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엘렌버그 – 틀리지 않는 법

틀리지 않는 법
조던 엘렌버그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옮긴이의 말 중에서

2014년 여름, <월스트리트 저널>에 책과 관련된 재미난 기사가 하나 실렸다. 초대형 베스트셀러들 중에서 사람들이 사놓기만 하고 안 읽는 책이 뭘까 하는 이야기였다.

기사를 쓴 사람은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전자책 뷰어 킨들이 제공하는 밑줄 긋기 기능으로 독자들이 밑줄 그은 대목이 공개되어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마지막 밑줄이 책의 몇 페이지에 있는가를 확인함으로써 사람들이 그 책을 어디까지 읽다 말았는지를 알아보았다. 저자는 마지막 밑줄이 책의 몇 퍼센트 지점에 있는가 하는 지표를 ‘호킹 지수’라고 명명했는데,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지만 다 읽은 사람이 없기로 악명 높은 책의 대표 주자가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도나 타트의 소설 <황금 방울새>는 호킹 지수가 무려 98.5%로 대부분의 독자가 끝까지 독파했음을 시사한 데 비해, 세계적 베스트셀러였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은 호킹 지수가 겨우 2.4%였다. 대개의 독자들은 30쪽도 채 안 읽고 덮어 버렸다는 얘기다. 아이고, 저런.

물론 이것은 엄밀한 분석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개된 자료에서 남들은 생각지 못했던 패턴을 읽어 낸 시선은 인상적이었으며, 애서가들에게 흥미로운 잡담 소재를 제공한 기사의 작성자에게 관심을 쏟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수학자 조던 엘렌버그였다.

(중략)

여느 수학책들에 비해서 돋보이는 점은 저자가 손쉬운 단순화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령 현대 확률 이론의 대세라고 할 수 있는 베이즈 추론이라면, 이 개념을 1+1=2처럼 누구나 단박에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일이 가능할까? 아니, 가능하지 않다. 수학의 어떤 영역은, 특히 인간의 보잘것없는 인지력을 벗어나는 확률과 통계의 이론은, 애초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설명도 무턱대고 쉬울 수가 없다. 이 책은 그 어려움을 회피하거나 가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직하고, 그 어려운 이야기를 누구든 집중만 하면 제법 따라갈 수 있도록 설명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또 다른 특징은 저자가 수학에 대한 세간의 고정 관념을 깨려고 노력한 점이다. 솔직히 수학 영재였던 저자가 수학이 얼마나 아름답고 유용한지 좀 알아 달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뿐이지만(저자는 십대 시절에 연속 3년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참가하여 금메달 둘, 은메달 하나를 땄으며 더구나 그중 한 번은 만점을 기록했다), 그런 만큼 수학은 결코 신경질적인 천재가 홀로 이뤄내는 업적이 아니며 협동과 논쟁을 통해 진전하는 작업이니 누구든 부디 지레 겁먹고 달아나지 말라는 저자의 말을 믿게 된다.

저자는 또 수학이 100% 정밀성과 확실성만을 말하는 분야라는 통념도 허물어뜨린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모든 주의 투표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여 화제를 모았던 분석가 네이트 실버를 언급하며, “오바마냐 롬니냐” 하는 질문에 “어느 쪽이든 당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오바마가 70%의 확률로 앞서고 있다”고 대답한 실버의 자세야말로 가장 수학적인 자세라고 칭찬한다. 수학은 판사가 아니라 탐정이며,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해주는 마술이 아니라 우리가 어느 정도로 모르는지를 정확하게 가늠하도록 돕는 도구라는 것이다.

“수학은 다른 수단을 동원한 상식의 연장”이라는 저자의 모토가 잘 구현된 이 책에는 큰 줄거리에 무관한 잡다한 재미도 많다. 가령 여러분은 한 페이지만에 미적분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역시 한 페이지만에 대수와 로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 시험에서 부분 점수를 받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고, ‘뷔퐁의 바늘’을 비롯하여 눈이 휘둥그레지게 교묘하면서도 아름다운 증명들도 몇 개 만날 것이다. 사영 기하학에서 정보 이론으로 나아갔다가 뜬금없이 오렌지를 최대한 빽빽하게 쌓는 문제, 복권 숫자를 겹치지 않게 고르는 문제로 튀어서 결국 기하학으로 되돌아오는 13장의 구성은 순수 수학과 현실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는 패턴을 잘 보여준 사례로서, 마치 장대한 건축물을 보는 듯하다.

‘감사의 말’에서 저자는 “수학이 얼마나 멋진지를 세상에 길게 길게 외치고 싶다”는 집필 의도를 현명한 편집자들이 한껏 다듬은 결과물이 이 책이라고 말했는데, 끝까지 읽은 독자는 분명 편집자들이 이보다 더 짧게 줄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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