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rtz – SEP

위키피디아가 꿈만 꾸는 것을 해낸 무료 온라인 백과사전 (기사 원문)

-니킬 손나드, 2015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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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철학백과사전(SEP)은 인터넷을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웹사이트일지도 모른다. 내용 때문은 아니다. 물론 ‘애매함’에서 ‘좀비’까지 별의별 것에 대한 흥미진진한 항목들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사이트 자체 때문이다.

SEP를 만든 사람들은 인터넷의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를 해결했다. 어떻게 하면 권위 있고, 엄밀하고, 정확한 지식을 공짜로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SEP는 지난 20년 동안 그 문제를 용케 풀어왔다.

인터넷은 정보의 매립지다. 그 속에는 사실상 인류의 모든 지식이 – 산더미처럼 쌓인 의견, 추측, 잘못된 정보 아래 깔린 채 – 묻혀 있다. 하지만 쓰레기를 분류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가치 있어 보이는 걸 발견했더라도, 결국 싸구려 모조품으로 밝혀지고 마는 경우가 흔하다.

SEP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지금의 상태에 도달했는가 하는 사연은 우리가 좀 덜 쓰레기 같은 인터넷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다. 적어도 인터넷의 작은 한구석만이라도. 진정한 지식이 매립지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지는 대신 별도의 더미로 깔끔하게 쌓이는 장소를. 오늘날 우리가 가진 인터넷보다는 사람들을 훨씬 더 똑똑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정보의 불가능한 삼각정리

온라인 SEP의 시작은 보잘것없었다. 스탠퍼드 언어정보연구센터의 철학자 에드워드 잘타는 1995년 9월, 단 두 개의 항목으로 백과사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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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SEP는 인터넷의 역사로 보자면 굉장히 오래된 사이트다. 위키피디아도 14살밖에 안 된다. 20년을 버텨온 사이트들은 대개 – 블룸버그나 MTV처럼 – 인터넷 이전부터 있던 브랜드들이거나 고전이 된 ‘스페이스잼’ 웹사이트처럼 어쩌다 보니 그냥 지금까지 열려 있는 사이트들이다.

SEP는 인터넷 이전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경직되어 굳어버린 사이트도 아니다. 현재 SEP에는 1,500개 가까이 되는 항목들이 있고, 매일같이 변경이 이뤄지고 있다. 매달 백만 건의 페이지뷰를 기록하는데, ‘티벳 인식론과 언어철학’이나 ‘퍼스의 기호 이론’ 같은 항목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감안한다면 적잖은 조회수인 셈이다. 미국도서관협회는 <북리스트> 서평에서 SEP가 “범위, 깊이, 권위 면에서” 최대 규모의 인쇄본 철학 백과사전들, 가령 10권이나 되는 루틀리지와 맥밀런의 사전들에 맞먹는다고 평가했다. 더구나 그 평가가 거의 십 년 전 일이었다.

철학 용어를 소개하는 백과사전을 만들자는 발상을 처음 낸 사람은 센터장인 존 페리였다. 하지만 잘타에게는 더 원대한 발상이 있었다. 그는 훗날 두 공저자와 함께 쓴 2002년 논문에서 자신들의 도전 과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보 시대에 일반 대중이나 학계 구성원이 겪는 근본적인 문제는 어떤 중요한 주제에 관해서 권위 있고, 종합적이고, 최신 내용으로 업데이트된 정보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다.”

어찌나 오래된 논문인지, 그다음 문장에는 “CD-ROM”이란 단어가 나온다. 하지만 그로부터 제법 시간이 흘렀어도, 기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저자들이 나열했던 세 가지 조건은 – “권위 있고, 종합적이고, 최신 내용으로 업데이트된” – 말하자면 경제학에서 말하는 ‘불가능의 삼원정리’를 정보에 대해서 꼽아본 셈이다. 우리는 언제든 셋 중 하나나 둘만 동시에 취할 수 있다. 세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건 케이크를 손에 쥐고, 그것을 먹고, 그것을 딴 사람에게 주기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만일 우리의 목표가 진실된 정보를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라면, 자료는 반드시 세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자료는 믿을 만해야 한다. 그리고 뭔가 빠뜨린 구석이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지식의 최신 상태를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활용되는 다른 백과사전 설계 방식들은 이 조건들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은 참담하게 실패한다.

 

다른 백과사전들이 부족한 부분


권위 있는가: O
종합적인가: X
최신 정보인가: X

인쇄된 책은 권위가 있다. 독자들은 전문가들이 쓰고 편집했다고 여기는 글을 믿는다. 그리고 편집자는 책의 여러 항목들이 전체와 잘 어우러지도록 고려하기 때문에, 책은 해당 주제에 대해서 일관된 개요를 제공한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가 발표되면, 책은 당장 구식 정보가 된다. 아주 좁은 분야를 제외하고는 책이 종합적일 수도 없다(여러 권이라도 마찬가지다). 인쇄할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용자 참여 (크라우드소싱)
권위 있는가: X
종합적인가: X
최신 정보인가: O

사용자 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은 적시성이라는 장점이 있다. 위키피디아의 열성적인 비전문가 집단 덕분에, 속보로 터진 사건에 대한 항목은 사건이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업데이트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충분한 지식이 있는 사용자들이 신경 써서 오류를 제거하고 있는 소수의 분야를 제외하고는, 위키피디아는 권위적이지 않다. 어느 수학 교수는 위키피디아의 기본적인 수학 항목들을 검토하고서 “오류, 오만, 모호함, 헛소리가 마구 뒤섞인 상태”라고 평했다. 위키피디아는 종합적이지도 않다. 영어로 작성된 것만 따져도 항목이 무려 500만 개 가까이 되지만, “사실상 완전하다”고 평가할 만한 “A등급” 이상의 항목은 분야를 막론하고 1만 건이 못 되는 듯하다.

구멍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SEP에는 구멍을 주제로 제법 상세한 항목이 작성되어 있는데 그걸 보면 위키피디아의 핵심적인 흠 중 하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SEP의 ‘구멍’ 항목에 따르면, 구멍은 까다로운 철학적 문제다. 구멍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무언가인 것처럼 논한다. (구멍 항목을 쓴 아킬레 바르치는 2000년 미국 대선 때 ‘행잉 채드[펀치 구멍이 완벽히 뚫리지 않아 종이가 대롱대롱 매달린 투표 용지]’의 존재론적 상태에 대한 논평을 뉴스에서 한 적 있다). 한편 위키피디아에게 구멍에 대해 물어보면, 영어덜트 소설 <구멍>과 록밴드 ‘홀’을 알려줄 뿐이다.

달리 말해, 철학 개념으로서 구멍이란 소설 줄거리나 밴드의 디스코그래피처럼 깔끔하고 사실적인 진술을 선호하는 사용자 참여형 장소가 다루기에는 너무 추상적인 주제다. 위키피디아의 상향식 모델은 SEP의 구멍 항목 같은 건 결코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사용자 참여 + 투표
권위 있는가: ?
종합적인가: X
최신 정보인가: ?

위키 모형의 한 변형 형태는 쿼라(전반적인 주제)나 스택오버플로(컴퓨터 프로그래밍)처럼 사용자들이 질문을 올리고 답을 적는 질의응답형 사이트다. 이런 사이트는 위키피디아보다는 약간 더 권위가 있다. 사용자들이 해당 정보가 얼마나 유용했느냐에 따라 답변에 투표하여 등수를 올리고 내리기 때문이고, 구체적인 사용자 한 명 한 명이 답을 적는 데다가 그들이 자신의 자격을 밝히는 게 권장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저는 구글의 UI 디자이너입니다” 하는 식으로).

그러나 이따금은 사람들의 신임장을 확인해볼 방법이 있어도, 대개의 경우에는 그 자격이란 게 그냥 본인이 밝힌 것인 데다가 확인도 어렵다. 게다가 이런 사이트는 전혀 종합적이지 않다. 어떤 답이든 작성자가 판단한 만큼만, 혹은 가능한 만큼만 종합적이다. 그리고 사이트에서 질문되고 답변되는 문제는 사용자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경향이 있는데, 쿼라나 스택오버플로의 경우에는 둘 다 그것이 남성, 미국인, 컴퓨터 전문가의 이해로 심하게 쏠린 편이다.

게다가 이런 사이트는 최신 정보로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새로운 사건에 신속히 반응할지는 몰라도, 이미 구식 정보가 된 답변이 지워지거나 수정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서 사이트를 점점 더 고인 물로 만든다.

 

스탠퍼드 해법

그러면 불가능의 삼원정리는 그냥 불가능한 걸까? 잘타는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SEP에 적용할 다른 모델을 떠올렸다. 이른바 ‘역동적 참고 자료’ 모델이다.

역동적 참고 자료
권위 있는가: O
종합적인가: O
최신 정보인가: O

권위를 담보하기 위해서, 수십 명의 주제별 편집자들이 – 각자 ‘고대철학’이나 ‘형식인식론’ 같은 폭넓은 분야를 책임진다 – 다룰 필요가 있는 주제를 파악한 뒤 자격 있는 철학자들에게 그 항목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부탁을 수락한 필자는 해당 주제를 맡은 편집자에게 개요를 써보내야 한다.

“필자가 글을 쓰기 전에, 편집자와 필자가 함께 최적의 개요를 미리 짜둡니다.” 심리철학 분야 편집자인 수재나 시걸의 말이다. “가끔은 이 단계에서 의견이 아주 많이 오고 갑니다.” 편집자가 작성된 항목을 기각할 수도 있다. 잘타와 SEP의 수석 편집자 유리 노들먼에 따르면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지만 말이다. 드물게 그런 경우, 보통은 내용이 지나치게 편향된 것이 그 이유이다. 요컨대 쿼라에서처럼 아무나 아무 질문에나 답을 달 수는 없는 것이다.

편집 집행부는 – 잘타, 노들먼, 콜린 앨런이다 – SEP가 종합적일 수 있도록 살핀다. ‘위키 구멍’, 즉 특정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관련 용어를 정의한 페이지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열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향을 잘 잡는다. 노들먼은 “필자들에게 자기 완결적인 글을 써달라고 부탁합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항목 하나하나만 종합적이어서는 안 되고 백과사전 전체도 종합적이어야 한다. 집행부는 이 문제도 살핀다. 너무 길어서 쪼개야 할 항목은 없는지, 하나로 합해야 할 항목은 없는지 살펴본다. “‘통에 든 뇌’ 항목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걸 ‘회의주의와 외부 콘텐츠’ 항목 아래로 넣어버렸지요.” 노들먼은 이렇게 설명했다(내가 철학 학사 학위를 딴 이래 들어본 가장 철학과스러운 문장이었다). 분야별 편집자들도 마땅히 좀더 관심을 쏟아야 할 분야를 파악하고 필자를 끌어들임으로써 이들을 돕는다.

그렇게 철저한 글이 최신 정보를 담을 수도 있을까? 편집자들은 그렇게 만들 방법도 갖고 있다.

새 항목은 해당 주제에 관해서 가능한 한 가장 새로운 정보와 연구 결과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글이 발표되자마자, 다음번 마감을 알리는 시계가 재깍재깍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정확히 4년이 지난 후 – 연구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면 그보다 일찍일 수도 있다 – 필자는 그 주제에 대해서 가장 최신의 정보를 담은 글을 다시 제출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항목들이 저마다 다른 출간 일정을 갖고 있는 셈이다. 잘타는 “저 많은 난해한 주제들을 그럭저럭 지속적으로 추적할 합리적 방법은 이것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노들먼은 “우리는 업데이트와 수정을 매일 처리하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쉴 새 없이 바뀌는 ‘새 소식’ 페이지는 SEP에 매일 수정되고 추가된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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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는 다양한 곳에서 온다. 나는 SEP의 여러 필자들과 편집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 그중 일부는 백과사전을 참고 자료나 수업 도구로 자주 쓴다고 말했다. 그것은 곧 철학자들이 SEP의 핵심 독자 중 일부라는 것이고, 그들이 필자나 분야별 편집자에게 부정확하거나 불충분한 항목을 알려줄 수 있다는 뜻이다. 철학자가 아니라도 아는 게 많은 독자들도 그렇게 하도록 권장된다.

정해진 필자와 편집자가 있다는 사실, SEP가 철학계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 모든 일을 좀더 쉽게 만들어준다. 오류는 무엇이든 기고자에게 부끄러운 일이고, 실수를 찾아낸 사람은 현실의 누군가에게 그걸 알려줄 수 있는데, 둘 다 위키피디아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만일 필자가 반응이 늦거나 내키지 않아 한다면, 편집부는 그의 일을 좀더 민첩한 철학자에게 맡길 것이다.

 

개인이 집단보다 똑똑할 수 있다

이 접근법에는 다른 이득들도 따른다. 개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잘타의 표현마따나 백과사전에 “저자의 목소리”가 부여된다는 점이다.

정보의 쓰레기더미 같은 인터넷을 늘 뒤지고 다니다 보면, 이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잊기 쉽다. 이것은 문제의 제재에 대해서 깊은 지식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 개성을 갖고 있는 전문가가 쓴 글이라는 뜻이다.

이 점에서 모범적인 SEP 항목은 고대 그리스 철학 전문가인 데브라 네일스가 쓴 소크라테스 항목이다. 그 항목에는 “소크라테스의 기이한 성격”이라는 장이 있는데, 소크라테스를 묘사한 그 대목은 너무나도 명쾌하고 자신만만하기 때문에 쿼라나 위키피디아에서는 결코 쓰여질 수 없을 것이다.

“현존하는 자료들은 모두 소크라테스가 엄청나게 못생겼다는 것, 인간보다는 사티로스를 닮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는 훗날 고대에 제작되었으며 오늘날 인터넷 사이트들과 책 표지들을 장식하는 조각상들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미간이 넓은 퉁방울눈은 옆을 향하고 있어서 그는 마치 게처럼 정면 앞만이 아니라 뒤에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코는 납작하고 콧구멍이 활짝 드러나도록 뒤집혀 있었다. 큼직하고 두툼한 입술은 노새 같았다. 소크라테스는 (심지어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벌이는 중에도) 스파르타 식으로 머리카락을 길게 길렀고, 맨발에 씻지도 않고 돌아다녔으며, 늘 지팡이를 지녔고 늘 오만한 모습이었다. 옷을 갈아 입지 않았고, 밤에 걸치고 잤던 옷을 낮에도 그냥 입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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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확고한 저자의 목소리는 여러 사용자들의 기여가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서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향하는 경향성을 막아준다. 위키피디아의 이마누엘 칸트 항목 도입 문장은 오랫동안 “칸트는 현대 철학에서 하나의 중요한 인물이었다”였다. 반면에 SEP는 “칸트는 현대 철학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었다”라고 확신 있게 정의한다. 딱 한 단어 차이일 뿐이지만, 이 표현은 철학계의 합의와 칸트의 진정한 중요성을 제대로 전달한다. (내가 이 기사를 쓰는 동안, 위키피디아는 해당 문장을 “제일 중요한 인물”로 고쳤다. 하지만 SEP를 인용하면서 근거로 댔다.)

SEP가 사용자 참여형이 아니라서 얻는 또 다른 이점은 소수 견해가 좀더 많이 노출된다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의 모조직인 위키미디어가 2012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위키피디아에 기여하는 자원자의 약 90%는 남자였다. “포켓몬이나 여성 포르노 스타에 관한 항목은 종합적이지만, 여성 소설가나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장소들에 관한 항목은 듬성듬성하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위키피디아의 쇠락’이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하며 위키피디아의 복잡 다단한 편집 위계를 비판했다.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인 페미니즘 항목도 마찬가지다. 위키피디아의 ‘페미니즘 철학 개요’는 턱없이 짧다. 반면 SEP에는 그 주제에 관해서 꼼꼼하게 조사된 항목이 수십 개나 작성되어 있다.

그러니 SEP 모델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사실 확인과 전문가 승인을 거친 1,500개의 항목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누가 철학자들에게 돈을 주나?

이 모든 일은 웬 부유한 후원자가 필자들과 수많은 상근 편집자에게 풍족한 자금을 대준 덕분에 가능할 거라고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전혀 그렇지 않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밝히자면, 스탠퍼드 대학이 대부분의 운영비를 지원하기는 한다. 하지만 SEP에서 유급 직원은 셋뿐이고 – 잘타, 노들먼, 앨런 – 그 외에는 자기 업무 시간의 20%를 들여 기술 지원을 해주는 스탠퍼드 직원이 다섯 명 더 있다. 필자들도, 수십 명의 분야별 편집자들도 수고에 대해서 동전 한 푼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모든 필자들과 편집자들은, 어떤 항목은 가끔 작성에 긴 시간이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듯했다. 심리철학 편집자 시걸에 따르면, 대개의 항목은 시작해서 끝낼 때까지 최소 몇 달이 걸린다. 그녀가 감독했던 항목 중 제일 오래 걸린 것은 “몇 년에 걸쳐서 작성되었다.”

기고가들이 기꺼이 시간을 들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런 작업은 애초에 그들이 대단히 흥미롭게 여기고 즐기는 일이다. ‘알 킨디’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 항목을 쓴 피터 애덤슨은 자신이 이미 그런 주제에 대해서 책을 쓴 사람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시걸은 편집자로 일하는 덕분에 “분야의 흥미로운 세부적 사항들을 쫓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애덤슨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운이 아주 좋아서 철학으로 밥을 벌어 먹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멋진 방식으로 사는 것, 돈을 안 받고 취미로라도 할 일을 돈을 받고 하면서 사는 걸 정당화해줄 만한 작업에 관심이 있습니다.”

SEP가 강단의 철학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청중을 만나도록 해준다는 점도 한 요인이다. 덕분에 철학자들은 인지도를 얻고, 대학이나 학회 밖 세상에서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개념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

“이 항목을 쓰면 페미니스트 철학자들, 젠더와 섹슈얼리티 이론가들이 섹스 시장에 대해서 벌이는 흥미롭고 사회적으로도 유의미한 토론에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섹스 시장에 대한 페미니즘의 견해’ 항목을 쓴 로리 시라지의 말이다.

잘타는 좀더 간명하게 표현했다. “내가 출간한 다른 모든 글을 다 합한 것보다 SEP의 ‘프레게’ 항목들을 읽은 독자가 더 많은 게 확실합니다.”

하지만 SEP에 기여하는 이들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아마도 철학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듦으로써 철학이라는 사업을 증진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왜 기여하느냐고 묻자 시라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SEP가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공개 사이트라는 점, 그리고 관련 분야의 학생, 교사, 학자에게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시걸도 비슷한 이타적 동기를 밝혔다. “철학은 복잡한 주제입니다. 학자들이 SEP에 마음을 쏟는 건 이 사이트가 모든 수준의 철학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몰랐던 철학적 주제와 인물을 알도록 돕는다는 점이 한 이유입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지원으로만은 부족한 운영비를 대기 위해서, SEP 팀은 첫 15년간 200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 하지만 그들은 좀더 지속 가능한 방식을 원했기에 비즈니스 컨설턴트 하비에르 에르게타를 고용했고(알다시피 여기는 스탠퍼드니까), 에르게타는 오늘날 예산의 3분의 1 가량을 책임지는 방안을 제안했다. SEP는 학교 도서관들에게 일회성 기부를 요청했다. SEP는 원래 접근이 자유로우니까 그렇다고 해서 SEP에 접속할 권리가 따로 주어지는 건 아니지만, 대신 도서관들은 백과사전에 자기 학교의 브랜드를 붙인다든지 전체 아카이브를 저장한다든지 하는 추가의 “멤버십 혜택”을 누린다.

게다가 도서관들이 후원한 돈은 SEP 기부금 자산에 통합되어, 200억 달러가 넘는 스탠퍼드 대학의 기부금 자산을 관리하는 회사에서 똑같이 관리된다. 만에 하나 SEP가 문을 닫으면, 스탠퍼드는 도서관들에게 SEP에 기부했던 돈을 이자까지 쳐서 고스란히 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도서관들에게는 손해 볼 게 없는 투자인 셈이었고, 그래서 그들이 공짜 웹사이트에 투자할 수 있었죠.” 잘타의 말이다.

도서관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SEP는 수많은 후원자들로부터 200만 달러를 넘게 거뒀고, 스탠퍼드가 그 기부금에 추가로 100만 달러를 보탰다. 대학은 또 SEP 예산의 60%를 제공하는데, 그렇게 부유한 기관에서 그 정도는 그다지 많은 것도 아니다. 나머지 예산 중 10%는 ‘SEP의 친구들’ 프로그램에서 온다. 개인 사용자들이 연간 5달러, 10달러, 25달러씩 내고 인쇄나 사적인 용도로 보관하기에 편한 PDF 형태로 글을 다운로드받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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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창의적인 사업적 발상 덕분에, SEP는 지난 20년을 넘어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다. “기부금 신청 기간은 끝났습니다. 우리가 너무 빨리 너무 크게 규모를 불리려고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실질적으로 자족하고 있습니다.” 잘타의 말이다.

 

인터넷은 좀더 SEP를 닮아야 한다

SEP는 지식이 쓰레기더미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대단히 희귀한 사례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다. 우리는 인터넷의 더 많은 부분을 SEP처럼 만들 수 있을까?

이 모델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건 아니다. 위키피디아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흠은 많을지언정) 기초적인 소개를 제공하는 어마어마한 능력 때문에라도 여전히 꼭 필요하다. 스택오버플로는 자고 나면 새 언어와 프레임워크가 나타났다 사라질 정도로 끊임없이 변하는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조금이나마 질서를 부여할 최선의 방식일 것이다.

실제로 SEP 모델이 잘 맞는 분야는 철학이 유일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철학은 느리게 변하는 분야이고, 말 그대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수행하는 활동이며, 그들은 그 지혜를 세상에 퍼뜨리는 데 제 시간을 기꺼이 잔뜩 투자한다. SEP 방식은 이미 다른 분야에서도 시도되었으나, 성공한 예는 없었다. “언어학부터 이집트학이나 음악 분야까지, 온라인 참고 자료를 구축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숱하게 우리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잘타의 말이다. 그러나 그중 온전하고 역동적인 참고 자료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SEP 모델이 복제될 수 있으리라고 보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컴퓨터과학이나 경제학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젊은 분야라도 종합적이고 권위 있는 설명이 필요한 핵심 개념들이 있기 마련이다. 스택오버플로는 “파이선에서 숫자를 소수점 두 자리까지 반올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같은 구체적인 프로그래밍 질문에 답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알고리듬 이론이나 암호학의 기본과 같은 추상적이거나 전문적인 문제를 설명하진 못한다. 경제학 분야에는 훌륭한 블로그가 수십 개 있지만, 한계 가치 이론이나 비교 우위에 대해서 깊이 있고 공정한 설명을 들으려면 어디를 찾아봐야 할까?

이런 핵심 개념들은 근본적인 것이다.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운 사람들은 스택오버플로에서 코드를 복사해서 붙인 뒤, 그 코드가 어떻게 작동하고 왜 작동하는지는 잘 모른 채 그냥 잘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버릇이 있다. 경제학 블로그들은 우리에게 그리스 경제가 좀더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그런 핵심 개념들에 대한 통찰이 없는 사람은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SEP 모델이 좀더 널리 작동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SEP 필자와 편집자가 들이는 무보수 노동이 학계에서는 딱히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논문 심사, 학술지 편집, 그 밖에도 학계의 핵심적인 연구 및 강의 활동을 벗어난 여러 작업은 대개의 분야에서 보통 무보수로 이뤄지고 있다. “참고 자료 구축이 그런 식으로 이뤄진 예는 이전엔 없었지만요.” 잘타의 말이다. 하지만 SEP가 이 방식이 철학을 더 낫게 만드는 데 시간을 쏟을 만한 길이란 걸 이미 보여주었으니, 다른 곳에서도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온라인 참고 자료에 학자들만 기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령 컴퓨터과학에서도, 대형 기술 기업들이 스탠퍼드 대학의 역할을 맡아서 권위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백과사전을 꾸리는 데 돈과 인원을 투자하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을 것이다. 고용할 만한 숙련 개발자가 늘 부족한 상황이니, 회사들에게는 충분히 그럴 동기가 있다. 그리고 큰 회사들은 이미 이런 형태의 이기적 이타주의에 익숙하다. 다른 프로그래머들은 물론이거니와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오픈소스 코드로 작업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일을 해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SEP 모델은 도서관을 대상으로 한 기금 조성, 인용을 위한 아카이빙, 항목 업데이트를 위한 자동 마감 설정 등등 시간이 흘러도 유효한 참고 자료를 구축하기 위한 기발한 발상을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잘타의 궁극적인 처방은 기발함이라곤 전혀 없는 것, 바로 구식의 결의였다.

“우리가 가진 것은 이 일을 해내는 데 일편단심으로 매진한 몇 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잘타는 이렇게 말한다. “적절한 사람들만 갖고 있다면, 우리 모델이 다른 데서도 재현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매립지가 아닌 인터넷을 위하여

온라인의 정보에 대해서 사람들이 말하는 게 두 가지 있다. 아무도 그걸 안 믿는다는 것, 그런데도 모두가 그걸 참고한다는 것. 에볼라처럼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러나 그래서야 훌륭한 정보 사회가 만들어질 수 없다.

SEP는 온라인의 모든 정보를 비교할 잣대로는 지나치게 엄격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SEP는 우리가 인류에게 진실이라고 알려진 바를 명료하게 설명하는 장소를 인터넷에 더 많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노력하기만 한다면, 구글에서 계속 검색하며 갈피를 못 잡고 계속 새 탭만 열거나 위키 구멍으로 한없이 빠져드는 일이 (애초에 그런 구멍 자체가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옛말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늘 바랐던 인터넷의 모습에 훨씬 더 가까운 세상일 것이다.

 

***

니킬 손나드(Nikhil Sonnad)는 쿼츠(Quartz)의 기자다. 코드를 활용해서 인상적이고 중요한 이야기를 써내는 데 집착한다. 데이터 수집, 분석, 시각화에 몰두하고 있다는 뜻이다. 쿼츠에 합류하기 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비영리 뉴스 벤처 회사 ‘글로벌 메일’에서 데이터 기반 기사 작성 및 시각화 작업을 했고, 그 전에는 미시간 주립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중국어, 자바스크립트, 스페인어, 파이선, 영어를 할 줄 안다. 무엇보다 배우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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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Quartz – SEP

  1. 제 트위터에 링크 올렸는데 사전 허락을 받지 않아서 괜찮을런지, 뒤늦게나마 여쭙니다. @twitchinie 입니다.

  2. 잘 읽었습니다. 이 기사가 우리말로 번역된 줄은 몰랐네요.

    다만 사소한 부분이기는 합니다만, “외부 콘텐츠”로 번역된 “external content”는 심리철학의 개념어이며, “외재적 내용”으로 번역되는 것이 관행입니다.

    좋은 기사 번역 감사합니다.

  3. 앗, 이걸 이제야 봤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어쩐지 말이 안 된다 했습니다. ㅋㅋㅋ 앗 웃을 때가 아니지만요. 가르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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