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툴 가완디가 회상한 올리버 색스 (번역)

아툴 가완디가 올리버 색스의 죽음에 부쳐 <뉴요커>에 쓴 글을 번역해보았다. 원문은 여기.

***

올리버 색스가 죽기 4주 전, 나는 그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너무도 짧았던 우리의 서신 교환에서 그는 한 번도 이메일을 쓰지 않았다. 그는 아름다운 손글씨로 편지를 썼다. 두꺼운 크림색 편지지에 파란 만년필로, 왼쪽으로 기운 글씨를. 거기에는 늘 가위표와 삽입이 흩뿌려져 있어, 흘러넘치는 그의 생각을 엿보게 했다.

“나는 눈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눈, 해파리와 가리비와 깡충거미와 문어의 눈에서 우리 (척추동물의) 눈까지.” 그는 그렇게 적었다. “그리고 또 ‘소셜미디어’의 (치명적) 영향에 관한 글도 써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다른 걸 모두 놓아버릴 정도로 깨어 있는 시간 내내 그것에 빠져 있을 때의 결과를요.” 그는 E. M. 포스터의 백 년 된 단편소설 ‘기계가 멈추다’를 우연히 읽게 되어 기뻤다고 말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 소설을 압니까?” 그는 포스터가 일찍이 그런 가능성을 내다보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적었다. “하지만 이 글들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내 상태가 빠르게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그는 호흡이 곤란해지고 있었고 쇠약해지고 있었다.

의사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내게 올리버 색스만큼 많은 것을 가르쳐준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의 글을 의대에 다닐 때 처음 접했다. 내가 읽은 것은 이제 고전이 된 사례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다. 그 책 속의 이야기들은 십 년도 더 된 것들이었지만 – 의학의 기준으로는 고대 역사라 할 만했다 – 색스의 목소리는 이미 시간을 초월했다. 그는 그저 자신이 만난 몇몇 환자들의 특이한 신경학적 상태를 말해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말투에는 모종의 탐구심과 관찰력이 어려 있었기에, 젊은 의사 지망생이었던 나는 그를 흉내 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질병의 의학적 드라마와 인간적 드라마를 둘 다 포착했으며, 임상의가 그것을 어떻게 관찰하는지도 잘 포착해냈다.

유명한 표제작의 주인공인 “P선생”은 뛰어난 음악가이자 음악 학교의 선생인데, 그만 자기 학생들의 얼굴을 알아보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동시에 희한하게도 “그는 눈앞에 얼굴이 없는데도 얼굴을 보았다. 거리를 걷다가 소화전이나 주차요금 자동징수기를 보면 마치 아이들의 머리라도 본 것처럼 행동했다. 가구에 새겨진 장식을 향해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가 아무런 대답이 없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

색스에게는 끝을 모르는 호기심이 있었고, 나는 수백만의 다른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탐구를 열심히 뒤쫓았다. 왜 음악이 인간을 감동시키는지에 대해서, 기억상실이나 자폐나 약물로 유도된 환각을 경험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 남자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서. P선생은 하나의 수수께끼였고, 색스는 자신이 그 수수께끼에 반했다는 사실을 미안해하지도 않은 채 그를 보았다. 우리 독자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가끔 불편하기도 했다. 색스는 마치 자연학자 같은 냉정한 시선으로 환자들을 관찰했고, 나는 그의 묘사에 웃음을 터뜨리고 숨을 헉 마시고 환자가 어떤 곤경을 겪는지 어서 더 알고 싶어서 책장을 넘길 때 꼭 공범이 된 기분이었다. 색스가 P선생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사하는 것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색스가 그에게서 눈에 띄는 이상이나 현격한 징후를 전혀 발견하지 못하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검사가 끝나고 색스가 P선생에게 옷을 도로 입으라고 하자, 환자는 자기 발에 신발이 신겨져 있는지 아닌지를 알지 못해 애를 먹는다. 그러고는, 신발 문제를 어찌어찌 해결한 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그것을 들어올려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게 분명했다!”

학생으로서 나는, 아무래도 개인적인 게 분명한 색스의 조사가 종종 해결로, 치료로 이어져서 나의 뻔뻔한 심취가 속죄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P선생을 꼼꼼히 관찰한 색스는 결국 그가 뇌에서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에 심한 손상을 입히는 병에 걸렸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도 손쓸 도리가 없었다. 병은 P선생이 죽을 때까지 가차없이 진행되었다. 그래도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색스는 우리가 알기를 바랐다. 우리가 그저 이해하기를 바랐다. 그것이 그가 주는 더 심오한 가르침이었다. 의사이자 작가로서 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폭넓은 경험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의 냉정 이면에는 다정한 애정이 있었다.

색스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구서? 그렇다. 하지만 이것은 이야기 혹은 사례 보고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질병을 이해하는 것은 그 개인을 이해하는 것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가지는 얽혀 있지만, 스캔과 검사와 유전학과 절차의 시대인 오늘날 우리는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는 현대의 임상의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비교했다. 세부적인 사항은 잔뜩 접수하면서도 그로부터 온전한 한 사람을 알아내진 못하는 처지로 말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인간 환자, 즉 고통받고 시달리고 병과 맞서 싸우는 한 인간을 중심에 놓기 위해서는 병력을 좀더 깊게 탐구하여 하나의 서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색스를 딱 두 번 만났다. 처음은 2002년이었다. 당시 외과 레지던트이자 <뉴요커>의 신출내기 기고자였던 나는 그가 ‘뉴요커 페스티벌’에서 강연하는 것을 들으러 갔다. 색스는 내성적이고 사람들 앞에서 어색해 한다는 평을 들었지만, 무대 위에서는 따뜻하고 웃겼으며 내 예상과는 달리 순전히 지적이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강연이 끝난 뒤 내가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내 글들을 읽었다고 말하는 바람에 나는 놀랐고, 그는 내게 그중 한 글을 읽다가 떠올라서 품고 있던 어떤 생각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짧은 대화를 통해서 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때까지 나는 글쓰기를 외과의가 병행할 수 있는 운 좋은 부업으로 여겼고, 나 자신이 작가라는 말에 걸맞은 사람이라고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색스가 내 글을 더 높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나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 만남은 2014년 3월이었다. 내가 뉴욕의 록펠러대학에서 강연할 때 그가 들으러 왔다. 그는 여든 살이었고 지팡이를 짚고 걸었지만, 느려진 것은 육체뿐이었다. 강연 후 긴 대화를 나눌 때, 그는 자신이 막 회고록 집필을 마무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제목은 ‘온 더 무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나도 노화와 죽음에 관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자기 원고를 보내주었고,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는 자신이 9년 전에 치료받았던 희귀한 종류의 암이 재발하여 온몸으로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지난 2월에 <타임스>에 쓴 글에서 그 소식을 공개했고, 그 글을 시작으로 이어진 네 편의 특별한 에세이들에서 그다운 불굴의 관찰력으로 자기 자신의 상태를 묘사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제 나는 죽음과 대면하고 있다. 암이 간의 삼분의 일을 점령했고, 진행을 좀 늦출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 종류의 암은 진행을 아주 멈출 수는 없다.”

한 달 뒤, 그가 내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전이를 줄일 수 있을까 해서 화학요법 치료제와 응혈 유도 입자들을 카테터를 통해 간으로 직접 투입하는 치료를 받은 뒤였다. “당장은 끔찍하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썼다. 그는 언제나처럼 다시 글을 쓸 수 있기를 고대했고, 마지막 나날까지 어떻게 해서든 계속 글을 썼다.

내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그는 자꾸 비관적인 생각이 들려고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심지어 종말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죽은 뒤에도 계속 해나갈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했다. “훌륭한 과학자들, 훌륭한 의사들, 등등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줍니다. 자신의 인생이 끝으로 다가갈 때, 인생의 부정적인 것들이 지평선을 어둡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 때는 희망이 아주 많이 필요한 법입니다.”

올리버 색스는 다른 어떤 임상의와도, 다른 어떤 작가와도 달랐다. 그는 아픈 사람들에게, 가장 쇠약하고 불편한 이들에게, 특이하고 ‘비정상적인’ 이들에게 끌렸다. 그는 인간을 그 다양한 형태들로 보고 싶어 했고, 거의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고 싶어 했다.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들이고, 오늘날 융성하는 컴퓨터와 알고리즘 도구들을 멀리한 채. 그리고 글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우리에게도 보여주었다.

색스는 내게 포스터의 ‘기계가 멈추다’를 읽어보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읽지 않았었지만 그의 편지 때문에 읽고 싶어졌고, 읽어보니 왜 그가 그 소설에 끌렸는지 알 수 있었다. 소설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자립과 직접적 경험을 두려워하여, 화면들과 실시간 메시지와 전능한 기계의 보살핌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곳의 한 소년은, 마치 색스처럼,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소년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계는 대단해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나는 이 화면으로 어머니 같은 무언가를 보지만 어머니를 보진 못해요. 이 전화로 어머니 같은 무언가를 듣지만 어머니를 듣진 못해요. 나는 어머니가 이리로 와줬으면 좋겠어요. 나를 찾아와주세요. 그래서 얼굴을 맞대고, 내 마음에 담긴 희망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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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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