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말합니다 – 옮긴이의 말

아인슈타인이 말합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음, 앨리스 칼라프리스 엮음, 김명남 옮김 / 에이도스

어떤 인물을 책으로 아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전기를 읽을 수도 있고, 자서전을 읽을 수도 있고, 그가 쓴 다른 책을 읽어볼 수도 있으며, 그가 학자라면 연구 업적을 해설한 책을 읽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데 이 책 <아인슈타인이 말합니다>는 좀 더 특별한 방법을 제안한다. 그 인물, 즉 아인슈타인이 쓰거나 이야기한 말들 중에서 일부를 발췌한 인용구 모음집으로 그를 읽는 방법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점묘법 같은 방법이다. 넓은 캔버스에 하나하나 독립된 점들이 무수히 찍혀 있는데,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놀랍게도 그 점들의 조화로부터 서서히 큰 그림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인용구는 1,600개에 약간 못 미친다. 각각의 문구는 하나만 떼어서 읽어도 뜻이 완벽하게 이해된다. 혹시라도 독자가 맥락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까 봐 편찬자가 출처는 물론이요 그 말이 나왔던 맥락까지 소상하게 해설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진가는 낱낱의 그 1,600개의 점들로부터 하나의 커다란 그림, 아인슈타인이라는 인물의 초상이 홀연히 떠오른다는 데 있다. 이 책을 단순히 ‘아인슈타인 명언집’으로 부르고 싶지는 않은 이유이다.

게다가 그 초상은 다른 어떤 전기나 자서전이 그려낸 초상보다 더 입체적이고 생생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 담긴 말들은 모두 아인슈타인이 직접 말한 육성이고, 더구나 그가 십대 때 쓴 글부터 76세로 사망하기 직전에 쓴 글까지 그의 평생을 아우르며, 그 내용도 친구와 연인에게 보낸 사적인 잡담부터 과학 논문이나 사회문제에 관한 성명까지 그의 삶의 여러 측면들을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기와 자서전도 똑같은 일차 자료를 활용하여 씌어지지만, 전기에는 당연히 그것을 쓴 작가의 해석이 가미되는 법이고 자서전에는 그 글을 쓴 고정된 시점의 시각이라는 단일한 필터가 입혀지는 셈이다. 그에 비해 이 책에 묶인 무수한 말들은 시점도 맥락도 모두 중구난방이고 어떤 하나의 내러티브에도 억지로 끼워 맞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칠십 평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견해를 업그레이드했던 아인슈타인,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서로 모순된 신념들도 품고 있었고 착한 면과 못된 면을 둘 다 갖고 있었으며 절친한 사람에게 하는 말과 공적인 자리에서 하는 말이 서로 달랐던 아인슈타인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대체로 누구에게나 친절했으면서도 이혼한 첫 부인에게는 더없이 냉혹한 말을 내뱉곤 했던 아인슈타인. 두 번째 부인과 무난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가끔 혼외 연애를 즐겼던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나 에미 뇌터와 같은 뛰어난 여성 과학자들에게 진심에서 나온 찬탄을 바쳤으면서도 일반적으로 여성은 과학에 알맞지 않은 성정을 타고난다는 편견을 품었던 아인슈타인. 그러니까 사적인 고정관념과 시대의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전기적 사실들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면모들도 여기에는 잘 드러나 있다. 아인슈타인이 미국 시민이 된 뒤 흑인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시민권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사실, 이스라엘 국가 설립을 달성해낸 시오니즘 운동에 큰 도움을 주었지만 훗날 민족중심주의로 기우는 이스라엘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던 것, 동물을 깊이 사랑했던 것,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고 자유의지란 망상에 가깝다는 결정론을 고수했던 것,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학계의 경쟁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도록 과학은 취미로만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

육성을 모은 인용구로만 책 한 권을 채우는 이런 특별한 묘사는 아무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선은 그 인물에 관한 기록 자료가 많이 남아 있어야 하고, 나아가 그 자료가 꼼꼼하게 취합되고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과학자 중 그 점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대상은 아인슈타인과 찰스 다윈이 아닐까. 아인슈타인은 모든 기록물 유산이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에 보관되어 있을뿐더러 말년의 비서였던 헬렌 두카스와 그의 뒤를 이은 아인슈타인 연구자들의 헌신적인 작업 덕분에 그 자료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더구나 아인슈타인이 “손 닿는 것은 뭐든지 금으로 바뀌었다는 동화 속 남자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신문의 야단법석으로 변합니다”라고 하소연했을 만큼, 그가 했던 말은 지나가듯이 한 실없는 말이든 농담이든 모조리 경청되고 기록되어 우리에게 남았다.

<타임>지가 20세기를 대표하는 단 한 명의 인물로 아인슈타인을 꼽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20세기 인류 지성사에서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홀로코스트와 원자폭탄 투하로 대변되는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 나아가 그 비극을 극복하기 위한 범인류 평화 운동의 상징으로도 꼽을 만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편찬한 칼라프리스가 아인슈타인은 여러 면에서 현재의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인물이라고 말한 것은 그 때문이리라. 더구나 아인슈타인은 그 이름이 천재의 일반명사가 될 만큼 창조적인 정신을 지녔으면서도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고 늘 겸손하고 소박했다는 점에서 한 인간으로서도 대단히 매력적이다. 그런 그이기에 칼라프리스의 이 책이 십여 년 넘게 몇 번이고 개정판을 내면서 줄곧 독자들에게 사랑받았을 것이다.

이 책의 사소한 재미로 꼭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세상에 아인슈타인의 명언이라고 알려졌으나 실은 그가 말하지 않은 ‘거짓 명언’을 가려낼 수 있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말’이라는 장이 따로 있겠는가. 가령 “상식이란 열여덟 살까지 습득한 편견의 집합”이라는 말, “상대성이론보다 소득세 계산이 더 어렵다”는 말, “우리는 뇌의 10%만 쓴다”는 말 등은 아인슈타인의 명언이라고 널리 회자되지만 실은 그가 하지 않았던 말들이다. 그러나 이만큼 재치 있진 않을지언정 이보다 더 큰 영감을 주는 말들이 그 밖에도 잔뜩 들어 있으니, 전혀 실망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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