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치버의 일기

데이비드 실즈의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다음 단락이었다. 실즈가 ‘인생을 구할 만한 문학 작품 55편’ 중 하나로 <존 치버의 일기>를 꼽으면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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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치버, <일기>: NPR 방송국의 ‘단편 감상’ 프로그램에서 배우가 치버의 단편을 읽어주고 있었다. 제목은 정확히 듣지 못했다. 어느 작가가 아내와 사이가 멀어져서 토리노에서 살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두 사람이 재결합할 수 있을지 상상하는 글을 쓴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운전해서 집으로 가다가 방송을 들었다. 어찌나 아름답게 들리던지, 이야기의 결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라디오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 단편도 치버가 1940년부터 1982년 사망에 이르기까지 썼던 일기의 명징한 정확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기는 대단히 의식적으로 꼼꼼하게 조각되어 있다. 틀림없이 남에게 읽히고 출간될 것을 염두에 둔 글이다. 그리고 그의 일기는 그의 픽션을 능가한다. 물론 15쪽짜리 단편과 400쪽짜리 책을 비교하는 것은 불공평하지만, 치버가 픽션에서는 스스로에게 모든 실수를 허락하는 데 비해 일기에서는 어떤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기에서 그는 가차 없다. 반면 픽션에서는 기독교적 용서의 논리를 너무 거창하게 펼친다. 나는 단편이 낭독되는 것을 홀려서 들으면서도 줄곧 이렇게 생각했다. ‘이 거짓말쟁이. 난 당신 일기를 읽었어. 당신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떻게 느끼는지 안다고. 이봐, 그런 행복한 우연과 달콤한 결말로 날 속이지 말라고.’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책세상 펴냄) pp. 16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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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치버의 소설도 안 읽어본 주제에 일기가 너무 궁금했는데, 그 일기가 얼마 전에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에 대한 소개는 한국일보 박선영 기자의 서평도 좋았지만, 경애하는 트위터의 모님이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은 책, 변태적인 독서욕을 자극하는 책”이라고 하신 게 더 좋았다.

갑자기 밖이 컴컴해지더니 눈이 내린다. 문득 생각이 나서 <존 치버의 일기>를 찾아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이런 대목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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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취에 빠져 있다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얼어붙은 오리 연못에서 하키용 스케이트로 얼음을 계속 타다가 이따금 멈춰 서서 겨울날의 석양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는 노인이다. 또 이른 여름날 아침이면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크랜머 기도서를 읽는 한 고교회파 교회의 성찬식에 참석하고자 자전거를 몰고 가는 사람이다. 나는 또한 밀스트림 모텔에서 벽 바깥으로 소리가 새어나갈 만큼 큰 소리로 황홀한 신음을 내뱉는 사람이기도 하다. “당신은 이런 식으로 계속 살아서는 안 돼요.” 내 연인이 말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난 정말 모르겠다.

-<존 치버의 일기>(존 치버 지음, 박영원 옮김, 문학동네 펴냄) p. 859~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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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자기 전에 이 일기를 몇 편씩 읽기로 한다. 정신 나간 것 같고 너무 좋다.

버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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