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70th birthday, Radu Lupu!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의 70세 생일(2015년 11월 30일)을 맞아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를 비롯한 동료 음악가들이 보낸 메시지 중 몇 개를 번역했다. 그라모폰의 원문기사는 여기. http://www.gramophone.co.uk/feature/happy-70th-birthday-radu-lu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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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이설리스(첼리스트)

라두 루푸는 내가 지금까지 직접 들었거나 아는 가장 훌륭한 예술가들 중 한 명이다. 그의 음악은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고, 그의 연주는 철저한 생각과 뜨거운 감정의 결과물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그는 퍽 사랑스럽다. 친절하고, 재치 있고, 너그럽고, 교만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다. 이것도 아주 절제한 표현이다.

솔직히 말해서, 가끔은 그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친구들을 약간 성질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서 결코 만족하지 않고(그러면서 남들에 대해서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감탄하곤 한다), 연주회 요청을 대부분 거절한다. 녹음 스튜디오에 들어서지 않고, 공연을 녹음하거나 중계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자기가 이렇게 못 치는 걸 누가 들으려고 하겠느냐고 아무한테나 말하면서 재미있어 한다. 이런 식이다.

내가 살면서 겪었던 가장 멋진 음악적 경험 중 두 가지는 그가 슈베르트의 B플랫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을 들었던 것, 그리고 좀 지나서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두 번 다 위그모어홀에서였다. 심지어 라두 자신도 그 연주들은 특별했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그는 이후 두 번 다시 위그모어홀에서 연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제 너무 큰 압박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한번은 어느 친구가 나한테 라두가 자신이 죽은 뒤에 라이브 음반이 발매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유언장에서 그 변호사 비용으로 돈을 떼어 놓았다더라는 소문을 들려주었다. 나는 멍청하게시리 라두를 만났을 때 그 소문을 언급하면서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아니, 아니에요.” 그는 생각에 잠겨 대답했다. “하지만 좋은 생각이군요!” 내 입이 방정이지.

또 다른 일화는 그와 내가 같은 인간인가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하루는 그가 친절하게도 런던의 값비싼 프랑스 식당으로 나와 지금은 죽은 내 아내 폴린을 초대하여 저녁을 사주었다. 즐겁고 흥겨운 저녁이 흐른 뒤, 계산서가 도착했다. 그런데 라두가 그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었다. 내가 물었다. “아, 너무 많이 나왔나요?” 그는 툴툴거렸다. “아니오. 너무 싸요!” 나는 그에게 괘념치 말라고 설득했고,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다음 날, 몇 시간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와보니, 낯익은 번호에서 전화가 여러 통 왔던 기록이 남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다시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내가 맞았어요.” 라두의 묵직한 목소리가 의기양양한 기색으로 선언했다. “그 사람들이 와인 값을 빼먹었더라고요.” 라두는 내게 자신은 그날 밤 런던을 떠나니까, 나한테 50파운드를 보낼 테니 그걸 가지고 식당으로 가서 사정을 말하고 그들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 그들에게 사과하라고 일렀다. 그러나 여차저차해서 나는 두 달 뒤에나 식당에 찾아갈 수 있었고, 마침내 찾아가서 돈을 건넸을 때, 그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처럼 쳐다볼 뿐이었다. 뭐라 설명할 말이 없었다…

라두, 고맙습니다. 당신의 훌륭한 예술성에, 그리고 누구나 알 수 있고 결코 변하지 않으며 더없이 독특한 방식으로 복잡하고 사랑스러운 인간인 것에 대해서. 그리고 제발, 제발 견딜 수 있는 한 자주 좀 연주를 하세요. 우리는 당신이 필요하다고요! 당신과 당신의 음악은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준다고요.

***

안드라스 시프(피아니스트)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누군가요? 아, 이 한심한 질문에 얼마나 자주 답해야 하는지, 원. 내 목록에는 버르토크, 라흐마니노프, 슈나벨 같은 작곡가들도 들어 있고(그렇다, 슈나벨도 작곡가였다), 코르토나 두 피셔(에드빈 그리고 아니) 같은 연주자들도 들어 있다. 아,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들 죽었다. 오늘날의 키보드 연주자들 중에는 내 목록에 오를 만한 사람이 너무 적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다행스럽게도 라두 루푸가 있어, 과거의 위대한 전통을 잇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머릿속에 다른 이름들도 속속 떠오르리라는 걸 알고 있다. 뭐, 이것은 내 짧은 소견일 뿐이고 여러분은 얼마든지 여러분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라두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토크쇼에 출연하지 않는다. 미디어의 법석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 오늘날 음악계의 풍토에서 그의 존재는 한 모금 신선한 공기와도 같다. 그리고 그의 음색은 그의 서명과도 같다. 먼 과거에는 터치가 매력적이지 않은 피아니스트는 예외적인 존재였지만, 요즘은 오히려 그 반대다. 요즘은 아주 빨리, 아주 크게, 한 음도 틀리지 않고 칠 줄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런 것은 훌륭한 테크닉의 속성이라 할 수 없으며, 그저 연주자의 기계적 탁월성을 과시하는 것일 뿐이다.

소리를 만들어내고 음색을 빚어내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기술의 표시이다. 창조적 환상과 예술적 상상의 표시이다. 라두에게는 어떤 곡을 연주하든 보기 드문 음악적 지성으로 곡을 밝히는 희귀한 재주가 있다. 그는 작곡가처럼 생각하고, 작품의 구조와 형식과 화음 언어를 이해한다. 사소한 디테일에 매몰되지 않지만, 그런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이 왜 필요한지, 그 위계가 어떻게 되는지를 이해한다. 그는 결코 야단법석을 피우지 않으며, 그의 해석은 단순미와 뛰어난 취향의 모범이다. 그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의 해석자로 알려져 있고 존경받지만(누가 이 작곡가들의 목록을 별로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따금 야나체크, 에네스쿠, 버르토크 같은 뜻밖의 선택으로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그의 드뷔시 전주곡 연주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라두 루푸는 자기 자신에 결코 만족하지 않으며, 지나칠 정도로 자기 비판적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런 특징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점점 더 높이 발전해온 것이리라.

다함께 기뻐하자. 그가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다함께 바라자.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가 자신의 뛰어난 예술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

에마누엘 액스(피아니스트)

내가 지금의 아내에게 첫 데이트를 청했을 때, 나는 뉴욕 헌터칼리지에서 열릴 라두 루푸 공연 티켓이 있다는 말로 승낙을 얻어냈다. 그 공연에서 그는 슈베르트의 B플랫 소나타를 연주했었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아직도 그 마술 같았던 연주를 기억한다. 우리는 이후에도 수없이 라두의 연주를 들었으며, 기쁘게도 그와 델리아를 개인적으로도 알게 되었으나, 그래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처음 그의 팬이 되었던 그날 저녁처럼 눈이 휘둥그레지고 마는 그의 팬이다.

우리는 그가 앞으로도 120년은 더 훌륭한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었으면 좋겠고, 나로 말하자면,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마술을 계속 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

키릴 게르슈타인(피아니스트)

라두 루푸는 훌륭한 피아니스트 그 이상이다. 훨씬 더 이상이다.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 내 주의는 그의 연주의 아름다움과 능숙함으로부터 스르르 벗어난다. 물론 그것도 인상적이다. 더없이 다채로운 소리와 울림, 특출하게 세련된 화성 감각은 물론이요 음악적 제스처와 타이밍을 제대로 뒷받침하는 근육들 덕분에 화음이 강조된 소리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능력.

그러나 결국 우리는 그런 인상을 넘어서 좀 더 심오한 곳으로 이끌린다. 표면보다 더 깊은 저 아래, 더 높은 저 위의 어딘가로. 루푸는 음악 작품의 내면으로 최대한 깊숙이 침잠하여 사색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상태를 만들어낸다. 힘찬 표현이 아니라 바로 그런 골똘한 집중을 통해서 작품의 전반적인 형태가, 운율이, 화음과 멜로디의 상호작용이 선명하게 귀에 들어오는 것이다.

루푸의 연주를 들을 때는, 특히 실황으로 들을 때는, “어떻게 저렇게 치지?” 하고 분석하는 직업병을 발휘해봤자 별 소득이 없다. 그의 프레이징, 타이밍, 곰처럼 건반에 웅크린 자세가 소리에 미치는 영향 따위를 분석하려고 애쓰는 것은 교육적일 수는 있겠지만 그 결과는 기껏해야 부분적일 것이다. 요소들의 합보다 전체가 훨씬 더 큰 것이다. 시끄러운 미디어, 광고, 요구에 따라 재깍재깍 반응하고 반복하는 것이 표준이 된 오늘날, 그런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음악과 인간성의 섬처럼 존재하는 라두 루푸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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