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과의 인터뷰 스크랩

[2015 올해의 번역가] 김명남

올해로 10년차. 의도한 건 아닌데 매년 꼭 아홉 권씩 책을 번역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김명남 번역가는 ‘행복한 책꽂이-올해의 번역가’ 후보에 몇 년째 이름을 올렸다. 최근 함께 일했던 한 편집자는 책의 참고문헌까지 모두 훑는 그의 성실함에 한 표를 보태고 싶다고 전했다. 소식을 알린 날, 마침 김씨의 생일이었다. 선물 같은 소식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번역가는 ‘저자의 빠순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독자에게 한 권이라도 더 읽게 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번역자의 구실이 단순히 책을 번역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동료 편집자들의 평가가 머리에 맴돌았다.

∥ 많은 출판인이 추천한 이유를 짐작하자면?
∥ 민망하다. 다른 분들은 조용히 작업만 하는 것 같은데 ‘트잉여’라 실명으로 SNS를 많이 해서 내 이름을 아는 것 같다(웃음).

∥ 과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가 있다. 속도와 질을 장점으로 꼽기도 했다.
∥ 분야 덕을 봤다고 해야 하나. 문학 쪽은 워낙 많지만 과학책 번역하는 사람은 몇 안 되어 이름이 알려지게 되어 있다. 고마운 일이다. 번역 속도는 좀 빠른 것 같고, 미혼이고 혼자 살고 그러니까 가능한 일인 것 같다.

∥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도 그렇고 그림책 등 과학책 이외에도 영역이 넓어진 것 같다.
∥ 그림책은 조카가 생기니까 너무 해보고 싶었는데 재미있었다. 페미니즘 책은 전에도 한 권 번역했고 관심이 있었다. 책이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 과학책 번역할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고 주장하는데, 팩트 위주이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남자들은…>은 평소 하던 것과 전혀 다른 문장이었다. 솔닛의 문장을 살리기 위해 공을 들였는데 건조한 것만 하다가 은유가 풍부한 걸 번역하니 정말 재미있었다. 사람들의 반응도 흥미로웠다. 내 개인의 인생이 펼쳐지면서 관심 있는 주제가 생기더라. 페미니즘도 그렇고, 마흔 살쯤 되니 노화에 관심이 생겨서 중년·노화와 관련된 것도 하고 싶다.

∥ 책 고르는 안목에 대한 칭찬도 있었다.
∥ 번역가가 돈 많이 벌지 못하는 직업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마음에 안 맞는 책을 만나면 매우 괴롭다. 책 한 권에 최소한 두세 달 푹 빠져서 살아야 하는데 동조할 수 없으면 괴롭다. 경력이 쌓이면서 좋은 점은 시간 들이는 그 몇 달을 내가 고를 수 있다는 점이다.

∥ 일과는 어떤가? 집에서 작업한다고 들었다.
∥ 회사원일 때 여덟 시간 일했고 지금도 그렇게 정해놓았다. 주말에 쉬고 싶지만 그렇게는 잘 안 된다. 다행히 적성에 맞아서 침대에서 책상으로 출근하는데, 회사 다닐 때보다 지각도 안 한다. 번역가에게 뭐가 제일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자기 관리다. 흥이 난다고 그 이상 하면 무리가 온다. 집필은 안 해봐서 모르지만 번역은 착상 떠올리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양이 정해져 있어서 엉덩이로 들인 시간만큼 (결과가) 나온다.

∥ 이력이 인상적이다. 카이스트 출신에 서울대 대학원, 일간지 기자, 인터넷 서점 편집장을 거쳤다.
∥ 과학을 전공했는데 중학교 때부터 번역가가 되고 싶어서 과학보다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특수고에 가보고 싶어서 과학고에 갔고 대학 때는 화학 공부보다 과학사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과학사와 관련된 대학원을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제일 비슷할 것 같은 과를 찾았다. 그때부터 과학과 인문학을 잇는 것에 관심이 있었는데 대학원 나오니까 비슷한 게 뭔지 모르겠더라. 당시 2000년대 초 언론사 입사시험에서 상식·한문 과목이 없어졌다. 과학 기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일간지 문화부에서 책을 담당하다 보니까 기자가 아니라 책에 더 가까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서점이 생길 즈음인데 자리가 생겨서 옮겼다. 그때만 해도 MD가 출판사 프로모션에 부응해서 어떻게 책을 팔까 고민하기보다 소개를 잘 하면 팔리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하던 시절이라, 출근하면 그날 들어온 새 책을 읽고 소개를 썼다. 초창기 몇 년간 꿈의 직장이었다. 평소 같으면 보지 않았을 책들을 읽었고, 특히 자기계발서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번역의 길로 접어들었다.
∥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선배의 추천으로 번역을 했는데 일과 병행하기 힘들더라. 계산해보니, 혼자 살고 다른 데 별로 취미가 없으니까(취미는 클래식 듣기, 추리소설 읽기라고 한다)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부터 번역가가 꿈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는 못했을 것 같다.

∥ 어릴 때부터 번역가를 꿈꿨다는 게 인상적이다.
∥ 책을 굉장히 좋아했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데 도저히 쓰지는 못하겠더라. 내 한계를 일찍 알았다. 창조력이 조금도 없더라(웃음). 문학 읽으면서 김화영·이윤기같이 일류 번역가를 접했고 번역가라는 이름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마흔이 되면 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대학 때 번역 과정을 공부하기도 하고 자격증 시험도 봤다. 도움은 안 되었지만 관심이 계속 있었다.

∥ 번역의 매력은 뭔가?
∥ 책에서 뭔가 배울 수 있다는 게 제일 재미있는 것 같다. 한번 했던 주제의 책을 계속하면 편한데 재미가 없다. 번역가마다 다르지만 잘 쓰인 문장에 끌리거나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하는 분들은 결말을 안 읽고 번역한다. 흥미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내 경우 책 고르기 전부터 다 읽어보고 내용이 지적이고 마음에 들어야만 그 몇 달을 견딜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 공부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학문은 한 분야에 대한 집요함, 성실성이 필요하다. 번역가는 성실성이 기본이지만 집요함보다는 박학다식에 끌리는 부류인 것 같다. 쓸데없는 지식을 너무 많이 알게 되는데 정말 쓸데가 없다(웃음). 다만 다음 책을 번역할 때 쓸모가 있게 된다. 과학책이라고 과학 얘기만 나오는 게 아니라 문화·야구 얘기도 나온다. 작가라면 피할 수 있지만 번역가는 피해 갈 수 없다. 책이 둘러싼 모든 문화에 대해 얕고 넓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번역 이후 편집자의 역할은 어느 정도인가.
∥ 0%에서 100%인 것 같다. 가끔 번역한 그대로 교정이 되지 않은 채 책이 나오기도 하는데 잘했구나 싶어서 좋은 게 아니라 불안하다. 책은 함께 만들면 좋아진다. 편집자에 따라 과학책이라도 대중서나 실용서가 될 수도 있고, 어려운 책이 될 수도 있다. 편집자가 보는 매력, 내가 보는 매력이 다른데 많이 얘기해서 합하면 정말 좋아진다. 그런 과정 자체를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번역가의 삶이 의미 없다.

∥ 번역의 어려움이라면?
∥ 과학책에선 어려운 용어가 많이 쓰인다. 노승영 선생도 말했는데 번역가는 번역의 전문가지 과학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수학회, 물리학회 용어집이나 잡지를 참고한다. 우리말로 번역이 안 된 신조어를 만들기도 한다. 번역가는 원문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작업이라 한계가 있다. 학자들이 학문의 일환으로 번역한다면 우리는 직업인으로서, 출판인으로서 번역을 하는 사람들이다. 두 부류는 작업의 윤리나 프로토콜이 다른 것 같다. 출판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번역가도 힘들 수밖에 없다.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국내서보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번역서의 출간이 많이 줄었다. 얼마 전 한 재독 철학자의 책을 번역한 분이 인세를 크게 벌었다고 하는데 그런 성공 사례가 있어야 사람들이 힘을 내서 할 수 있다.

∥ 가장 고생했던 번역을 꼽자면?
∥ (올해 출간된) <아인슈타인이 말합니다>를 작업하며 고생을 많이 했다. 10년 하면서 웬만한 고생은 다 겪었다고 착각했다. 일단 아인슈타인은 독일어로 많이 말했는데 영어로 된 책이고 1600개의 명언이 담긴 책이다. 플롯이 없고 독자와 장소에 따라 전혀 맥락이 달랐다. 애들한테 말한 거면 애들 말투로, 나이 들어서 한 거면 노인의 말투로 해야 했다. 좋아하는 과학자이고, 쓴 책과 논문도 다 읽어봤으니까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계속해서 새로운 패턴의 어려움이 나타나는 게 (이 작업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 2015년은 개인적으로 어떤 해였나?
∥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로 <한국일보>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는데 그 시상식이 올해 초 있었다. 그리고 이 인터뷰로 마무리를 해서 올해를 매우 잘 산 것 같은 착각이 든다(웃음). 운이 좋은 해인 것 같다. 10년차이기도 하고 마침 마흔 살이기도 해서 내년엔 일을 쉬고 아예 다른 걸 해볼까 고민했는데 ‘아, 지금처럼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하는 일이 좋고 더 잘하고 싶다.

-2015년 12월, <시사인> 임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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