류 의학의 흠을 지적하는 대체 의학의 부추김이 더해져, 인공 백신을 거부하고 ‘자연적’인 방법으로 면역력을 북돋는 것이 현명하고 자연스럽고 진보적인 태도라는 생각마저 생겨났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백신 미접종 아이는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가정 출신이 많아, 이 문제는 얄궂은 양상으로 계급성도 띠게 되었다. 자연 면역을 확보할 요량으로 수두에 걸린 아이의 집에 일부러 아이들을 모아서 놀게 하는 ‘수두 파티’가 유행했던 것이나 앞에서 말한 디즈니랜드 홍역 집단 발병은 그런 경향성이 절정에 달한 사건이었다.

전체 인구 집단의 접종률이 집단 면역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어떤 임계점 밑으로 떨어지면, 전염병의 확산은 예측할 수 없고 걷잡을 수 없다. 2008년에 홍역 발병이 0건, 백일해 감염이 49건이었던 미국은 2013년에는 홍역 감염이 270여 건, 백일해 감염이 무려 2만여 건이었다. 이런 명백한 위험 앞에서, 디즈니랜드 집단 발병을 겪은 캘리포니아 주 상원 보건 위원회는 모든 아이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도록 2015년 초 학교백신법을 강화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백신 기피에 대한 WHO의 권고’를 내어, 백신 기피로 세계에서 매년 150만 명의 아이가 숨진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접종을 권고했다. 그러나 백신 접종이 한 번도 법으로 의무화된 적 없었고 워낙 개인의 자유에 민감한 미국에서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직 모른다(우리나라도 표준 예방 접종 실시 기준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권고일 뿐 강제 수단은 없다). 백신의 유효성과 전반적 안전성은 의학계에서 논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짐에도 불구하고, 예방 접종은 뜻밖에도 현재 가장 뜨거운 공중 보건 문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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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출간된 <면역에 관하여>는 그런 과열된 분위기에 던져진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서 논쟁을 더 뜨겁게 만드는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격전지에 홀로 조용히 피어난 꽃과도 같은 책, 그리하여 정신없이 싸우던 양측으로 하여금 화들짝 놀라 그 차분한 목소리에 주목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작가 율라 비스는 2009년 아들을 낳았다. 이전에도 저널리스트로서 관련 주제를 취재해 온 그였지만, 처음으로 어머니가 되는 과정에서 그는 면역과 예방 접종에 대해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고 개인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그에게 어머니가 된다는 건 전혀 다른 세상으로 건너오는 경험이었다. 베개나 매트리스 같은 일상적인 것들마저 아기를 죽일 수 있는 세상으로. 아무것도 겁날 게 없던 세상에서 모든 게 다 겁나는 세상으로. 그러나 또 한편으로 어머니가 된다는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겠다고 다짐하는 것, 뻔히 실패할 걸 알면서도 아이의 운명에서 불길한 예언을 지우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스는 “힘을 부여받은 무력함”을 느낀다. 어머니는 아이를 대신하여 무수한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럴 힘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결정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어 무력하다. 백신을 맞혀야 하나? 누구 말을 들어야 하나?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지? 어떻게 결정하든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이토록 낯선 “어머니 됨”의 세상에 뚝 떨어진 비스는 이 미로를 의연하게 헤쳐 나갈 길을 찾기 위해서 이 세상을 기록한다. 그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자료 조사, 전문가 취재, 대학의 면역학 수업, 무엇보다도 다른 어머니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비스는 면역과 예방 접종과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전방위로 더듬어 본다. 종두법의 발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면역학의 역사적 측면을. 백신의 작동 원리, 관리 체계, 부작용 등 과학적 측면을.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거부했으나 현재는 중상층이 거부하는 백신의 사회 계급적 측면을. 미군과 탈리반이 무기처럼 이용했던 백신의 국제 정치적 측면을. 백신에 제약 회사의 탐욕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음모론을 둘러싼 경제적 측면을. 우리가 면역계의 작동을 곧잘 전쟁에 비유하는 것은 타당한가 하는 은유적 측면을.

비스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두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수두 파티에 대해서 “그 사람들은 바보야”라고 딱 잘라 말했던 자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비스는 백신 반대자를 한심하게 여기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왜 그런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우리의 두려움은 우리의 신화, 문화, 은유, 역사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백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말하려면 과학뿐만 아니라 그런 것들까지 모두 말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렇다고 해서 비스가 기계적 중립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확고한 백신 찬성론자다(사실 엄연한 과학적 현상에 대해서 찬성하느니 반대하느니 하는 표현은 이상하지만). 그가 모든 의심의 오솔길을 직접 다 걸어본 뒤에 결론으로 다가가는 과정은, 비록 독자에게 강요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을지언정, 더없이 강력한 백신 옹호 논증이다. 그는 백신은 인공적인 것이고 자연 감염은 자연적인 것이라고 여겨서 후자를 선호하는 생각이 왜 착각인지를 짚으며, 현대 기술과 의학의 혜택을 입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미 인공이 가미된 사이보그라는 통찰로까지 나아간다. 우리가 제각각 자기 몸만 잘 간수하면 질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는 독립성의 희망은 망상이라고 지적하며, 우리 몸은 애초에 수많은 기생생물을 담고 있는 “타자들의 집합”인 데다가 살갗은 침투성이 높은 불완전한 경계이므로 우리는 누구나 다른 몸들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가 제약 회사나 정부를 의심하는 것은 건전한 일일 수도 있지만 음모론은 대개 “하나만 잘 아는” 편집증적 사고라고 지적하고, 과학 정보는 전체를 다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정보와 관점에 의존해야 하므로, 누구도 “혼자서는 알 수 없다”. 정보를 판별하는 데 있어서도 완벽하고 순수한 독립성의 망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통찰이다.

비스가 출산 후 자궁 내반증으로 자칫 목숨이 위험했던 때 남의 피를 수혈받아 살아났던 경험, 그해에 전 세계에서 범유행병으로 돌았던 H1N1 신종 플루에 대한 보건 당국의 대응과 항균 소독제의 범람, 질병의 은유이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은유이기도 한 뱀파이어 이야기… 언뜻 면역과 예방 접종과는 무관해 보이는 이런 이야기들도 결국에는 비스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결론으로 수렴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서로의 몸에 빚지고 있으며” “면역은 우리가 공동으로 가꾸는 정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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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른바 “자연주의 육아”를 따른다며 백신을 기피하는 풍조가 있어, 관련 뉴스가 심심찮게 들린다. 실제 2006년에서 2015년까지 9년 사이에 수두 감염자는 거의 네 배로, 볼거리(유행성 이하선염) 감염자는 거의 열 배로 늘었다고 한다. 수두 파티 유행이 여기까지 건너온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면역에 관하여>도 이렇게 알맞은 시기에 함께 건너온 건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런데 <면역에 관하여>가 시사적인 책으로만 여겨진다면 아쉬울 것이다. 한 편씩 따로 읽어도 괜찮도록 완결되어 있지만 그런 30편의 글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이 책은, 비스의 에세이스트로서의 접근법과 표현법이 내용 못지않게 감탄스럽다. 비스는 백신에 대한 시각에서 인공과 자연, 자기와 비자기, 신화와 의학, 어머니와 의사의 이분법을 넘으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글에서도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관찰과 조사, 일기와 보도의 이분법을 넘는다. 문예 비평가답게, 주어진 것으로부터 늘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읽어 낸다. 문제를 단순화해 주는 게 아니라 “더 복잡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들을 칭송한다. 해외 서평가들은 비스가 함축적이라는 점에서는 조앤 디디온을, 아포리즘적이라는 점에서는 수전 손택을, 은유를 통해 세상을 확장한다는 점에서는 레베카 솔닛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한없이 세심하고 은근하지만 모호하거나 감상적이지 않은 비스의 글은 아름답다는 말로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통찰을 곳곳에서 내보인다. “당신의 피가 아니잖아요.” 그가 의사에게 들었던 이 말이 어떻게 모두가 함께 가꾸는 정원으로서 면역과 이어지는지를 깨닫는 것은 독자에게도 뼛속까지 시린, 그러나 몸속까지 따스해지는 경험이다. <면역에 관하여>는 한편으로는 과학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이며, 무엇보다도 밀도 높은 사고이다. 이런 글을 쓴 비스의 아버지가 의사이고 어머니가 시인이라는 사실은, 너무 공교로워서 오히려 재미없는 농담처럼 들리지만, 아마도 이 아름다운 책에 좋은 영향을 미친 우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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