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서 생명으로 – 옮긴이의 말

생명에서 생명으로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김명남 옮김 / 궁리

베른트 하인리히는 어느 날 친구로부터 당황스러운 부탁을 받는다. 자신이 죽음을 대비해야 하는 병에 걸렸는데, 하인리히가 소유한 메인 숲 속 공터에서 자신의 시체를 큰까마귀들에게 내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다. 친구는 매장도 화장도 싫다고 했다. 조장(鳥葬) 혹은 풍장(風葬)을 바란다고 했다. 하인리히는 친구의 바람에 공감한다. 언제 썩을지 모르는 금속 관에 방부 처리한 시신을 담아 아까운 땅에 묻는 매장도, 화석 연료를 지나치게 많이 소비하는 화장도 썩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에 정말 그 밖의 장례가 가능할까? 애초에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장례란 무엇일까? 더 나아가 자연에서 자연스러운 장례란 무엇일까? 동물들은 어떻게 죽고 어떻게 사라질까?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로 살면서 스무 권 가까운 책으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자연 작가가 된 하인리히는 그 일을 계기로 비로소 자연의 죽음에 관한 책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까마귀, 거위, 올빼미 등 개별 종의 생활사를 연구한 관찰 일지에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들을 결합하여 과학적이고도 사색적인 자연 에세이를 써온 사람답게, 이 책에서도 사변이나 자료 조사에 그치지 않았다. 여기 실린 11편의 글은 모두 그가 몸소 관찰하고 실험하여 자유롭게 쓰고 그린 작은 논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선이 주로 머무는 대상은 이른바 청소동물이다. 생쥐처럼 작은 동물의 송장을 땅에 묻는 송장벌레부터 시체를 먹는 구더기, 딱정벌레, 큰까마귀, 독수리, 곰… 그는 이런 자연의 장의사들이 펼치는 활동에 새삼 주목한다. 이들이 대단히 효율적으로 빠르게 자연의 장례를 치러낸다는 사실에 놀라고, 이들끼리도 시체를 둘러싸고 경쟁과 협동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흥미로워한다.

하인리히의 시선은 수중 생태계로도 향한다. 그는 강을 거슬러 올라와 죽는 연어들과 바다 깊숙이 가라앉아 죽는 고래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살펴본다. 동물계만 장의사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식물계에서도 죽은 개체가 얼마나 잘 분해되느냐에 그 숲 생태계의 건강이 달려 있다. 이 세상에서는 곤충, 균류(버섯), 딱따구리 등이 장의사로 기능한다.

자연의 여러 죽음의 면면을 촬영한 11편의 스냅 사진이라 부를 만한 이 글들에서 하인리히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이런 장의사들의 소중함이다. 그는 청소동물이나 분해자라는 말보다 재활용 전문가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이런 동물들은 시체를 식량으로 삼고 새끼들에게도 먹임으로써 죽은 생명을 산 생명으로 재생시키는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은 큰까마귀, 독수리, 하이에나처럼 시체를 주로 먹는 동물들을 불길하게 여겨 꺼리지만, 이들이 없다면 생태계가 거대한 쓰레기통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청소동물은 포식자와 선명하게 구분되지도 않는다. 사냥으로 먹고사는 포식 동물도 갓 죽은 시체라면 대개 꺼리지 않는다. 하인리히는 인간도 때에 따라 청소동물이 된다고 말한다. 바로 자신이 전쟁 중에 숲에서 그렇게 살았노라고.

우리는 이 장의사들에 대해서 모르는 바가 아직 너무 많다. 그 점은 고래의 죽음을 다룬 ‘다른 세상들’ 장에 특히 잘 드러나 있다. 하인리히는 얼어붙을 듯 차갑고 컴컴해서 별다른 동식물이 살 수 없는 바다 바닥에서 고래의 시체가 어떻게 분해되는지 알려준다. ‘고래 낙하’라고 불리는 그 과정에 대한 연구는 아주 최근에서야 시작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히 에오세부터 바다를 누볐던 그 많은 고래들이 다들 어떻게든 처리되었으니 오늘날의 바다가 고래 시체로 넘실대지 않는 것이겠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에 대해서 생각도 해보지 않았고 조사도 할 수 없었다. 하인리히의 섬세한 묘사 덕분에 눈앞에서 심해 장의사들의 활동이 펼쳐지는 듯한 이 장은 책을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더없이 인상적인 대목이다.

하인리히가 수집한 에피소드들은 죽음 후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결국 생명은 다른 생명을 재활용함으로써 존재한다. 죽음은 생명이 변형되고 재생되는 과정이라는 하인리히의 말은 결코 문학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종교적, 철학적 비유도 아니다. 자연에 이보다 더 엄연한 현실은 없다. 생명은 생명에서 오고 생명으로 이어진다. 모든 생물 개체는 그 연쇄에서 하나의 사슬이 될 때 가장 충만한 삶을 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도 결국은 생물이므로.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당장 좀 더 ‘자연에 도움이 되는’ 장례 방식을 발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인리히도 친구의 요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숲에 사람의 해골이 나뒹굴게 둘 수야 없지 않겠는가? 그래도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분명 죽음 이후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시선이 영영 바뀔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내 육신이 살아 있을 때로도 모자라 죽을 때마저 자연을 더럽히거나 자원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내 육체의 일부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식되어 쓰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대신 가급적 제일 빨리 분해되는 방법이면 좋겠다. 하인리히의 친구가 바랐던 것처럼 유기물로서 다른 생명에게 곧장 생명을 줄 순 없겠지만, 최소한 그 생명의 순환을 훼방하진 않는 방법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전혀 기괴하지 않으며 인간의 문명과 문화를 거스른다고 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은 전혀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크나큰 설득력으로 보여준다.

Advertisements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w

Connecting to %s